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은 선박들
사실 역사에 남은 선박들을 살펴보면 불편한 역사로 남은 선박들이 더 많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혁혁한 전과를 자랑할 수 있는 군함들과 달리 민간용 선박들의 경우, 역사에 남은 모습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모습들로 남은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 사고의 주인공들인 경우가 많은 것. 우리에게도 크나큰 상처로 남은 세월호에서 보듯 그런 사고의 주인공들은 애초 사고를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있음에도 그것을 무시했다가 참사로 이어진 경우가 대다수인데 오늘의 주인공 역시 그런 안 좋은 역사의 정점에 서있는 선박의 이야기다.
보통 여객선의 경우, 한 번 해난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그 어떤 선박보다도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목적이 사람을 싣기 위한 배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지만 사고가 발생한 선박 중 백에 구십은 처음의 설계와 다른 방식으로 개조된 개조선의 경우가 많다. 애초 처음 설계되었을 당시보다 더 많은 사람이나 짐을 싣기위한 구조로 개조된 선박들이 많다는 것, 그 자체로 개조 당시 가장 먼저 고려되었어야할 안전문제를 가장 뒷전으로 돌려버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선원의 기량이나 자세와 같은 기본적인 부분이 결여된 경우가 거기에 추가되곤 한다. 사실, 선박사고의 대부분은 Human Error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안전하지 못하게 개조된 선박에, 함량미달의 선원이 합쳐져있다면 당연히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위태로운 상황인 것이다.
필리핀에서 벌어졌던 도냐파즈호 사건은 바로 그 위법하게 개조된 선박과 함량미달의 선원, 그리고 위법한 항해 세 가지 요소가 합쳐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준 참혹한 사건이었고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 깨져서도 안될 - 역사상 최악의 인명피해를 일으킨 해난사고로 남아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던 1987년 12월 20일,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한 승객들이 몰려들었던 레이테섬의 타클로반항, 1963년 일본에서 건조된 총톤수 2,324톤의 도냐파즈호에도 이른 시간부터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로 향하는 이 여객선은 이미 정원인 1,452명을 넘어서는 표가 발권된 상황이었지만 대목에 한 몫 땡기는 것만 생각한 선사는 무리한 발권을 감행하며 승객들을 배로 모으기 시작했다. 선령이 25년을 향해가는 노후선에 '늘 그래왔던 것 처럼' 습관적으로 행해진 과적...이미 그 자체로 안전을 무시한 행위였지만 당장의 이익에 급급했던 선사는 갑판부터 통로까지 모든 공간을 사람과 짐으로 가득채우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출항전부터 이미 감항성 자체를 의심할만한 위험한 상황이었다.
공식 승선 명부에는 1,500여 명만 기록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암표를 사거나 아이들을 숨겨서 타는 등 이후 공식적인 집계로 - 당연히 공식적인 집계보다 더 많은 인원이 탔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 - 이미 정원에 세 배에 가까운 4,000여명의 인원이 배에 올랐고 복도는 물론 선실 밖의 상갑판까지 사람들이 신문지를 깔고 누워 있을 정도였으니 선사측의 무사안일 주의는 이미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22시 30분경, 대부분의 승객이 잠든 시각, 도냐 파즈호는 필리핀 타블라스 해협(Tablas Strait)을 지나고 있던 상황에서 항로 반대편에서 접근하던 소형 유조선 MT Vector호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통상 선박이 접근할 당시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서로 교신하며 안전한 항로를 서로 택하게 되는데 당시 양측 선박 사이에서 이런 움직임은 전혀 없었고 무방비상태에서 정면 충돌하게 된 것. - 그 이유는 사고 이후의 조사에 밝혀지게 되는데, 도냐파즈호의 경우 VHF설비를 아예 작동하고 있지 않았고 선교를 지키고 있었어야할 선장과 당직 항해사는 음주를 하거나 TV시청을 위해 선교를 실습생에게 맡기고 벗어나 있었고 MT Vector호의 경우, 이미 노후선으로 운항 면허도 없는 상황에 선장이 배를 운항할 수 있는 면허자체가 없었음이 드러나게 된다.
문제는 충돌한 상대 선박인 MT Vector호가 휘발유와 석유 제품 8,800배럴을 싣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충돌 직후 화물에 불이 옮겨붙으며 폭발이 일어났고 유출된 휘발유들이 충돌현장 자체를 뒤덮게 된 것. 충돌로 인해 배에 침수가 시작되며 전기가 끊기며 불길 외에는 아무런 광원이 남지 않았고 개인당 하나씩 지급되게 되어있던 구명조끼는 승선인원에 비해 터무니없이 모자랐던데다 그나마 자물쇠로 잠겨있어 제대로 착용할 수 있는 인원들이 전무한 상태였던 것까지 참사를 부추기고 있었다. 이미 통로까지 사람들로 들어차 밖으로 나올 수 없던 이들은 속절없이 침몰하는 배 안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불타는 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던 이들도 유출된 휘발유로 인해 불타고 있었던 상황에 대부분 죽음으로 떠밀려갔다.
선사측은 사고 이후 처음 승선명부에 있던 이들만 희생자로 인정하려했으나 사고인원 이상의 시신이 계속 발견되고 실종자 가족들의 증언이 이어지며 사고 조사에 나섰던 필리핀 정부에서 최종적으로 집계한 결과 4,386명이 사망한 것으로 발표하는데 이는 타이타닉 침몰 당시 사망했던 1,514명의 3배에 달하는 엄청난 인명피해였다. 이 생지옥과 같은 사고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 26명이었는데 수면에 퍼져있던 불을 피해 잠수해서 불길을 피할 수 있었던 이들만이 크고 작은 화상을 입은 상태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전쟁 중이 아닌 평시의 해난사고로 가장 많은 인원이 사망한 사건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는 사고로 기록된 도냐파즈호 사건. 후진적인 운항 시스템과 자격미달의 선원들, 거기에 무사안일 주의가 낳은 참극으로 다시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나서는 안될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