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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Mar 13. 2016

USS NAUTILUS (SSN-571)

역사에 남은 배들


어린 시절, 많은 친구들의 꿈은 ‘과학자'였다. 당시만 해도 군인, 대통령, 프로야구선수 등 별의별 꿈들이 친구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지만 다수의 의견을 차지했던 것’은 ‘과학자'였다는 것을 지금도 친구들의 입을 통해 증명해 낼 수 있으리라. 이런 배경에 나는 방학기간이나 숙제로 학교에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했던 ‘독후감'이 그 위력을 발휘한 것이라 믿고 있다. 재미없는 책은 죽어도 보기 싫었던 시절, 그나마 재미도 있고 부모님께도  꿈과 야망(?)을 키우는 책이라는 이유로 사달라는 말하기가 쉬웠던 부류의 책이 ‘공상과학소설'이었고 당당히 학교의 필독서 목록에도 들어있던 해저 2만 리와 같은 책이 그런 역할을 확실히 보여줬다. 

 

쥘 베른의 소설인 ‘해저 2만 리'는 1869년에 쓰인 소설(우리나라에서 병인양요가 있었던 3년 후라는 이야기) 임에도 나온지 한 세기 후의 어린 친구들의 가슴에도 큰 인상을 남긴 책인데 수수께끼의 인물 네모 선장과 다른 사람들 눈에는 괴물로 보이는 잠수함 노틸러스호 이야기를 주인공 피에르의 눈으로 풀어낸 소설이었다. 쥘 베른은 이 밖에도 ‘지구 속 여행' ‘80일간의 세계일주'와 같은 소설로 각광받은 소설가인데 그의 소설에서 다뤄졌던 많은 신기술은 20세기, 21세기에 걸쳐 실제로 등장하게 된다. 어쩌면 그의 소설은 미리 미래를 내다보고 적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의 소설 속에 등장했던 신기술 중 가장 극적(?)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해저 2만 리의 잠수함, 노틸러스호다. 1954년 12월, 세계 최초의 핵추진 잠수함으로 다시 태어난 노틸러스호는 길이 98미터, 폭 8.4미터의 당시로써는 상당히 대형의 잠수함이었는데 그 덩치에도 한 번의 연료 보급으로 6만 해리(111,120Km)를 항행할 수 있는 획기적인 선박이었다 - 이후 미, 소의 전략핵잠수함이 쏟아져나오는 계기가 된 것은 물론이다. 


구소련은 3년 후인 1957년에야 첫 핵잠수함인 K-19를 진수하게 되는데 애초 미국보다 기술력에서 뒤져있던 탓에 숱한 사고를 치고 Widowmaker(과부 제조기)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 이 소련의 잠수함과 관련하여 나온 영화가 해리슨 포드가 주연을 했던 <K-19 : The Widowmaker>였다. 


하여간 노틸러스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었던 사건은 최초의 핵잠수함이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조금 엉뚱한 것으로 벌어지게 되는데, 1958년 7월 28일 진주만을 출발하여 8월 3일, 해저를 통해 북극점에 도달하고 8월 12일 영국에 도착한 사건이었다. 

노틸러스호의 1958년 8월 3일자 Position Log

맨 처음 북극 도달 명령이 떨어진 것은 1957년 7월이었으나 극점에 가까울수록 요동치게 되는 마그네틱 컴퍼스의 문제로 아이슬란드 인근을 떠돌다 얼음 밑에 며칠 갇혀있는 우여곡절도 겪었고 두 번째 시도에서는 베링해를 통해 북극으로 진입하다 다시 빙산 사이에 갇히는 어려움도 겪었지만 세 번째 시도에서 정찰기의 도움을 받으며 빙산이 없는 곳을 찾아 베링해로부터 진입, 비로소 1958년 8월 3일, 북극점에 도달하였다. 


이후 노틸러스호는 3번에 걸쳐 북극탐험을 이어갔으며 1980년 퇴역, 현재는 코네티컷 주의 노틸러스 기념 박물관으로 탈바꿈, 민간에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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