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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음악의 힘 그리고 90년대 길보드 차트

나에게 음악은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타임머신

by 하늘과 우주

흔히들 음악의 힘에 대해 말한다

음악은 국가가 허락한 합법적 마약이라지?


나에게 음악은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타임머신이다


어젯밤 택시를 탔는데

라디오에서

DJ DOC 겨울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 곡이 히트 쳤던

96년 1월 그때

헤어진 여자친구가 생각났다


TMI로 밝히자면

나는 대학교 입학 후 난생처음 연애를 했다

첫사랑이었다

1학년 2학기에 만나 사귀기 시작해서

2학년 1학기초 헤어졌다


그러나

2학년 여름

나의 입대소식을 듣고

그녀는 나의 입대직전 다시 돌아와 다시 사귀었으나

군복무 중 결국 두 번째로 완전히 헤어졌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녀는 고무신을 거꾸로 신어보고 싶었나 보다


첫사랑 그녀와 완전히 결별한 시기가

96년 초 군에서 첫 휴가 나왔을 때

DJ DOC의 겨울 이야기가 유행하던

겨울이었다


첫사랑 그녀와

두 번째 이별이었고

완전한 이별이었다


겨울이라는 계절,

군인이라는 신분,

그로 인한 이별


곡의 가사와 내 상황이 어우러져

절절하고

거지 같았다


이 곡은

다른 남자에게 가버린 여자 친구라는 가사와 달리

멜로디는 참으로 유쾌하다


반년 간 속세와 단절되었던 군바리가

잠깐 세상에 다시 나와 얼떨떨했고

이렇게 좋은 곡을 몰랐다는 현실에

나는 역시 군인이구나 실감했다


여담으로 말하면

90년대는 앨범 판매 측면에서

국내 가요시장의 전성기였다

그만큼 거리엔 불법 최신 가요 모음집 테이프가 기승을 떨쳤다

큰 버스정류장 같은 데서 팔았다


이 리어카 테이프들을 일명 길보드 차트라 불렸는데

당시 그쪽 업계 사업자들의 뜨는 곡을 미리 고르는 촉이 기가 막혔다

길보드 업계가 TV음악방송 순위를 정한다는 음모론도 있었다


당시 거리에서 들리는 노래를 들으면

당시 유행곡과 앞으로 유행할 곡들을 다 알 수 있었다


당시는 길바닥에 펼쳐놓고 파는 불법 영화 DVD/CD 판매상도 많았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친구들과 노래방 가면) 항상 최신곡을 불러야 하는 시기가 있다


입대 전 대학생인 내가 그랬다

당시 유행하는 음악은 꼭 다 챙겨 들어야 하고

앞으로 뜰 최신 곡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대학생이었다


그런 면에서

음악업계 종사자들은 짜증 났겠지만

당시 길보드 테이프는 참 편리했다


이만큼 나이가 드니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 편하다


어제 우연히

스포티파이가 내게 추천한 곡이 좋았다

"Drunken Text"라는 곡인데

가사 내용도 멜로디에 어울리는 절절한 짝사랑곡이다

이 곡 좋다고 가족 단톡방에 추천하니

아들이 언제 적 곡인데 이제와 듣냐고 타박이다

(23.1월 출시 곡이면 나한텐 그리 오래된 건 아닌데)


상관없다


언제 유행했든 간에

처음 듣는 좋은 곡은

나에게 최신곡이다


그리고

아는 곡은 타임머신이다

처음 듣던 시절로 되돌아 가게 만드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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