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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 Aug 15. 2023

십자가에 매달린 박쥐

영화 <박쥐>를 보고

1. 들어가는 말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면서 떠오른 영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박쥐>.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 3부작 <복수는 나의 힘>,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으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의 이 영화는 대중에게는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렸습니다. 감독의 의도를 밝히는 것은 영화가 협소하게 해석되는 여지가 있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아끼기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이 <박쥐>가 감독의 의도를 밝히는 시간을 가졌을 정도니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지요.

 어떻게 보면 대중적인 것 같고, 어떻게 보면 대중성을 버린 것 같은 영화 <박쥐>. 도대체 이 영화가 어떻길래 이렇게 영화계를 떠들썩하게 했나 한 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2. 감독 박찬욱의 힘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는 처음부터 충무로를 시끄럽게 했던 영화입니다. 개봉 시작 사흘만에 71만 5천 명을 동원했습니다. 2009년도 최고의 흥행작으로 손꼽히는 영화 《과속스캔들》의 70만 9천 명 기록을 뛰어 넘은 것이죠. 보고 난 이들의 평가는 엇갈렸습니다. 어려웠다와 역시 박찬욱 감독이라는 탄사로 엇갈렸던 것이죠. 

 영화<박쥐>는 어렵다가 주 평가였습니다. 흔히들 우리나라 대중의 수준을 중학교 3학년이라고 평가하고 상업영화는 그 정도 수준에 맞춰서 모든 것을 제작합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그것을 내던졌고 어쨌든 어느 정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 스스로 가장 재밌게 작업한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감독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다 보니 어떻게 보면 예술성이 강조된 영화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부분을 볼 때, 다른 그 어떤 감독도 아닌 박찬욱 감독이기에 대한민국의 핫 이슈(Hot Issue)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개봉되었던 봉준호 감독의 마더도 빼먹을 수 없지요. 하지만 박찬욱 감독에 비해 훨씬 받아들이기 편했던 이야기임을 감안한다면 대중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백만이 넘는 관객을 <박쥐>를 본 것은 순전히 박찬욱 감독의 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3. 박쥐가 된 신부

 송강호가 열연한 신부 상현은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자괴감에 빠집니다. 그런 그가 선택한 것은 엠마누엘 바이러스 일명 ‘이브’에 생체실험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만난 의사가 하는 말이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기도에 무력감을 느낀 성직자들이 자살의 다른 방법으로 실험 대상을 자처한다”, “심리학적으로 자살과 순교를 구분하기 힘들다.” 이처럼 그의 생체실험 지원은 자살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자살을 죄악으로 여기는 가톨릭에서 신부인 그가 자살을 선택하다니? 순교라고 치장되어 있지만 순교와 자살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의 생체실험 지원은 사실상 죄악을 저지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가 지내는 공간은 순결하기만한 백색의 공간이 아닌 온갖 벌레들이 지나다니는 공간입니다.

 결국 신부 상현은 죽습니다. ‘이브’ 바이러스는 신부 상현은 죽이고, 수혈된 피를 통해 상현은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납니다. 죽는 방식이 정상적이지 않으니 다시 살아난, 크리스트교에서 이야기하는 부활이 아닌 아예 새로운 객체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상현이 뱀파이이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브’(성경에 나오는 세계 최초의 여성)입니다. ‘이브’라는 이름은 최초의 어머니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도 나왔듯이 지상낙원 ‘에덴’에서 쫓겨나게 만드는 타락의 상징(반대로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는 동정녀로써 순결하고 순수한 상징으로 나타납니다.)이기도 합니다. 최초의 어머니 ‘이브(타락의 상징이기도 한)’에게서 태어났으니 더 이상 신부일수 없고, 가톨릭에서 쫓아내야할 사생아 ‘뱀파이어’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순결해야할 신의 자식인 신부가 ‘뱀파이어’로 재탄생하면서 새로운 종으로 변환됩니다. 수혈 받아서 '뱀파이어'가 되었지만 수혈을 해준 존재는 찾을 수 없고 작품 속에서 보이는 '뱀파이어'는 오로지 상현 혼자입니다. 게다가 다시 태어난 정체성이 '뱀파이어'라니. 욕망의 화신이자 인간의 피를 마시지 못하면 그 생을 이어나갈 수 없는 존재, 그것이 '뱀파이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이런 모습을 과연 타락했다고만 볼 수 있을까요? 나중에 나오지만 하얀색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상현의 순수성을 강조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행복한 복집 이층 일부분을 전부 하얀색으로 칠해버릴 만큼 말이죠. 덕분에 욕망의 화신 '뱀파이어'가 되어서야 진정한 ‘예수’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4. 붕대 감은 예수

