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래 마을의 다섯 번째 이야기
위대한 사자의 이야기를 아니? 뭐? 아직도 안 들어 봤다고? 그 유명한 이야기를 모른다니. 지금부터 귀 활짝 열고, 집중해서 들어보렴. 내가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까. 응? 너는 귀가 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아… 그게 귀야? 그래그래. 네가 어떤 동물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아. 이건 위대한 사자에 관한 이야기니까.
옛날에 한 용감한 사자가 살고 있었지. 그 사자는 어린 동물들에는 누구보다 다정했어. 하지만 자기 가족들과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무서워졌단다. 어느날, 다른 사자 왕국이 쳐들어왔어. 못된 적 사자들은 용감한 사자의 가족과 친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지. 겁도 없이 말이야. 용감한 사자는 가장 선두에 서서 용맹하게 송곳니를 드러냈단다. 그리고 크르르! 용감한 사자는 가장 많은 적을 무찔렀어. 적의 왕도 용감한 사자의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에 꽁지 빠지게 도망갔단다. 모두 용감한 사자를 칭송했어. 그리고 용감한 사자를 왕으로 삼았단다. 용감한 사자는 뿌듯했지. 왕이 되어서가 아니야. 소중한 사자들을 지켰기 때문이었어. 그리고 용감한 사자가 왕이 되고 왕좌를 내려놓을 때까지 그는 왕국을 평화롭게 다스렸단다.
“그럼 이제는 왕이 아닌 거예요?”
“아니지 바보야. 왕좌를 내려놓았다잖아.”
“할아버지. 그럼 그 용감한 사자는 이제 뭐 해요?”
“은퇴했으니까 놀지 않을까?”
작은 동물들이 속닥거렸어요.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수염을 쓸어내렸지요.
“그 용감한 사자는 이제 왕국을 떠나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행하고 있단다.”
할아버지의 대답에 꼬마 여우가 눈을 반짝였어요.
“여행이요? 어디에 있는데요? 거기로 가면 용감한 사자를 만날 수 있어요?”
“글쎄. 어쩌면.”
“설마 할아버지가 용감한 사자예요?”
할아버지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바람이 불며 모래로 곡선을 만들었어요. 작은 알갱이들이 가볍게 떠서 공중에서 춤을 추었어요. 할아버지의 금빛 갈기도 모래를 따라 출렁거렸답니다.
“자, 여기까지 용감한 사자 이야기다.”
시나래 마을의 인기 있는 이야기꾼 개 아저씨가 혀를 내밀며 웃었어요. 이번에는 동작도 섞어가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마을 꼬마 동물들의 반응이 더 뜨거웠죠. 날카로운 송곳니 표현할 때 플라스틱으로 된 소품을 준비하기를 잘 한 것 같아요.
“어떠냐?”
“아저씨. 완전 짱이에요.”
“진짜로요. 너무 재밌어요.”
꼬마들은 눈을 반짝이며 손을 모았어요.
“진짜로 용감한 사자가 있어요?”
“야.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원래 이런 이야기는 진짜 있는 일 가지고 만드는 거랬어. 산타 원숭이처럼.”
“산타 원숭이는 없는 거랬는데.”
“아니야. 있는데, 원숭이는 아니랬어.”
이야기꾼은 가볍게 손뼉을 쳐서 꼬마들의 집중을 끌어냈어요. 그리고 이야기했지요.
“용감한 사자는 진짜 있어. 코로 할아버지는 만나 봤을걸.”
꼬마들은 서로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주고받았어요.
“코로 할아버지가요?”
그 고약한 사자 할아버지가요?
“아저씨…. 설마 코로 할아버지가 용감한 사자는 아니죠?”
꼬마 생쥐는 코를 찡긋거리며 조용히 물었어요. 하지만, 돌아오는 목소리는 이야기꾼의 밝고 명랑한 목소리가 아니었어요. 굵직하고, 거친-.
“뭐.”
바로 코로 할아버지의 목소리였지요. 코로 할아버지는 꼬마들 바로 뒤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았어요.
“뭐.”
