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3 박해받는 편에 섰던 정의로운 자, 피터 노먼
1968년 10월 17일, 멕시코 올림픽 육상 200m 시상식.
세 사람의 메달리스트들이 시상대에 오른다. 목에 메달을 걸 때까지만해도 다른 시상식과 다르지 않았던 모습은 국기가 게양되고 국가가 울리기 시작할 때 갑자기 변했다. 1위와 3위를 차지했던 두 미국 선수들이 고개를 숙여 국기를 외면하며 오른손과 왼손을 굳게 쥐고 하늘로 뻗어든 것. 훗날 Black Power Salute라 불리게 된 이 모습은 흑인의 인권신장을 위한 일에 헌신했다 그해 암살당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추모하고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행동이었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장면 이후, 각오 단단히하고 시상대에 올랐던 세 사람의 인생도 완전히 달라진다. 당시 IOC위원장이었던 에이버리 브런디지는 "니그로의 추태"라는 망발을 서슴치 않았고 그들의 메달도 모조리 박탈하려했으나 다행히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금, 동메달 리스트였던 토미 스미스와 존 칼로스 두 선수 모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백인들로부터 지속적인 살해협박을 받았고 다시는 운동장에 나설 수 없었다.
체육교사로 올림픽에 출전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호주의 피터 노먼이 당한 수모는 다른 두 선수들보다 오히려 더 심했는데 백인이었음에도 적극적으로 둘의 행동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했다가 - 한 켤레 밖에 없던 장갑을 오른손과 왼손에 나눠서 끼라고 조언해주고 가슴에는 함께 '인권을 위한 올림픽 위원회(Olympic Committee for Human Rights; OCHR)'뱃지를 착용하고 시상대에 오른다 - 학교에서도 내쫓겼고 다음 올림픽이었던 1972년 뮌헨 올림픽의 출전권을 땄음에도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출전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이처럼 원주민인 에보리진을 박해하던 호주와 공공연하게 유색인종을 차별하던 미국의 모습은 같은 배에서 나온 쌍둥이처럼 닮은 면이 있었고 그 야비하고 비열한 모습은 오히려 호주가 미국을 능가하는 모습을 보인 것.
200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노먼은 단 한 번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 적이 없었는데, 2005년 산호세 주립대학교에 이 사진을 모델로 동상이 세워질 때의 이야기가 그 정점을 보여준다. 이 동상에는 피터 노먼이 섰던 2위 자리가 비어있는데, 이는 "나는 그 일에 관련해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동상을 보고 그 날을 기억하는 이들이 그 빈 자리에 서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할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는 노먼의 뜻이었다고.
동메달리스트였던 존 칼로스는 "우리(토미 스미스, 존 칼로스)는 약간의 좌절을 맛봐야했지만, 그(피터 노먼)는 자신의 조국 오스트레일리아와 끝까지 싸워야 했습니다."라고 그가 받았던 불합리함을 비판한 일이 있었는데 2006년 세상을 떠난 노먼의 장례식에서 미국에서 날아온 스미스와 칼로스는 그의 관을 운구하며 그를 기렸다. 그의 죽음 앞에서도 사과나 복권이 없었던 그의 조국 호주는 비로소 2012년, 44년이 지나서야 의회를 통해 공식적인 사과를 했고 피터 노먼은 그제서야 공식적으로 명예를 회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