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라캥>을 읽고
19세기 프랑스 파리, 여기 두 남녀가 있습니다. 바로 ‘테레즈’와 ‘로랑’. 불륜 관계의 두 남녀는 ‘테레즈’의 남편, ‘카미유’를 살해하고 위태로운 관계를 이어갑니다. ‘카미유’ 살해 후 둘은 용의선상에서 벗어나 부부관계가 됩니다. 그토록 바래왔던 결혼일텐데 둘은 이 결혼 생활을 못 견뎌합니다. 이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은 결국 둘을 파멸로 이끕니다. 도대체 왜?
두 남녀가 간절히 바래왔던 결혼이 둘을 파멸로 이끌었다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왜 둘은 결국 서로 증오하게 되는 것일까요?
여기서 잠시 폴 엘뤼아르의 시 「커브」를 인용해야 할 듯 합니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우리에게는 양귀자의 소설 제목이자 영화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시입니다. 저는 여기서 ‘소망’을 ‘욕망’으로 바꿔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욕망한다/내게 금지된 것을’ 이라는 구절이 되겠지요. 그래서 제목도 이렇게 썼던 것이구요. 소설 <테레즈 라캥>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1867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소설 <테레즈 라캥>을 지금부터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설 제목이기도 한 ‘테레즈 라캥’은 여주인공의 이름입니다.
그녀는 강철 같은 건강 체질이었는데도, 마치 허약한 애처럼 사촌오빠와 약을 나누어 먹고 어린 병자가 차지하고 있는 방의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서 갇혀 자랐다. 그녀는 벽난로 앞에 몇 시간 동안이나 쭈그리고 앉아 생각에 잠긴 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눈앞의 불꽃을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환자처럼 지낸 생활은 그녀를 내성적으로 만들었다. 말도 작은 소리로 하고 걸을 때도 거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 멍청히 눈을 뜨고 의자에 말없이 앉아 있는 버릇도 생겼다. 그래도 그녀는 팔을 들 때나 발을 앞으로 내디딜 때면 자신 속에 숨어 있는 관능적 부드러움과 민첩하고 강한 근육, 그리고 억압된 육체 속에 잠자고 있는 격렬한 힘과 정열을 느낄 수 있었다.
……((중략))…
테레즈는 불꽃같은 천성을 마음속에 조심스럽게 감추어두기만 했다. 조용하고 극도로 냉정해 보이는 그녀 안에는 무서운 격동이 숨겨져 있었다.
-<테레즈 라캥>, 문학동네(이하 본문으로 표기), 30~31쪽.
열정과 생기 넘치는 여자, 테레즈는 이렇게 표현됩니다. ‘테레즈’는 사촌 오빠 ‘카미유’와 고모 ‘라캥 부인’ 덕분에 무탈하게 자랄 수 있었지요.
‘라캥 부인’은 ‘테레즈’가 성인이 되자 ‘카미유’와 결혼을 시킵니다. 결혼이 항상 애정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결혼,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카미유’와 ‘테레즈’ 둘의 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라캥 부인’의 과잉 보호 아래 자란 ‘카미유’와의 강제 결혼이 행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혼 이후, ‘카미유’의 강력한 의지로 베르농에서 파리, 퐁네프 파사주에 위치한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처음 상점 안으로 들어갔을 때, 테레즈는 마치 땅 밑에 있는 기름투성이 시궁창 속으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몸이 떨렸다. 그녀는 습기가 차있는 더러운 주랑(柱廊)을 바라보았다. 상점을 돌아본 뒤 이층으로 올라가 방들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가구 없이 텅 빈 방들은 무섭도록 적막했으며 곳곳이 파손되어 있었다. 젊은 여인은 손 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얼어붙은 것 같았다. 라캥 부인과 남편이 아래층으로 내려간 다음 그녀는 주먹을 꼭 쥔 채 목이 메어 짐짝에 앉아 있었으나 울 수도 없었다.
-본문, 39~40쪽.
테레즈의 눈을 따라 묘사된 퐁네프 파사주의 집은 마치 무덤 속처럼 느껴집니다. 이 무덤 같은 집에서 목요일마다 손님 접대를 하는데 오는 손님들도 마치 유령처럼 보입니다.