꼬마들이 아무 반응 없자, 코로 할아버지는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한 번 더 말했어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이죠…. 꼬마들은 명백히 그 목소리를 들었답니다. 다만 무서워서 발발 떨고 있을 뿐이었어요. 하지만 티를 내면 할아버지가 더 화를 낼까 봐 목석처럼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엥이. 너희들 여기 앞에 앉아서 헛소리나 할 거면 저기 멀리 가라.”
코로 할아버지는 미간을 진하게 좁히며, 꼬마들을 쫓아냈어요. 꼬마들은 이때다 싶어 모두 일어나서 빠르게 달아났어요. 얼마나 무서웠는지 자갈에 걸려 넘어져도 바로 일어나서 달려갔지요. 어느새 사라진 이야기꾼 아저씨는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답니다.
코로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주웠어요. 꼬마들이 이야기를 들으며 먹던 과자 흔적들이었지요.
“꼭 그렇게 쫓아내야겠습니까?”
개구리 촌장이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왔어요. 그의 손에는 작은 편지가 하나 들려 있었지요.
“내가 뭘 어쨌다고.”
할아버지는 콧김을 흥 하고 뱉었어요. 예상외로 강한 바람에 촌장은 순간 날아가 버릴 뻔했지요. 다행히 정신을 꽉 붙잡고 지팡이로 땅을 강하게 짚고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답니다. 할아버지는 촌장의 손에 들린 편지를 뺏어 열어보았어요. 너무 작아서 손톱으로 집중해서 열어야 했답니다.
“작아서 보이지도 않아.”
할아버지는 툴툴대며 고개를 살짝 멀리하고 눈을 모아 편지의 작은 글씨들에 집중했어요. 고개를 알맞게 떨어뜨리면 초점이 맞을 때가 있었지요.
“허브 나무 세 그루.”
할아버지가 중얼거렸어요. 촌장이 옆에서 그를 지켜보다가 팔짝팔짝 뛰어올라, 다시 편지를 낚아챘어요.
“종탑 근처 사는 족제비 알지요? 부탁받은 겁니다.”
개구리는 편지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어요. 할아버지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촌장을 바라보더니 뭔가 생각났는지, 나지막이 으르렁댔어요.
“그 요리사 청년 말이냐.”
“뭐. 식당을 하나 하고 있긴 하죠.”
“허브? 그 허브 먹으려고 하는 거지.”
할아버지는 눈을 더 게슴츠레 떴어요. 할아버지는 먹기 위해 따로 재배하는 것들 외의 식물을 먹는 걸 꽤 보기 싫어했어요. 먹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따로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먹는 허브는 따로 키우지 않는데.”
“에이. 그냥 허브 나무 몇 그루 보냅시다.”
“뭐?”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화가 많은 사자 할아버지의 얼굴이 곧 터질 것처럼 붉어졌어요. 또 악을 지를세라, 개구리 촌장은 양손을 내저으며 말렸답니다. 개구리 촌장은 아무 말 없이 파리만 날리는 코로 할아버지네 꽃집을 보았어요. 한숨만 나왔지요.
“너는 대체 왜 찾아오는 거냐?”
코로 할아버지는 화단에 물을 주며 퉁명스럽게 물었어요.
“복지의 일환입니다. 촌장인 제가 고약한 할아버지를 챙겨야죠. 누가 챙기겠습니까?”
개구리 촌장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눈을 느리게 깜빡였어요.
“흥. 헛소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좀 전에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은 차분한 갈색으로 돌아와 있었답니다. 곤두섰던 짙은 갈색의 갈기도 차분히 가라앉았어요.
“코로!”
황금빛 갈기의 레오가 멀리서부터 코로를 부르며 달려왔어요. 코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조차 하지 않았답니다.
“뭐해?”
코로는 레오의 물음에 슬쩍 그를 돌아보고는 다시 먼 발치를 바라보았답니다. 먼발치에 보라색의 방울 같은 꽃들이 잔뜩 피어 있었어요.
“오. 예쁜 꽃이네. 보라색이면 코스모스인가?”
“라일락.”
라일락의 꽃들이 하나의 꽃처럼 모여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레오는 역시, 하고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곤 코로의 옆에 앉아 함께 절벽 아래의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수풀이 우거진 그곳의 중앙을 짙은 푸른 빛의 굴곡진 강이 가르고 있었어요. 새파란 초록빛은 너무도 짙어, 그곳에 담기는 모든 것을 초록으로 물들어 버릴 것 같았지요. 절벽 위에 쌓인 모래가 바람에 떠밀려 아래로 떨어졌어요. 마치 금빛의 모래가 씨가 되어 아래의 정글을 키워낸 것 같았죠. 둘은 저녁노을이 깊게 질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답니다.
