[시]오카리나를 불던 사람

by 김관우

<오카리나를 불던 사람>


저녁은 폐허처럼 숲에 내려와

나무들은 오래된 언어의 껍질을 벗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말없이 그 틈을 지나며

자신의 뿌리를 잊은 것들 곁에서

귀를 기울였다.


침묵이 머문 틈,

진흙으로 굳어진 어둠 속에서

낡은 숨결 하나

뼈처럼 부서지며 퍼졌다.


오카리나였다.

흙으로 빚어진 바람의 혀,

세상 끝의 동굴에서나 들릴 법한 소리.

그는 나무 뿌리 그늘 아래 앉아 있었고,

손은 사라진 시간을 조율하듯

무언의 악기를 쥐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섰다.

시간이 손끝에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그 소리로 무언가를 불러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기억들,

혹은 애초에 도달하지 못한 계절들.


숨결이 갈라질 때마다

모르던 얼굴들이 틈입했다.

내게 속하지 않은 슬픔이

기억의 가장자리에서 불려와

내 발목을 덧칠했다.


나는 다시 걸었다.

그러나 발걸음마다 그 소리가 박혔다.

그 소리는 나무의 껍질 속으로 스며들었고

하늘의 폐허에 닿아

빛을 늦게, 아주 늦게 오염시켰다.


오카리나를 불던 사람은 사라졌다.

그의 자리엔 검은 바람만이 맴돌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가 불어넣던 그 숨결은

지금도 이 숲 어딘가에서

잊히지 못한 것들을 깨우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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