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nagua에서 만난 남미의 눈물
남쪽 하늘엔 우리나라에서는 보이지 않는 남십자성 - 호주 국기에 붙어 있는 바로 그 별. 적도 이남에서만 보여서 우리나라에서 관측할 수 없음 - 이 번쩍이며 가는 길을 비추고 있고 본선은 힘차게 동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내일 아침이면 아프리카 최남단 아굴라스곶에 도달하고 그때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여정은 마무리되고 조용한 바다, 인도양으로 접어들게 된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곡물을 싣게 되는 항구에는 늘 물고기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어른들 장딴지만 한 월척들이 떼 지어 몰려다는 것을 보면 낚시하고픈 생각보다는 오히려 거부감이 들 곤 했지. 어항 속에서 물 밖으로 뻐끔대는 금붕어 마냥 물 위에 떠있는 곡물을 주워 먹으며 덩치만 남산 만해진 녀석들. 그래도 그런 녀석들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있긴 했다.
뉴올리언스에서는 악어들이 그랬고 이번 파라나구아에선 돌고래들이 그러했는데, 배들이 접안하는 부두 바로 앞까지 와서 물고기를 낚아채가던 녀석들... 이 녀석들이 오히려 커다란 고기들보다 더 큰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배 주변을 서성이다 떨어지는 곡물을 주워먹으려는 물고기들을 노리는 돌고래들.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을 것에도 반응을 보이고 가끔 상반신을 물밖으로 내놓고 더 달라는 몸짓까지 보이는 녀석들로 배 주변은 때아닌 아쿠아리움으로 변하기도 했지.
불과 이틀 동안의 브라질 기항이었지만 정말 여러 가지 감정을 만나게 되었다.
이들이 보존하고 있는 역사적인 건물들은 죄다 17세기부터 시작된 포르투갈의 브라질 정복과 관련된 것들이었지.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은 것이 36년, 하지만 이들은 수백 년을 그들의 억압하에 있었으니 그것은 그럴 만도 한 일이려니 싶었지만, 그 외세의 점령이 독립을 이뤄낸 지 오래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이란 것을 마주하게 되니 더욱더 그들의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져 왔다.
우리가 접안해서 짐을 실은 부두는 전 세계 식품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세계 3대 식품 메이저 중의 하나인 Cargill의 곡물 부두였다. 인터넷을 검색해보시면 간단히 찾아지는 사실이지만 카길과 타이슨 푸드, 몬산토와 같은 식품 메이저들은 예전부터 식품에 대한 유전자 조작에서부터 남미의 원시림 파괴의 주범으로까지 계속 입방아에 오르는 ‘파렴치한 기업’으로 유명하지. 게다가 그런 일로 위축되기는커녕 식량 자체가 무기가 되는 현대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나가고 있는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전 세계적인 식량부족으로 인해 곡물 자체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상황은 그들이 더더욱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이 되어주고 있지. 굶어 죽기 싫다면 이들이 만든 곡물을 - 그것이 유전자 조작 곡물이라도 - 사다가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브라질에서 느낀 여전한 외세의 지배는 부두에서보다 그들의 시장에서 더더욱 심각하게 다가왔다. 이것저것 배에서는 구할 수 없는 과자들을 사러 찾은 Mart에 진열된 상품들 99%가 코카콜라의 자회사인 Nestle의 제품이었지. 아주 조금만 과장하면 그들의 가게에 놓인 상품 전부가 한 회사의 제품이었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이 정상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브라질의 전 세계 커피시장의 절반을 담당하는 세계 1위의 커피 생산국이다. 아마존으로 대변되는 되는 비옥하고 열대성 수목에 알맞은 기후로 인해 원래 원산지인 아프리카의 모든 커피 생산량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커피가 생산되는 국가가 바로 브라질. 하지만, 커피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는 청량음료지만 정작 그것을 만드는 이들은 적은 임금에 엄청난 노동량을 감내해야 하는 이유로 원주민의 눈물방울’이라 비유하는 쓰디쓴 표현도 이미 오래전에 등장해 있다. 그 이면에 바로 코카콜라나 카길과 같은 식품 메이저들과 거대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의 농간이 숨어있지.
원래 중구난방으로 생산하던 각국의 커피 생산자들이 함께 모여서 자신의 생산량과 그에 대한 수출 쿼터, 그에 따른 이윤을 배분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던 커피는 엄청난 자본을 가진 식품 메이저들이 시장에 끼어들면서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한때 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를 먹여 살리는 황금 자원으로 대변되던 커피가 하루아침에 생산자에게는 고통을 주고 식품 메이저들에게는 엄청난 이윤을 안겨주는 불공정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이지.
공정무역을 외치는 이들이 현재 가장 주목하고 있는 식품이 커피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와 같은 곳에서 생산된 커피를 공정무역을 통해 들여오는 이들이 있지만 여전히 극소수일 따름이고 정작 세계 1위의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은 그와 같은 외침조차도 거의 들리지 않는 상황이지. 이런 상황이 오히려 그들의 내수 시장 속에서 더더욱 심각하게 다가왔다.
커피 원두를 세계 1위 생산국에서 만날 수 없었던 현실이 그것이었지.
커피 원두를 구할 수 없었던 세계 1위의 커피 생산국
하루 종일 시내를 배회했어도 원두나 원두커피를 파는 음식점은 전혀 찾을 수 없는 커피 1위 생산국의 현실을 만나고 나니 지난번 콜롬비아의 일들이 다시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콜롬비아는 ‘최고급’이라는 이미지와 품질을 유지하면서 그들 스스로가 프랜차이즈 업체를 키워내고 국가에서 커피 산업에 대한 공정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브라질에서는 그와 같은 모습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브라질에서 운항 중에 쓰기 위해 부식으로 올렸던 커피는 네슬레의 인스턴트 제품이었고, 그나마도 너무나 맛이 없어서 부식 창고를 채우고 있는 신세로 외면받는 것이 그들의 답답한 현실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실이라고 할까.
얼마 전까지 시우바라는 걸출한 인물 - 그도 결국 퇴임 후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역사의 뒷자락으로 지고 말았지만 - 이 대통령으로 그나마 바꿔놓은 세상이 이런 모습이라니... 그 이전의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상상도 가지 않았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이방인의 눈에 비친 남미 1위의 대국 브라질의 현실은 이처럼 답답하기만 했지. 어쩌면 ‘커피’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이의 특권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커피를 맛볼 수 없던 커피 1위 국가에서의 이틀간은 원래 쓴맛의 커피맛을 앞으로 더더욱 쓰게 만들 듯 싶다.
단지 이틀간의 브라질 입항이었지만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스타벅스와 코카콜라를 반대하고, 공정무역을 부르짖는지 그 이유를 대강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이래저래 브라질 커피도 못 구했지만 앞으로는 맘 편히 스타벅스를 찾기도 어려울 듯. 생각하지 않는 사이에 자본과 힘은 이렇게 서서히 우리를 굴복시켜 가고 있었다.
*제 브런치에 사용되는 이미지는 모두 제가 직접 촬영한 이미지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