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오늘도 어김없이 내 사무실 에어컨 실외기 위에, 다 먹은 커피우유곽이 떡 하니 올려져 있다.
우리 부동산이 끼고 있는 아파트단지에 거주하는 입주민이 버리고 갔나보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출근길에 먹고, 버릴 곳이 마땅치 않아서 올려두었나보다.
커피우유라... 쾌변유도를 하기 위함이군.
우리 사무실 분리수거통에 빈 우유곽을 던져둔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내가 치운지 않은 다음날에는 어제 먹은 우유곽 옆에 나란이 줄맞춰 이쁘게 세워놓고 간다.
어떤 자식이야? 도데체 누구야!
하아...씨. 커피우유 중독자냐? 내가 출근할 때 마다 네가 마신 우유곽을 치워야 속이 시원하겠어?
어느날 드디어 화가 꼭지까지 나서 실장님께 말했다.
"내가 조금 일찍 출근해서 잠복하고 있다가 잡아야겠어! 아침 7시부터 잠복하면 될까?
아니지 아니지. 씨씨티비 달까? 국과수에 의뢰해서 지문채취를 하는 것이 빠를까?
일단. 실장아, 너 퇴근 할 때 저 우유곽, 사무실 옆 단지내 도로 한 가운데 전시하고 가.
그 놈인지, 그 년인지, 자기가 먹은 흔적이 길 한가운데 뒹구는 걸 보면 느끼는 바가 있겠지.
내가! 발본색원해서 능치처참을 하리라!!"
"워~워~워. 소장님. 그러지 마셔요. 잘못하다간 우리가 먹고 버렸다고 심각한 오해를 살 수도 있잖아요.
그냥, 아공, 오늘은 남양에서 나온 커피 우유 먹었네, 오늘은 매일에서 나온거네~. 하고 치워주면 되잖아요."
오우~놀라운 애티튜드군,,,
마음 곱게 쓰는 건 타고 나는건가? 과외받아야 하나? 일타강사가 따로 있나?
사실 실장님 말이 맞는 것 같다.
내가, 진짜 잠복하거나 씨씨티비를 달거나 국과수에 의뢰할 것이 아닌데 혼자 흥분해 봤자 나만 손해다.
사소한 일에 내 기분이 나빠지도록, 내가 방치하는 거다.
그러고보면 사람들은 사소한 일을 대하는 방식이 각양각색이다.
마음을 이쁘게 쓰는 것도, 느긋하게 생각하는 것도, 분노하고 일을 키우는 것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리고 그 결과도......
그냥 아무일 없는 듯 지나갈 수도 있는 사소한 사건이,
분노를 참지 못한 누군가에겐 생생한 지옥을 선사한다.
별 일이 아닌데 목숨을 건다.
무던하면 되는데 곱씹고 곱씹으며 마음의 분노를 키운다.
내 차 앞을 쌩하고 가로 지르며 가는 차를 보며, 놀란가슴을 쓸어 내리며
급똥인가?
아...무척 급한 일이 있나보다.
집에 누가 아픈가? 바람난 마누라 현장 덮치러 가나? 하고
이해해 보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테고,
저 노무 시키. 개노무 시키. 가만 안 둬. 하고 레이싱를 벌이며 보복운전을 하다
사고나 싸움으로 일을 키우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상황에 분노하고 일을 키우는 것이 나에게 제일 해롭다.
속 시원한 복수로 마무리 되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잘 없다.
속 시끄러운 일만 더 생길 뿐이다.
오늘도 실외기에 덩그러니 올려진 빈 우유곽을 본다.
'아이고, 어제는 남양 커피우유. 그저께는 매일 커피우유...다양하게도 드시네.
옴마! 오늘은 그냥 커피를 드셨네. 속쓰릴텐데. 쾌변은 하셨나 모르겠어~'
라고 생각해보도록 노력해본다.
그런데 가끔 불쑥.
진짜 미치도록 궁금하다.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다. 누구냐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