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지 번화가 쪽에, 자신이 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소장님이 한 분 계신다.( 좋겠네 바빠서.)
"소장님~! 제가 안내가 겹쳐가지고 바빠서 그런데, 소장님이 저 대신 우리 손님 소장님 물건 좀 보여주시겠어요?"
가끔 있는 일이다. 서로 신뢰가 있는 부동산끼리는 손님을 직접 보내서 물건지 부동산에게 안내를 부탁하기도 한다.
"아.. 네. 괜찮아요. 한가한 제가 보여드림 되죠."
실장님이 출근을 하지 않는 토요일이라 직접 안내를 하러 나갔다.
오늘 보여드릴 집은 우리 사무실이 있는 아파트 단지, 바로 옆블록 아파트.
집 구조가 세련된 편이라, 신혼부부들에게 인기가 많다.
손님도 여러 군데 단지를 보고 왔지만 이 집이 제일 맘에 든단다.
며칠 뒤에 남편이랑 같이 와서, 다시 한번 더 보고 결정을 하겠다는 반가운 멘트! 좋아 좋아!
손님 맡기고 간 그 바쁜 소장님께 전활 했다.
"소장님. 손님 가셨고요. 며칠 있다가 남편분이랑 같이 보러 오신다네요. 집 정말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네네 안 그래도 수요일쯤에 오신답니다. 그때는 저랑 같이 다시 안내 부탁해요. 오 호호"
수요일이 되어 실장님이 다시 안내를 나가게 되었다.
" 그분들 집 마음에 들어 하셨으니까, 설명 잘 드려~!.
뭐 실장님이 살고 있는 단지니까 실장님 만큼 장점을 잘 설명할 사람도 없지. 아무렴!!.
가서 집 한 채 팔고 와! 출발!"
한참 있다 안내를 마치고 돌아온 실장님의 표정이 무척이나 쑥쑥 하다.
"소장님! 그 소장님 이상해요!!!"
"잉? 왜? "
실장님 피셜에 의하면, 열심히 아파트 설명을 하고 있는데 무슨 말만 하면 말을 자르고,
손님들 앞에서 자신을 윽박지르더라는 거다. 손님이 민망해서 실장님을 못 쳐다볼 정도로.
옆 단지는 마루가 강화마루로 시공이 되어있는데, 강화마루는 마루끼리 끼워서 시공을 해서 바닥이 접착제로 붙어 있지 않다. 그래서 가끔 밟으면 찌걱찌걱 소리가 나는 경우가 있다.
실장님이 강화마루라서 소리가 날 수 있다고 설명하니,
그 소장님이 소리 안나는 집도 있다며 화를 버럭 내더란다.
그리곤 손님들한테는 아무리 집이 마음에 들어도 티를 내지 말아라.
그래야 집값을 많이 깎을 수 있다. 이건 지가 주는 꿀팁이라고 이야기했다나 뭐라나.
"그리곤 손님들 모시고 아랫단지로 내려가셨어요. 우리 물건 보여주면서 깎아내리고, 자기 물건 팔려고 그러는 거 같아요."
이런... 식빵!
가끔 소장님들 중에, 공동으로 계약을 진행하다 보면 상대 부동산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 훈장스타일의 소장님이 있긴 하다. 손님들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연륜이 있고, 일 잘하는 소장인지 알리고 싶은 마음인지 뭔지, 손님들 앞에서 유독 훈장말투를 시전하고 상대 부동산에 꼬투리를 잡는다. 한 마디로 예의가 없다.
특히 자기보다 어린 젊은 실장님이나 초보 소장님이 공동 안내를 하러 나오면 더하다.
또 이 경우처럼, 다른 부동산에 물건을 의뢰해 놓고 노골적으로 자기 물건을 미는 얌체 스타일도 있다.
물론 단독으로 계약진행하면 양쪽으로 수수료 받으니 욕심이 나는 건 이해하는데 그럴 거면 자기 물건만 보여주면 되지, 왜 굳이? 어우, 밉상.
내가 5년만 더 젊었었도 넘치는 기력으로 상대 소장한테 전화해서,
니가 한 번 해보자는 거냐?
전혀 논리 정연하지 못한 말투로 내가 얼마나 빡쳤는지,
소리 지르며 알려 줬을 텐데,,,,,,음 노쇠하였다.
화를 낼 기력이 없어.
실장아... 혹시 그 소장님이 네 휴대폰으로 전화하면, 네가 찾는 물건 우리한텐 없다고 하여라...
그리고 나는 그 소장님 전화번호는 스팸처리. 차단으로 돌려놓았다.
어차피 사무실 대표 전화도 내 폰에 착신이 되어 있으니 앞으로 엮일 일 없겠네.
그리고 몇 일뒤.
그 바쁜 소장님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롤케이크 두 통을 들고.
"오 호호호. 소장님. 제가 근처에 일이 있어서 왔다가 소장님이랑 실장님 드시라고 빵 좀 사 왔어요."
