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판장의 실수

즐거운 필리핀 하선자들

by 전재성

2009년 여름, 처음으로 5만원권이 발행되었다. 한국은행권으로는 전례없던 고액권으로 처음 나왔다는 말을 이메일로 전해진 뉴스를 통해 읽고 다들 궁금해하고 있던 상황. 하지만, 선상에 있는 이들에게 신권은 그저 소문으로만 들리는 물건이었고 다들 한 번 구경이라도 해봤으면 좋겠다고 기대에 차있었는데 아주머니께 이메일을 받은 갑판장이 웃으면서 한 마디 한다. '이번 교대자들 편에 오만원권을 몇 장 보낸다고 하니 그때 구경해보자구!'


'금번 024항차, 한국인은 3항사가 교대하고 실항사가 신규 승선하며 필리핀인 부원들은 Welder(용접수) 1명, OS(갑판원) 1명, AB(조타수) 2명, OLR(조기수) 1명이 교대하며 신규로 D/C(갑견원) 2명이 승선하게 됩니다.'라는 회사의 교대일정표를 받고 3항사나 실항사편으로 돈이 올라올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입항 나흘전에 원래 접안하기로 했던 PORT가 천진에서 카오페디안으로 바뀌었고 안개로 이틀간 앵커링한 후에 접안을 완료했다. 예정보다 늦은 접안으로 인해 선원교대는 서둘러 이루어졌고 접안과 수속, 양하준비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교대자들이 올라오는 바람에 오만원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느정도 여유가 생긴 저녁나절에 갑판장에게 물어보니 '아 이 아줌마가 까먹었는지 부탁한 돈은 안보내고 치약하고 양말만 올라왔어요!'라 투덜투덜하신다. 마침 승선한 실항사를 통해 오만원짜리를 구경할 수 있었고 다들 그간 기대와는 달리 그저 담담하게 돈구경(?)을 마칠 수 있었지. 갑판장은 집에 가는 길에는 툭툭 털고 새 양말 신고 가라며 하선하는 하선자들에게 집에서 온 양말 한 켤레씩을 건내주고 있고 선원들은 고맙게 선물을 받아들고 있었다.

_IGP8282.JPG 당시 함께 승선중이던 필리핀 선원들과 함께

다음날, 교대자들이 집에갈 준비를 하고 내려와서는 갑판장을 (새삼스럽게) 껴안고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Thank You, BOSS!!'하며 고마움을 표시할 때까지만 해도 갑판장이 선원들에게 참 많은 사랑을 주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하선자들이 모두 내려간 다음 저녁시간에 씩씩거리는 갑판장을 만나고 모두가 실소를 터트리게 된다.


"아 글쎄, 이 아줌마가 신삥 오만원권을 똘똘 말아서 양말 안에다 넣어서 보냈다는거야. 난 그것도 모르고 그걸 애들에게 나눠준거고! 고생많이한 우리식구(갑판부)들에게 준건 그렇다쳐도 얼굴도 별로 못본 오일러한테 준건 아까워 죽겠네!"


집에 가는 길에 받아든 양말 속에 있던 뜻밖의 고액에 집에 가는 선원들은 모두다 갑판장이 보여준 성의에 감동했고 - 당시 OS(갑판원)의 월급이 USD 400 정도였음 - 평소때는 목석같았던 친구들이 눈물까지 글썽거렸던 이유를 그제서야 알고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식(日蝕)이라도 만들어 내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