평온함은 오래 가지 않았어요. 그들의 작지만 강한 왕국을 호시탐탐 노리던 붉은 사자 왕국이 전쟁을 선포했답니다. 그들은 코로와 레오네 왕국의 부귀영화와 비옥한 땅을 탐냈어요. 젊은 남녀 사자들, 나이가 많지만, 아직 싸울 수 있는 사자들은 모두 전쟁을 준비했죠. 각 부대는 가장 용맹한 사자들이 이끌게 되었어요. 그중에 가장 강한 부대는 코로가, 가장 약한 부대는 레오가 이끌게 되었지요. 코로는 누구보다 강한 사자였어요. 져본 적이 없었죠. 반면 레오는 강하지 않았지만, 사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용기를 주는 데 누구보다 적합했지요. 그런 성격 덕분에 레오는 사자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동물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어요. 코로는…. 음 글쎄요! 코로를 우상으로 삼은 동물들은 많았답니다.
사자들은 출전을 준비했습니다. 왕국을 상징하는 푸른 깃발이 사자들의 거친 으르렁 소리와 함께 하늘을 찔러댔습니다.
“용감한 우리 사자들.”
레오와 코로의 스승님이 둘을 끌어안았어요.
“하나는 마음을 하나는 몸을 지키는 데 용감하지. 나는 너희가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
스승님은 둘의 어깨를 단단하게 쥐었어요. 스승님의 걱정과 믿음이 동시에 느껴졌지요.
“걱정 마세요. 스승님은 두 발 뻗고 주무시고 계세요.”
레오가 웃으며 말했어요.
“나도 예전 같으면 날아다녔을 텐데 말이지.”
스승님은 미소를 지어 보였답니다. 코로는 딱히 별말은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스승님과의 시선을 주고받으며, 높은 자신감을 보여주었답니다.
며칠 동안 밤낮으로 전투는 계속됐어요. 처음에는 붉은 왕국이 우세했지만, 점차 승기는 코로와 레오가 있는 푸른 왕국으로 기울었답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갈색 갈기의 코로가 있었어요.
마침내, 붉은 왕국은 물러가고 푸른 왕국의 깃발이 넓은 벌판에 우뚝 섰어요. 푸른 왕국의 승리였지요.
열심히 싸운 사자들이 씩씩하게 다른 사자들 곁으로 돌아왔어요. 감사와 축하의 의미로 사자들은 자신의 갈기나 꼬리의 털 일부를 뽑아 길거리에 뿌렸습니다. 특히 코로가 가장 많은 감사를 받았지요. 모든 어린 사자들은 코로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몇몇은 코로의 갈기를 따라 갈색으로 염색하기도 했어요.
“코로! 코로! 코로!”
막상 코로는 그런 모습들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부드럽고 친절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싸움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길었던 전투 탓에 너무 피곤했답니다. 코로는 골목을 돌아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진 거리를 걸었어요. 그곳에는 사자들이 별로 찾지 않는 가게들이 듬성듬성 있었지요. 대부분 낡고 칙칙한 색을 띠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그곳에도 생명을 잔뜩 가진 가게가 하나 있었어요.
“로라.”
코로는 가게를 들어서며, 무언가 열심히 손질하고 있는 사자를 향해 말을 걸었습니다. 로라는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어요. 전쟁이 끝나고는 처음 만나는 것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요. 하지만 곧 식물을 다듬던 가위를 내려두고 코로를 맞이하러 급하게 나왔답니다.
“코로. 무사하구나.”
“응…. 소문 못 들었어?”
“여기서 들리는 소문이라고는 누가 죽어 나갔다는 것밖에는 없으니까.”
로라는 배시시 웃었어요. 코로는 로라의 눈썹을 쓰다듬으며, 어색하게 웃었죠. 코로의 미소는 정말 보기 힘들지만, 로라만큼은 꽤 자주 볼 수 있었답니다.