 약 이천년 전에 예루살렘이라는 중동지역에서 예수라는 인물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영향에 의해 전 세계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교단체가 탄생하게 됩니다. 영화 <박쥐>에서 등장하는 많은 부분을 가톨릭적 상징에 기대어 이야기하고 있다. 엠마뉴엘 바이러스나 ‘이브’, 붕대 감은 성자 등등. 그런데 도대체 ‘예수’가 어떤 존재이기에 이렇게 많은 상징들을 차용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을까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영화 <박쥐> 식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상처 입은 신’이라는 것입니다. 

 문씨 성의 어떤 목사님과의 대담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수가 진정한 구세주로서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상처 입은 신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상처 입었기 때문에 그 고통을 너무나 잘 알고 치유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의 종교, 그리스•로마 신화나 이집트 신화 등에서 보다시피 신은 완벽한 존재였습니다. 신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벌 받지 않고, 모습 또한 인간이 아닌 재칼, 부엉이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결국 신이란 완전무결한 존재에서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신의 재탄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 목사님이 하신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박쥐>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뱀파이어로써 자신을 억누르는 상현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기로 한 순간부터 붕대 감은 예수상의 모습과 매치됩니다. ‘예수’가 한 말 중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으면 구원에 다다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상현의 십자가는 바로 욕망과 쾌락을 갈구하는 뱀파이어 자기 자신인 것이지요. 그가 옛 친구의 부인 태주와 만나면서 자기 속에 있던 죄의식과 마주하게 됩니다. 순결함 그 자체이던 그에게 도피할 수 없는 죄악을 범하게 한 쾌락과 타락의 화신 ‘이브’처럼 보이는 ‘태주’가 등장합니다. 


 5. 이브의 화신 태주

 태주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급변하기 시작합니다. 치정, 살인, 호러등 여러 가지의 장르가 복합된 <박쥐>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솝우화에서처럼 날짐승도, 들짐승도 아닌 존재 ‘박쥐’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박쥐의 이런 다양한 면모 때문일까? 어떤 주제를 가지고 접근해도 이 영화는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결국 ‘이브’의 화신으로 보이는 태주를 만나서 신부 성현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 뱀파이어의 숙명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옛 친구를 살해하고, 친구의 어머니를 식물인간과 다름없게 만들며, 마작패 ‘오아시스’ 회원들을 살해합니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 죄악을 모아 창조했다는 뱀파이어처럼 상현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신이란 존재에 대해 깊이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나중에 태주에게 병균이란 소리를 듣자 불같이 화내며 나중에는 태주마저도 뱀파이어로 만들어 버리지요. 원죄가 병균인걸까? 오히려 이 원죄 때문에, 병균 때문에 인간이 더욱 인간다워진 것은 아닐까? 결국 뱀파이어로 변한 두 박쥐의 최후는 비참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6. 결론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습니다. 원죄는 나쁜 것이라고 교육받아오던 나에게 원죄가 있기에 더욱 인간다운 것이고, 예수가 뱀파이어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직접적으로 물어오는 듯 했습니다. ‘이브’가 지혜의 열매로도 이야기 되는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듯이 상현은 ‘이브’를 통해 에덴에서 쫓겨나 진정한 인간으로 재탄생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성자 또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강간하는 척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구원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박쥐>가 더욱 불편했던 것은 피해자가 가해자이며, 가해자가 피해자인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기 때문입니다. 라 여사가 마지막으로 태주와 상현의 자살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 모습은 불편하다 못해 소름이 끼쳤습니다. 절대 선의 상징인 예수와 절대 악의 상징인 뱀파이어를 통해 보여주는 선악의 불분명함, 그리고 과연 인간은 무엇인지, 인간성은 도대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 영화 <박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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