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먹는 아이>
마을 가장자리 산등성이가 푸르게 겹겹이 펼쳐진 곳에 노아라는 아이가 살았다.
노아는 조용했다. 그 조용함은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노아는 웃을 때도 슬퍼할 때도 말없이 바람을 바라보았다.
노아는 밥을 먹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밥을 먹을 수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따뜻한 밥도, 달콤한 과일도, 고소한 빵도 모두 노아의 입을 지나면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배도 불러오지 않았다.
그 대신 노아는 바람을 먹었다.
바람을 삼키면 노아의 배는 따뜻해졌고 가슴 속이 풍성해졌다. 새벽 바람은 햇살 냄새를 담고 있었고 저녁 바람은 풀잎의 속삭임을 데려왔다.
노아는 그 모든 바람을 삼켰다. 그러면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넓어졌다.
“바람에는 이야기가 있어.”
노아는 마을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노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바람은 그냥 바람이었다. 이따금 연을 날리게 해 주는 힘센 손, 종이배를 뒤집는 장난꾸러기일 뿐이었다.
“그래서 넌 늘 혼자야.”
아이들은 노아를 멀리했다.
노아는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바람이 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노아가 자라는 동안 마을은 변하지 않았다.
늘 그랬듯 풍차는 바람을 기다렸고 들판의 보리는 바람을 맞고 자랐다.
마을 사람들은 바람을 반기면서도 바람을 두려워했다. 너무 거세면 지붕이 날아가고 너무 없으면 풍차가 멈췄으니까.
그러던 어느 해 여름, 바람이 멎었다.
처음엔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바람 없는 날도 있지- 하며 가만히 기다렸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바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보리는 고개를 떨구었고 풍차는 삐걱대며 멈춰섰다.
노아도 달라졌다.
언제나처럼 새벽 언덕에 오르던 노아는 그날 이후 집에만 머물렀다. 바람이 없으니 먹을 것도 들을 이야기도 없었다.
노아의 얼굴은 점점 희미해졌다. 목소리도, 걸음도, 웃음도 모두 작아졌다.
“노아야, 이렇게 있으면 아프지 않니? 이 빵이라도 먹어보렴.”
마을 사람들이 노아에게 빵과 수프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노아는 고개를 저었다. 입술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바람이 없는 노아는 텅 빈 병처럼 보였다.
그해 가을, 하늘이 무너질 듯한 소리를 내며 구름이 몰려왔다.
검은 구름 속에서 바람이 돌아왔다. 처음엔 숨이 막힐 듯 거세었고 나뭇가지들이 부러져 나갔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창문을 걸어 잠갔다.
그런데 노아는 조용히 일어났다.
오랜만에 언덕을 향해 걸었다. 바람은 노아의 머리칼을 감싸며 노래를 불렀다. 노아는 웃었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바람은 속삭였다.
‘노아, 우리가 돌아왔어.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말이야.’
노아는 팔을 벌렸다. 바람은 노아의 주위를 돌고 돌았다. 노아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러자 그의 눈이 반짝였다. 바람 속에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이야기들이 있었다.
먼 바다에서 불어온 고래의 꿈, 높은 산에서 피어난 첫 꽃의 향기, 길 잃은 별똥별의 비밀.
노아는 그 모든 이야기를 천천히 삼켰다.
그 순간, 노아의 몸은 가볍게 떨리더니 바람과 함께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을 아이들은 언덕 아래에서 그것을 보았다.
노아는 마치 바람처럼 투명하게, 부드럽게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어느샌가 사라졌다.
그날 이후 마을 사람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노아의 이름을 떠올렸다. 바람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노아가 되어 돌아온 친구였으니까.
아이들은 바람을 맞으며 속삭인다.
“노아,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가져왔니?”
그러면 바람은 노아처럼 웃는다. 그리고 세상의 끝에서 들려온 또 다른 이야기 하나를 아이들의 귓가에 살며시 흘려준다.
ㅡㅡㅡㅡ
-단편(엽편)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