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를 보고 든 잡생각

by 하늘

‘파’와 자취생

대학교 유학 시절부터 자취를 했으니,

어느 덧 자취경력이 10년이 훌쩍 넘어간다.


혼자 살면서 처음 배운 건,

요리의 주인공이 고기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어떤 음식이든 ‘파’가 없으면 밍밍하다.

김치찌개도, 라면도, 볶음밥도, 계란후라이조차도.

파 한 줌을 얹어야 완성된다.


그래서 나는 파를 늘 사다 놓는다.

마트에서 한 뭉텅이 사 와도 금세 줄어든다.

“이걸 언제 다 먹었지?” 싶을 때쯤

냉장고는 다시 텅 비어 있고,

나는 또 장바구니에 파를 담는다.


어느 날은 문득 계산을 해봤다.

“내가 하루에 파 한 개씩만 먹어도, 1년에 365개네?”

그냥 떠올린 숫자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꽤 진지한 의미가 있었다.

365개의 파는 단순한 소비량이 아니라,

내가 1년 동안집에서 밥을 해 먹으며 살아왔다는 증거였다.


조연의 힘

파는 요리의 주인공이 아니다.

누구도 “오늘은 파볶음을 먹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없으면 전체가 밋밋해진다.


파 같은 하루

화려한 성과나 특별한 사건만이

나를 완성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티 나지 않는 습관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

반복되는 작은 행동들이 삶의 맛을 결정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주연만으로는 굴러가지 않는다.

파처럼 묵묵히 자리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사회는 굴어간다.


파가 국물 맛을 깊게 하듯,

사소한 루틴 하나가 삶의 결을 바꾼다.

그게 운동일 수도 있고, 저녁 산책일 수도 있다.

내게는 파 손질이 그런 루틴이 된 것이다


이건 단순한 식재료 소비가 아니라,

내가 어떤 하루를 쌓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통계에 가깝다.


파는 내 자취 생활의 충성스러운 조연이자,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작고 확실한 증거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없으면 허전하다.


파는 맛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