램프에서 나오는 노랗고 뽀얀 안개 너머로 그들의 머리를 보고 있노라면 그녀는 울적해졌다. 그녀는 머리 하나하나를 심한 경멸과 말없는 흥분 속에서 번갈아 바라보았다. 늙은 미쇼의 푸르스름한 얼굴에는 붉은 점이 나 있는데 노망기가 든 늙은이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베는 면상이 좁은데다가 눈이 동그랗고 입술은 백치처럼 엷다. 광대뼈가 불거져나온 올리비에는 뻣뻣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머리가 우습게 생긴 몸 위에 달려 있다. 올리비에의 아내인 쉬잔으로 말하자면 안색이 몹시 창백하고 눈은 멀겋고, 입술은 희고 얼굴은 맥없어 보인다. 테레즈는 이 기괴하고 불길한 사람들 속에서 정말 살아 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가끔 그녀는 줄을 잡아당기면 머리를 움직이고 팔다리를 놀리는 기계적인 시체들과 함께 지하실 밑바닥에 파묻혀 있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히곤 했다. 식당의 탁한 공기는 가슴을 짓눌렀다. 전율을 느끼게 하는 침묵과 램프의 노란 불빛에서 그녀는 막연한 공포와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뼈저리기게 느꼈다.
-본문, 47쪽.
테레즈는 마치 무덤 속에 안치된 인형처럼 그들을 바라보며 혐오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로랑’이라는 사내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훤칠한 키에 건장하고 얼굴빛이 싱싱한 로랑을 보고 놀랐다. 그녀는 인간다운 인간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본문, 50쪽.
‘인간다운 인간을 본 적이 없었’다라는 ‘테레즈’의 표현이 의미심장하게 읽힙니다. ‘테레즈’에게 ‘인간다운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그의 옷 아래로 잘 발달된 근육과 두껍고 굳센 육체를 느낄 수 있었다. 테레즈는 주먹에서 얼굴에 이르기까지 호기심을 가지고 이 남자를 살펴보았다. 황소 같은 목에 시선이 닿을 때는 약간의 전율을 느끼기조차 했다.
-본문, 51쪽.
‘테레즈’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로랑’의 ‘육체’에 도달합니다. ‘테레즈’는 ‘카미유’와 반대되는 ‘육체’에 매혹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육체’ 속의 ‘로랑’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요?
실상 그는 게으름뱅이에다 동물적인 욕망의 소유자였고, 편하고 오래가는 향락만을 추구했다. 크고 건장한 그의 체구가 바라는 것은 오직 무위도식하고 한가롭게 뒹굴며 즐거움에 탐닉하는 것이었다. 그는 할 수만 있으면 잘 먹고 잘 자면서 그의 욕망을 마음껏 만족시키려 했다. 조금이라도 피곤한 일은 하려고 하지 않았다.
-본문, 53쪽.
‘게으름뱅이’, ‘동물적인 욕망의 소유자’. ‘로랑’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 중에 눈길이 가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바로 ‘동물적인 욕망’이죠. ‘테레즈’는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인간’보다는 ‘동물’, ‘인간성’보다는 ‘동물성’에 끌립니다.
로랑은 고개를 들어 앞에 앉아 있는 테레즈를 응시했다.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그 젊은 여인도 강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엷은 검은색 눈은 끝없이 깊은 두 개의 구멍 같았다. 조금 벌려진 입술을 통해서 밝은 장밋빛 입 안이 드러나 보였다. 그녀는 짓눌리고 움츠러든 듯했지만,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로랑의 시선이 테레즈에게 카미유 쪽으로 향했다. 그는 미소를 참고는 큼지막하고 육감적인 몸짓과 함께 말을 끝냈다. 젊은 여인은 눈으로 그 몸짓을 좇고 있었다.
……((중략))……
그리고 몸에서 풍겨나오는 거칠고도 달콤한 냄새에 마음이 쏠려서 그녀는 초조하고 괴로운 기분에 빠져 있었다.
-본문, 56~58쪽. 밑줄 강조는 필자
‘로랑’이라고 다를까요? ‘로랑’ 또한 ‘테레즈’를 의식하며 ‘응시’ 합니다. 이 ‘응시’는 ‘욕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 두 남녀 사이에 ‘카미유’가 있습니다. ‘테레즈’에게도 ‘로랑’에게도 ‘카미유’가 있습니다. ‘카미유’가 있음으로 두 남녀의 ‘욕망’은 불붙기 시작합니다. 왜?
바로 금지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잠시 이야기를 돌려 우리는 왜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볼까 합니다.
욕망 :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네이버 국어사전
‘욕망’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게 나옵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볼 부분은 ‘부족을 느껴’라는 구절인 듯 합니다. ‘부족’을 느껴서 그것을 가지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금지’, ‘금기’ 따위에 끌리기 마련이겠지요. 왜냐하면 사회가 ‘금지’ 시켰기 때문에 애초에 ‘부족’한 상태일 수 밖에 없고, ‘금지’는 계속해서 ‘욕망’을 작동시키는 아주 중요한 동력이 될 수 밖에 없겠지요.