둘은 활짝 핀 꽃들 사이에 자그마한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앉았어요. 코로가 가져다준 라일락도 예쁘게 피어 있었어요. 두 사자는 꽃차를 마시며 주변의 싱그러운 향기를 맡았어요.
“코로.”
로라가 컵에서 입을 떼며 말했어요.
“이제 그러면, 왕이 되는 거야?”
“무슨 소리야.”
코로가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어요.
“이번 전쟁에서 네 공이 가장 크잖아. 거기다가 지금 왕이 다음 왕으로 지목한 두 사자 중 하나이기도 하고.”
로라의 말이 맞았어요. 코로는 그럴 일 없다고 했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었지요. 푸른 왕국은 가장 강한 사자가 왕이 되어 다스려왔어요. 이제 곧 물러갈 현 왕이 후계로 코로를 지목하기도 했지요. 다른 하나는 레오였습니다. 코로가 왕이 되면 나라가 부강해질 것이고, 레오가 왕이 되면 나라가 평화로워질 것이라는 게 이유였어요.
코로는 하지만 권력에는 욕심이 없었어요. 잔잔하고 평화롭게 사는 게 좋았죠. 이렇게 로라랑 식물에 둘러싸여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보내는 시간이 제일 좋았어요. 그건 로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사자들이 별로 흥미 없는 꽃집을 열기 위해 이렇게 구석진 곳에서 가게를 내고 살고 있었으니까요. 둘은 서로의 손을 잡은 채 깊은 생각에 빠졌지요.
시간은 흘러, 푸른 왕국의 새로운 왕이 부임했습니다. 그리고 그 왕은 바로….
“레오! 레오!”
레오였어요. 모두가 레오의 이름을 외쳤지요. 레오는 금빛 갈기를 휘날리며 모두의 앞에 섰답니다.
새로운 왕을 공표하기 전날, 레오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몰래 성문 밖을 나섰어요. 작은 짐보따리를 들고 있는 두 사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죠.
“레오.”
낮은 목소리가 레오를 불렀어요. 레오는 갈색 갈기의 사자에게 다가갔죠. 코로와 로라는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었어요. 들키지 않게 말이에요.
“이렇게 가는 거야?”
“그래.”
레오는 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코로의 어깨를 잡았지요.
“레오. 잘 들어.”
하지만 코로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어요.
“정정당당하게 결투를 해서 네가 이겼다고 해.”
“또 그 소리야?”
“나는 오늘 떠나. 어쩌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
코로는 로라를 돌아보며 말했어요. 로라는 살며시 미소지었답니다.
“네가 나를 이겼다고 하면 그 누구도 너의 강함을 의심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내가 어떻게 사자들을 지킬 수 있겠어.”
“레오. 너는 강해. 단지, 네 성정이 너의 강함보다 더 빛났을 뿐이지.”
레오는 또 울 것만 같았어요. 다정함이라고는 모르던 코로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니. 레오는 코로의 말에 감동을 받으면서, 동시에 다 컸다 싶었죠.
“너는 분명 좋은 왕이 될 거야. 스승님을, 우리 왕국을 부탁한다.”
그렇게 달이 비추는 길을 따라 코로와 로라는 푸른 왕국을 뒤로 한 채 머나먼 곳으로 떠났답니다.
레오는 코로의 말처럼 가장 다정하고 강한 왕이 되었어요. 푸른 왕국은 비로소 평화로워질 수 있었죠.
한편 코로는 로라와 바다를 건너고 산을 건너, 아주 아주 구석진 곳에 있는 마을에 도달했어요.
“애야 여기는 어디니?”
로라가 호숫가에 앉아 풀피리를 불고 있는 꼬마 개구리에게 물었어요. 개구리는 눈을 깜빡이고선,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었지요. 꼬마가 그런 표정도 하네, 라고 생각하며 로라는 속으로 웃었어요.
“여기가 어딘지 몰라요? 정말로요?”
“응. 여기가 어딘데?”
개구리는 양팔을 뻗으며 웃었어요.
“여기는 모든 동물이 모여 사는 시나래 마을이에요!”
그 뒤로는 크기도, 색도 다양한 집들이 모여 있었죠. 언덕 사이에 있기도, 나무 위에 있기도 했어요. 심지어는 호수 위에도 있었죠. 코로와 로라는 그 모습이 마치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는 정원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이 들자 서로는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눈이 딱 마주치자, 그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바로 시나래 마을이 그들이 살 곳이라는 것을요.
