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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빛반사
Jul 10. 2020
가진 건 없어도 자존감은 있다
15개월짜리를 포함해
세 아들을 데리고 바깥에 나가노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선천적으로 조금은 부족한(나의 기대에) 체력,
적지 않은 나이까지 더해진다면.
하지만 비록 찜통 속에 들어간 호빵처럼 내 볼에서 김이 모락모락 날 것 같은 무더위지만,
오늘만큼은 아이들의 에너지를 발산시켜주기 위해,
첫째 아이의 친구들이 나와있다는 놀이터로 향했다.
어제
어른 걸음으로
도보 20분 거리의 학교 앞 문방구까지 가서
뽑기를 하고 싶다고 조르다
눈물샘이 폭발했던 둘째 아이가
오늘은 꼭, 놀이터에 갔다가
빵집을 들르고 싶단다.
만 원짜리 지폐 한 장과 만 원짜리 상품권 한 장을 포개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 아니 고이 넣었다.
혹시 모자라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냥 적당히 사자 싶었고
오늘따라 카드는 왠지 어디에 흘릴 것만 같은 예감에 챙겨가기 꺼려졌다.
뜨거운 7월의
태양 아래 땀에
흠뻑 젖도록 뛰어노는 아이들.
특유의 살인미소가 특기인 막내도
경쾌한 발걸음으로 뒤뚱대며
놀이터 앞 도로 이곳저곳을 바쁘게 누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하나둘 놀이터를 떠나고
북적이던 놀이터에 정적이 흐른다.
마지막
남은 우리도 이제는
발걸음을 옮길 시간.
한 명은 아기띠로 매고 두 명은 걸리고
.
아이 친구와 아이
엄마도
함께한 대장정(?)이 시작됐다.
우리가 향한 곳은 내 상품권을 받아줄 빵집.
23년의 빵집 운영 노하우가 집약된 그곳은
고등학교
동창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유명 프랜차이즈 제과점이다.
여기가 그 빵집은 아니다..
이곳에서 종종 빵을 사는데
동창의 부모님은 아주 가끔씩 마주칠 따름이다.
그런데 오늘이 마침 그 가끔 있는 날이었나 보다.
한창 빵을 고르고 계산대에 선 순간, 카운터에서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
다.
"어머,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그대로시네요~?"
몇 년 만인지 모르겠지만
아주머니는 정말로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꾸준한 관리로 잘 가꿔진 듯한 외모.
이제는 나도 입기 꺼려하는
짧은 스커트를 소화한 세련된 옷차림까지.
과연 이 빵집 개업
선언과 함께 집안에도 큰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던 아주머니답게,
그 얼굴이 옆에 서있는 20대
아르바이트생보다도
더 생기 있게
반짝였
다.
"2만 3천 원입니다"
3천 원이 오버됐다.
내 손에 쥔 돈은 상품권 포함, 2만 원이 전부였기에 불가피하게 빵을 좀 덜어낼 수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은 처음부터 다시 계산기를
두드
렸고,
나는 상품권과 만 원짜리를 내밀었다.
그때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 상품권 계약 끝났어~"
어찌할까 고민하는 나를 위해
아이 친구의 엄마는 모바일 카드를 찾으며
"내가 계산할게~"라고 나섰다.
나는 괜찮다며 또다시 몇몇 빵을 골라 빼냈다.
아르바이트생은 또다시 처음부터 계산기를 두드려야 했고 조금씩 버얼건 얼굴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번엔 1만 2천9백 원.
그리했는데도 2천9백 원이 모자랐다.
짜증 수치가
한 단계 더 올라간 아르바이트생들의 굳은 얼굴, 그러나 사장님이 옆에 있는데
어쩌겠나.
결국 나는 아이 친구 엄마에게
3천 원만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고,
그 순간 빵집 사장님의 우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까 그 만원 어디 갔니? 만원만 줘~"
평소 같았으면 극구 사양했을 텐데, 이번에는 어찌할 수 없었다.
또 빵을 빼내려니 아르바이트생들은 다시 계산을 해야 하고,
어찌어찌 얼레벌레 만원을 넘기고 죄송하고 감사하다면서 나는 괜히 이런저런 안부를 물었다.
"S는 잘 지내죠?"
"걔야 뭐 해외에 있지. 결혼도 안 한다"
친구의 소식은 이미 아저씨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공부를 잘했지만,
공부 쪽으로 워낙 뛰어난 오빠를 둔 탓에 항상 뒤로 밀려있는 자신을 오빠와 비교하며 자랐다.
오빠의 성적이 항상 전국구였기
때문인지
친구 나름대로는
집에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꼈고 이것이 그 친구의 스트레스이자 상처였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꾸준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노력한 친구는
결국 서울의 잘
알려진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엔 국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대학의 대학원을 갔다.
그리고 이젠,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단다.
"능력 있으면 결혼 안 해도 좋죠, 뭐~"
아주머니는 내가 어깨띠로 맨 막내,
그리고 땀에 절은 첫째와 둘째를 번갈아보며 말한다.
"얘네가 다~ 네 애들이니?"
빵집을 나와 아파트까지 언덕길을 오르며 아이 친구 엄마와 나는 행복에 대해 얘기했다.
사람마다 다 사는 모양이 다르고 행복의 기준이 다른데,
자기가 스스로
행복하면 되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집에 와서 오늘 있었던 얘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남편은 목소리를 높이며
"아니, 돈을
왜 그것만 가지고 갔어? 아이고, 우리 마누라 초라해졌네"
라고 한다.
조금 전까지 코로나 때문에 하는 일이 너무 어렵다고 한숨을 쉬던 사람이 마누라 초라한 건 싫은 가보다.
"왜? 내가 왜
초라해
?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고~
!
"
"어떻게 되는데?"
"응? 음... 앞으로.... 언젠가.....
거기 있는 빵 내가 다 산다!
음
하하하"
나 이제 정말 아줌마가 다
된 걸까.
추레한 행색으로 아이들을 끌고 가서
모자란 돈을 내밀고 파격적인 할인 혜택까지
넙죽 받다니.
이제와
생각해
보니 민망한
상황이긴 하
다.
그렇지만, 진짜 내가 나중에 좀 멋있어져서 뭔가 더 멋진 액션으로 이번 일을 상쇄하면 되는 것 아닐까.
진짜 멋있어지면 되잖아. 예를 들면 매장의 빵을
기분 좋게
다 싹쓸이할
만큼 멋있어지면.
저 멀리, 손에 잡히지 않지만
떠올리는 순간, 마냥 기분 좋은 상상 속에서
갑자기 스무 살
의 나보다 마흔인 지금의 내가 더 젊다는
생각
이 밀려온다.
내 안에 자리한 착각의 거울을 보며 피식 미소를 날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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