‘로랑’과 ‘테레즈’는 ‘카미유’라는 존재 때문에 불륜 관계가 됩니다. 불륜(不倫)은 한자어로 ‘윤리가 아니다.’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비윤리적이라는 말은 사회적 규범에 맞지 않다는 말이 됩니다. ‘금지’된 것들은 모두 사회적 규범에 맞지 않기 때문에 ‘금지’됩니다. 당연히 사회가 변하면 ‘금지’된 것들은 변화합니다. 그래서 사회 변화에 따라 우리의 ‘욕망’도 변화합니다. 왜일까요? 사회 변화에 따라 ‘금지’된 것들이 변했으니 우리의 ‘욕망’도 변하는 것입니다.
여기 ‘테레즈’와 ‘로랑’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둘은 서로를 욕망했기 때문에 ‘카미유’를 살해합니다. ‘금지’된 것을 얻기 위해 일종의 장애물에 불과한 ‘카미유’를 치워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마음껏 욕망할 수 있고, 실현할 수 있게 되니 오히려 고통스러워 합니다.
그들의 키스는 무섭게도 잔인했다. 테레즈는 입술로 로랑의 부풀고 뻣뻣한 목덜미에서 카미유가 물어뜯은 자국을 찾았다. 그리고든 흥분에 떨며 자신의 입술을 그곳에 갖다댔다. 거기엔 생생한 상처가 있었다. 이 상처가 나으면 두 살인자는 조용히 잠들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런 사실을 알았으므로 애무의 불꽃으로 그 상처를 없애려 했다. 그러나 입술이 타기만 했다. 로랑은 묵직한 탄식을 내지르면서 우악스럽게 테레즈를 떼밀었다. 자기 목에 뜨거운 쇠를 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미친 듯한 테레즈는 또다시 흉터에 키스하려 했다. 카미유의 이빨이 쑥 들어갔던 그 피부 위에 입을 대면 거친 쾌감이 느껴졌다. 잠시 그녀는 그 상처 자리를 물어뜯어 넓은 살 조각을 떼어내 원래의 상처를 덮어씌울 더 깊은 새 상처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이빨 자국을 보면 새파랗게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로랑은 키스를 받지 않으려고 목을 피했다. 너무나 심한 아픔을 느꼈던 것이다. 그는 테레즈가 입술을 내밀 때마다 번번이 밀치곤 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공포스러운 애무 속에서 버둥거렸고 헐떡이면서 싸웠다.
서로 고통만 더할 뿐이었다. 무섭게 껴안아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고통으로 고함을 지르고, 서로 불태우고 서로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공포에 질린 신경을 안정시킬 수는 없었다. 껴안을 때마다 그들의 혐오감은 더욱 강해지기만 했다. 으스러지도록 키스를 하고 있는 동안 그들은 끔찍한 환각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죽은 자가 발을 잡아당기고 침대를 마구 흔드는 것 같았다.
잠시 그들은 서로 힘을 풀었다.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혐오감과 신경의 반항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굴복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다시 껴안았다가는, 붉은 쇠막대가 사지를 뚫고 들어오기나 한 듯이 몸을 떼내야 했다. 그들은 이처럼 여러 차례 불쾌감을 이겨내려 하고, 지쳐 신셩을 마비시킴으로써 모든 것을 잊으려 애썼다. 그러나 이럴 때마다 번번이 그들의 신경은 흥분하고 긴장되어, 서로 껴안고 있었다면 신경이 터져 죽었을 정도의 극단적인 좌절에 이르고 말았다. 육체에 대한 이러한 투쟁은 미칠 지경으로 격화되었다. 그들은 기를 쓰고 육체를 이겨내보려 했지만, 마침내 더욱 심한 발작에 굴복하곤 했다. 그들은 말할 수 ㅇ벗을 정도의 과격한 충격을 받고 심한 고통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열에 들뜬 채 죽을 지경이 된 그들은 침대의 양 끝에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본문, 238~239쪽.
앞서 이야기했던 ‘나는 욕망한다/내게 금지된 것을’의 정반대 지점이 여기서 이루어 집니다. ‘나는 욕망하지 않는다/내게 금지되지 않은 것을’. 게다가 ‘살인’이라는 ‘금기’를 범한 이 살인자들에게 불안과 공포가 찾아옵니다. 욕망이 실현되는 순간 떠나버린 ‘욕망’의 자리, 그 텅 빈 공간에요.
정확하게 ‘카미유’ 때문에 ‘욕망’했고, ‘카미유’ 때문에 ‘금기’를 범했고, ‘카미유’ 때문에 ‘불안’과 ‘공포’를 얻게 된 것이지요.