시나래 마을의 젊은 사자 부부는 햇볕이 잘 드는 집을 사서, 넓은 정원을 가꾸고 가져온 씨앗들을 심었어요. 처음에는 단출했지만, 점차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모여 다른 곳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식물들도 많이 자라는 특별한 정원이 되었어요. 그들이 운영하는 꽃집은 마찬가지로 특별한 꽃집이 되었답니다. 꽃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했어요. 신기한 식물들이 있는 꽃집. 그리고 다정한 여사장님과 까칠한 남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말이지요. 그렇게 작지만 특별한 꽃집은 시나래 마을의 소중한 조각이 되었답니다.
“으아악. 코로 할아버지다.”
아이들이 코로 할아버지의 등장에 꽁지 빠지라 도망갔어요. 코로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숲에 산책을 나왔다가 괜히 기분만 나빠졌지요. 특별히 무섭게 한 적 없는데 왜 이 마을 꼬마들은 그를 무서워하는 걸까요. 가끔 꽃을 먹으려고 할 때 야단을 치거나, 식물을 밟으면 고함을 지르기는 했지만요.
“....”
코로 할아버지는 흠흠, 헛기침하고 걸음을 바삐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누군가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모자는 멀리서도 눈에 띄었죠. 그는 코로 할아버지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그런 낯선 손님과 코로 할아버지를 슬쩍슬쩍 쳐다보며 지나갔습니다. 지나친 관심은 불편하기만 했어요. 코로 할아버지는 해맑은 손님을 데리고 급히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손님이 모자를 벗자, 헝클어진 금색 갈기가 흘러내렸습니다.
“어우. 여긴 여전하네.”
주름이 졌지만 푸근한 인상의 사자가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았어요. 코로 할아버지는 언짢은 표정으로 그의 앞에 찻잔을 툭 내려놓았답니다.
“너도 여전하고.”
코로 할아버지는 손님의 놀림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앞에 앉았어요. 그리고선 찻잔을 조심스럽게 들어 향을 맡았지요.
“뭐 하러 온 거냐. 레오.”
“뭐 하러 왔긴.”
코로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가 된 레오가 웃으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어요. 뿌리가 단단히 포장된 묘목이었습니다. 코로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어요. 코로 할아버지의 반응에 레오 할아버지가 껄껄, 크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어요.
“그거 구하기 힘들었다고. 무슨 희귀 식물인가 그러던데. 내가 그걸 어디서 얻었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거다.”
하지만 레오 할아버지의 말은 코로 할아버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지요. 이미 그 묘목을 이리저리 관찰하느라 푹 빠져 있었으니까요. 코로 할아버지가 오랜 관찰을 끝낸 뒤에야 둘은 제대로 된 티타임을 맞을 수 있었답니다. 오랜만의 대화와 함께 말이에요.
뭐, 대화라고 해보았자 대부분 레오 할아버지의 여행 이야기였지만요. 레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코로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어요. 눈을 가늘게 뜨고 레오 할아버지를 보았지요.
“소문이 이상하게 퍼졌던데?”
레오 할아버지는 의아한 얼굴을 하다가, 자신이 퍼뜨리는 데 일조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아, 자상하면서 강한 사자?”
“그래. 네가 퍼트렸지?”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너만 좋게 덧붙인 것 같은데. 나는 그 이야기에 없잖아.”
“원래 소문이라는 건 부풀리기 마련이야. 그리고 네가 왜 없어. 우리 둘 다 주인공인 용감한 사자인데.”
“그게 왜 나야. 나는 왕 안 했는데.”
“이야기잖아. 이야기.”
오랜만에 코로 할아버지네에서 웃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지나가던 주민들은 웃음소리에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다가, 그 집이 코로 할아버지네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엄마. 코로 할아버지가 웃을 수도 있어?”
“음…. 지금 웃고 계시니, 그러겠지?”
믿을 수 없는 일을 발견한 것 마냥 충격적인 표정을 지으며 지나가는 토끼 모녀도 있었답니다.
두 사자는 꽃 내음을 맡으며 오래도록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어요. 그날, 정원에는 라일락이 예쁘게 피어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