내가 전화 차단을 한 걸 알았나 보다.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니
"아.. 그때 그 손님~
그 손님은,뤡이 걸린 것 같아요. 결정을 못하시네. 오 호호"
묻지도 않은 질문에 바쁘게 이야기 하는 바쁜 소장님을 보니 쓴 웃음이 나온다.
뤡? 뤡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잠시 아무 말 없이 그 소장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한마디 했다.
"소장님. 혹시...
우리 실장님이랑 안내했던 날. 무슨 일 있었어요?
우리 실장님이 얼굴이 벌게져서 돌아왔던데...?
이유를 물어봐도 당최 말을 안 하네.?"
질문에 당황한 티가 역력해지는 바쁜 소장님의 입이 더 바빠진다.
"아.. 그게.. 그러니까.
아니 그래.. 그.. 실장님이 자기가 106동 사는데 106동 이야기를 자꾸 해서... 어쩌고 저쩌고..."
(뭐래는 거야? 말은 또 왜 저리 많아? )
"아. 그랬군요. 알겠어요. 알겠구요.
제 입장은 우리 실장님이 그 날이후 소장님을 많이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저흰 이제 소장님네 부동산이랑 거래 안 하려고요.
그리고 참, 저 빵 싫어해요. 빵은 도로 들고 가셔요."
냉랭한 표정의 내 얼굴을 보더니, 그 바쁜 소장님이 갑자기 급사과를 한다.
"제가 실장님한테 실수를 했나 보네요. 죄송해요."
"아뇨 아뇨 아뇨. 저한테 죄송할 건 없구요.
실장님이 말을 안 해서 제가 물어본 거예요.
실장님께 전화드리라고 할게요.
가셔도 됩니다."
돌아서 나가던 소장님이 갑자기 돌아서더니, 폴더 인사를 하며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말하다.
뭐지?
누가 보면 내가 성질낸 줄 알겠네! 빵도 안 들고 가고...
나보다 나이 많은 소장님이 저렇게까지 사과를 하니, 내 마음이 더 불편해진다.
너보다 나이 많은 사람 질책하는 넌. 넌 나쁜 년!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심난하네.
실장님에게 바쁜 소장 와서 사과하고 갔다며 빵사왔더라. 했더니
속없고 착한 실장님은 그냥 맘 푸시고 계속 거래하시고 차단도 풀라고 한다.
(실장아, 그동안 우리가 집만 열심히 보여줬지, 실제로 거래한 적이 없단다 )
빵집 가서 케이크 사서, 실장님 손에 쥐어 주며 실장님에게 말했다
바쁜 소장 만나서 직접 사과받고 ,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며 하고 오라고,
생각 같아선 너한테 사과할 기회도 주기 싫지만,
그러면 내가 너무 나쁜 사람 되는 것 같으니 다녀오라 했다.
그 소장님이 가끔 상대방을 배려하는 걸 잊어버리는 스타일이지,
진심으로 사과하시는 걸 보니, 마음씨가 나처럼 밴댕이 소갈딱지는 아닌 것 같다고.
그날 실장님께 바쁜 소장으로부터 장문의 편지가 문자로 왔다.
실장님을 참 좋게 봐서 너무 편하게 생각해서 실수한 것 같다며 기회가 되면 꼭 밥을 먹자고 한다.
착한 실장님은 또 그 바쁜 소장, 좋은 사람인 것 같다며, 소장님도 얼른 차단 해제 하란다.
(싫다)
화가 나면 화내고, 미안하면 사과하고,
사과받으면 화해하고, 단순하게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람 사는 모습인 건 알겠는데,
나는 왜 그게 쉽지 않을까?
(그러니까 나의 인간관계가 비루한 것이겠지.)
반성은 하는데, 솔직히 바뀌고 싶진 않다. 아직 내가 수양이 덜 되어서 그런걸로 하자.
사람들 중엔 상대방이 베푸는 호의와 미소를,
호구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미련한 이가 있다.
바보라서 양보하고, 약한 사람이라서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것이 아닌데
미련한 사람들은 단단히 오해한다.
'나 보다 못한 사람이구나' 하고.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누굴 만나든 위축될 필요도 없지만, 우월한 척 하는 것 만큼 우스꽝스러운 것이 있을까.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만큼 천박한 것이 있을까.
"소장님. 처음 봤는데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걸까요?"
실장님이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무심한듯 평소 생각을 말해본다.
"응, 그건 대가리가 나빠서 그래. 지능이 떨어지는거야.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이 스스로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거지. 그러다 비슷한 것끼리 만나면 쌈박질 하겠지. 그런 사람 보면 피해.
모진년 옆에 있다가 같이 벼락 맞는다는 옛말이 그냥 나온게 아니야. 탁한 것에 물들지 않게 피하는게 젤 좋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미련하도록 착하고,
안타깝도록 속없이 해맑은,
우리 실장님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