그는 다시 잠들려 했다. 그러나 욕정에 싸인 옅은 잠과 갑작스럽고 가슴을 찢는 듯한 깨어남이 계속되었다. 그는 미칠 둣이 끈기 있게 테레즈 쪽으로 갔으나 부딪히는 것은 역시 카미유의 시체였다. 열 번 이상을 그는 아주 정확하게 그 길을 되갔다. 육체를 불태우면서 똑같은 행동을 했다. 그리고 번번이 정부를 껴안으려고 팔을 벌리면 물에 빠져 죽은 카미유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그를 숨가쁘게 하고 공포에 질려 깨어나게 하는 이 불길한 결말도 그의 정욕을 식히지 못했다.
몇 분 후 다시 잠들자마자 그의 정욕은 그를 기다리고 있는 끔찍한 시체를 망각하고, 한 여자의 뜨겁고 부드러운 육체를 만나려고 다시금 달려갔다. 한 시간을 꼬박 로랑은 계속적인 악몽에 시달렸다. 매번 의도하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기분 나쁜 꿈속에 빠져들었다. 그 악몽은 벌떡 깨어날 때마다 로랑을 더욱 심한 공포로 기진맥진하게 했다.
-본문, 171쪽.
테레즈 역시 열이 났던 그 무서운 밤에 카미유의 유령을 보았다.
서로 무관심한채 일 년이 흐른 후 밀회를 요구하는 로랑의 타는 듯한 제의는 별안간 테레즈의 마음을 채찍질했다. 혼자 누워서 곧 결혼이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자 테레즈의 육체는 지글지글 끓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으로 잠이 오지 않아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죽은 남편의 환영을 보았다. 그녀는 로랑처럼 정욕과 공포로 몸이 비비 꼬이는 것 같았다. 로랑과 마찬가지로 정부를 끼고 있으면 겁도 나지 않고 이런 고통도 느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 175쪽.
‘카미유’ 살해 후, ‘로랑’과 ‘테레즈’가 정욕에 못이겨 서로를 떠올릴 때마다 그들 사이에 ‘카미유’가 살아 돌아옵니다. 죽은 몸을 이끌고서 말이지요.
사람은 모두 두 번 죽습니다. ‘실질적 죽음’과 ‘상징적 죽음’을 통해서 말입니다.
‘로랑’과 ‘테레즈’ 사이에 돌아오는 유령 ‘카미유’는 이 둘의 욕망이 이제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모른채 그저 습관처럼 서로를 떠올리면 따라옵니다. 이 둘의 욕망을 작동시키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욕망이 작동하면 ‘카미유’는 따라오는 것이지요.
이제 ‘로랑’과 ‘테레즈’는 서로 죽이기를 마음먹습니다. ‘카미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카미유’를 살해한 것처럼 죽은 ‘카미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러다가 테레즈와 로랑은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마지막 발작에 그들의 마음은 찢어져서 마치 어린애들처럼 서로 상대방의 품 안으로 덤벼들었다. 그러자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엇이 그들의 가슴속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그들이 지금까지 겪어왔고, 또 비겁함으로 인해 살아남게 되면 또다시 겪어야 할 심연 속의 생활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과거를 회상하자, 끝없고 거대한 휴식과 망각을 바랄 만큼 지쳐, 스스로에 대해 구역질을 느꼈다. 그리고 칼과 독이 든 컵 앞에서 마지막 시선, 감사의 시선을 교환했다. 테레즈는 그 컵을 들어 반쯤 마시고 나머지를 로랑에게 내밀었다. 로랑은 단숨에 마셨다. 그것은 하나의 번개였다. 그들은 벼락을 맞은 듯이 서로 포개져 쓰러지고 마침내는 죽음 속에서 하나의 위안을 찾았다. 젊은 여인의 입은 남편의 목에 있는 흉터에 닿았다. 그것은 카미유가 이로 물어뜯어 생긴 상처였다.
-본문, 348쪽.
‘테레즈’와 ‘로랑’은 서로의 살기를 알아차리는 순간, 텅 빈 욕망의 자리를 알아차린 듯 합니다. 그리고 밀려드는 ‘과거’에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을 느낀 듯 합니다. 두 주인공은 욕망이 텅 빈 자리에서 정말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거대한 휴식과 망각’임을 알아차립니다. 이 지점에 와서 두 남녀는 가장 평화롭게 음독자살하며 소설은 끝이 납니다.
이 소설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말하면 이렇지 않을까요? 욕망의 정체를 알지 못했던 두 남녀의 좌충우돌이라고. 이 두 사람 사이의 ‘카미유’라는 존재가 욕망을 작동시키는 스위치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끝끝내 ‘카미유’에게 시달리다 파멸해 버린 것입니다.
자, 처음에 시작했던 명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나는 욕망한다/내게 금지된 것을’
혹시 당신의 ‘카미유’는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당신의 ‘카미유’는 지금 무사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