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은 배들
우리나라에도 바다로 부터 누군가가 찾아온다는 전승신화가 남아있다.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배필이었던 허황후가 돌배를 타고 인도 아유타국으로부터 찾아와 왕의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부터 연오랑과 세오녀가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넘어갔다는 이야기까지… 하지만, 다들 그 비유를 은유로 알고 있을 뿐 정말 돌배를 타고 오거나 바위를 타고 갔다는 얘기를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뭐 다른 것을 타고 갔겠지…하고 생각하거나 그냥 마음대로 꾸며진 이야기라고 생각할 뿐. 그렇게 생각하면 이야기들은 그냥 신화로 남아버리고 만다.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남미에서 배를 타고 서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이 서기 500년 이전에 폴리네시아로 넘어와서 자리를 잡았다고 믿었지만 - 폴리네시아인들은 자신들이 동쪽에서 넘어온 이들의 후예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 당시 학자들은 고대의 남미인들에게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항해술이 있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일축했다. 애초 이 논쟁을 시작했던 이가 여기에서 ‘그런가보다’라 체념하고 넘어갔다면 그 이야기도 그저 신화로 남았겠지만 그는 달랐다.
노르웨이의 인류학자인 토르 헤이어달(Thor Heyerdahl : 1914~2002)은 자신의 생각을 그저 신화로 남겨둘 생각이 없었고 기어이 고대 남미에서 전승되는 방식으로 배를 지어 태평양을 횡단하려 마음먹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자살행위’에 고국의 스폰서들은 등을 돌렸고 단 한 푼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페루로 향한다. 페루에서 대통령을 만나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고…페루 대통령은 자신의 조상들이 뗏목을 타고 바다 건너 폴리네시아로 향했다는 그의 견해에 동조하며 물심양면의 협조를 보내준다. 그리하여…
자신의 모험에 함께할 다섯 명의 동료들과 함께 1947년 4월 28일, 페루 까야오항을 출발하여 태평양을 건너는 장도에 오르게 된다. 기원전 잉카제국에서 사용했던 뗏목을 재현한 뗏목 콘티키호(Kon-Tiki : 잉카의 태양신)에 몸을 싣고. 오직 태평양의 해류와 바람에 의지한 이 무모한 도전은 숱한 우여곡절과 죽을 고비를 넘기며 3개월 넘게 이어졌으며 기어이 8,000Km 건너편의 폴리네시아 투아모투 제도에 도착함으로써 자신의 학설의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이 횡단여행을 카메라로 담았고 그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로 1951년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헤이어달은 탐험이 끝난 후, 콘티키호 탐험기(Kon-Tiki Expedition : 1948), 태평양의 아메리카 인디언(American Indians in the Pacific : 1952)을 발표하고 일약 전세계 모험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 이후 유전자 연구를 통해 폴리네시아인들의 조상은 그의 생각처럼 남아메리카인이 아니라 타이완과 인도네시아인들이었음이 밝혀졌지만 그 연구를 담당했던 학자들 조차 헤이어달의 연구가 틀렸음을 증명하게 된 것이 대단히 우울한일이라 유감을 표시했다.
토르 헤이어달은 그 이후에도 고대 이집트인들 방식으로 파피루스로 만든 배를 타고 대서양 횡단에 나서는 등 2002년 세상을 떠나기 까지 늘 모험가의 전형으로 살았다. 노르웨이 해군은 그를 기려 프리드요프 난센급 이지스 구축함 하나의 이름을 그의 이름 ‘Thor Heyerdahl’로 명명하기도 했다.
…그들을 페루에서 폴리네시아까지 실어날랐던 콘티키호는 폴리네시아에 도착하자마자 난파하면서 그 일생을 마쳤다. 하지만, 지금도 뗏목하나에 몸을 싣고 태평양을 횡단했던 모험가들의 투지는 남아 아직도 수많은 모험가들에게 그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