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주의자? 아니 기획주의자!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로 온 지 1년이 지났다. 시간은 참 빠르다. 주변에서는 고민이 많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쉽게 결정한 일이었다. 코래드라는 대행사에서 금강기획, 금융그룹 M까지. 광고기획자로 해보고 싶었던 건 많이 해본 것 같았는데, 직장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광고 기획을 떠나지 않았던 나는 몇 년 전부터 다음의 의문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광고 타깃이 아닌 사람들이 광고를 기획하고, 제작하며,
더더욱 타깃과는 먼 사람들이 광고를 결정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내가 타깃이 아닌 제품을 분석하고, 타깃이 아닌 사람들과 안을 결정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의식적으로 광고 타깃으로 빙의해 시뮬레이션해보기도 하고 다양한 트렌드를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쌓이는 경력과 반비례하듯 여기서의 내 역할은 끝이 보인다고 생각했고, 다른 역할을 찾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고민은 때로는 한계로, 때로는 답답함으로, 때로는 정체로 느껴졌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다음 스테이지로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했고 난 대학으로 왔다.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막연하게 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전달하고 싶은 것들이 명확해야 하고, 무엇보다 내 책을 읽은 사람들의 약간의 변화라도 이끌어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과연 내가 그런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정말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게 있긴 있는 것인가?' 이런 의문들 때문에 ‘학교로 왔으니 책 하나 써야지’ 이렇게 생각하긴 싫었다.
나는 처음부터 무언가를 전달할 것이 생긴다면 그때 쓰기 시작하려 했고 오늘이 바로 그 첫날이다. 시중에 많은 책이 있지만 광고 전체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배웠던 것, 경험했던 것, 전달해야 하는 것들이 채워진 지금이 내가 다시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내고 전달하기에 가장 적기이다.
20년이 훌쩍 넘는 광고기획자의 시간이 지나갔다. 수많은 동료들이 있었고, 그보다 더 진한 우정을 나눈 나의 친애하는 광고주들이 있었다. 내가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 브랜드가 있었고, 그 브랜드를 둘러싼 고객들이 있었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광고기획인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지금 내 앞에는 나보다 더 치열하게 의미 있고 멋지게 기획의 일들을 해나가야 할 학생들이 있다. 그들을 돕고 싶다. 기획이 별다른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조금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쉽게 광고를 시작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그게 내가 학교로 온 가장 큰 이유고, 앞으로 만들어갈 나와 그들의 성과들이다.
이른바 수많은 꼰대들을 보면서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했는데, 가장 꼰대라고 불리는 직업을 선택했다. 아이러니다. 광고주처럼 되기 싫다고 생각했었는데 극소수의 무식한 광고주처럼 말을 하기도 했고, 뛰어난 기획자가 되고 싶었지만 브랜드에게 미안했던 적도 참 많이 있다. 무엇보다, 운 좋게 좋은 회사에서 많은 역할을 하면서 과연 후배 기획들에게 뭔가를 전달했는지, 좋은 기획이 무엇인지를 보여는 준건지 부끄럽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지금부터 ‘잠재적 기획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기획은 아주 투명하고 객관적이어야 하지만
뭔가는 다른 걸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회주의처럼 보일 정도로 여기저기 맞춰주고 노력하지만,
우린 그 순간에도 빛나는 기획을 하고 있다는 것을. 함께 일하게 될 제작이, 매체가, 나아가서 광고주가 우리를 괴롭히는 적이 아니고, 좋은 캠페인을 위한 동반자라는 것까지.
그리고 이 순간 노력해야 하는 것들은 바로 주변에 아주 쉬운 것들부터 있다는 것을.
기획은 관심이 많아야 한다. 관심은 기회를 발견하고, 기회는 기획을 통해 프로젝트로 발전한다.
이 과정에 수많은 의견들이 오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관여한다. 이렇게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성공적인 캠페인으로 거듭날 때, 기획자는 비로소 보람을 느낀다.
단순히 광고를 잘 기획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 없던 기회를 관심을 통해 만들고, 기획자의 인사이트를 더해 성공적인 기획을 해내는 것. 이 기획은 Brief를 통해 각각의 전문가들에게 전달되고 'creative'라는 솔루션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M그룹에 있을 때에는 우리 광고가 정말 너무 많이 보였다. 내가 만나는 광고주들은 모두 우리 광고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광고를 못 본 사람들이 없었고, 함께 광고를 만들어간 나의 광고주들은 광고가 너무 많이 보인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외부인이 된 지금 난 M그룹의 광고를 만나기가 힘들다. 광고비가 줄어든 게 아닐 텐데도 그렇다.희한한 일이다. 타기팅이 바뀐 것도 아니고, 생활 패턴이 바뀐 것도 아니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관심도'의 차이이고, 또 하나는 안에서 느꼈던 '착시현상' 때문이다. 광고기획본부장이었기 때문에 내부에서 광고를 하고 싶은 분들, 광고 관련 궁금한 것들이 있는 분들은 당연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임직원들도 광고에 대한 것들을 인사처럼 던졌다.이런 부분들이 내가 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착시가 있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 고객(실제로 난 M증권의 Platinum 고객이다)들에게는 당연하게도 내부에 있을 때 느낀 것처럼 아주 많이 전달되진 않았던 것이다. 함께 너무 많은 광고가 보인다는 광고주의 의견에 고민했던, 객관적인 수치를 넘어 개인의 경험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기본을 자꾸 놓쳤던 내가 부끄럽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객관적으로 변하는 건 힘들다. 수많은 데이터가 있지만 주변의 평가 하나가 너무나도 중요한 대행사와 광고주에겐 GRP, CPRP 등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 영향력 있는 내부의 평가가 더 중요할 뿐이다. 경험이 있지 않은가? 때로는 주요 광고주 주변의 평가에 의해서 갑자기 좋았던 광고에 대한 평가가 하면 안 되는 광고로 바뀌기도 하고 모두가 별로라고 했던 광고의 평가가 다시 좋아지기도 한다. 주로 다음의 상황을 마주치면 누구나 당황하게 된다.
하나같이 대답하고 대응하기 너무나 힘든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최대한 이해시켜야 하고, 광고의 평판에도 신경 써야 한다. 잠깐 동안 언급했지만 광고를 만든다는 건 참 힘든 일인 건 맞다.
광고는 정답이 너무 많기 때문이고, 정량화하기에는 너무나도 주관적인 판단이 많다. 기획자로서 이런 상황은 괴롭지만 존중해야 한다. 그 또한 평가이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 책에서 기획의 답을 찾아보길 바란다.
여러 주제에 대해 읽고 생각하다 보면,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광고뿐만 아니라 기획 관련 업무를 지망하는 여러분들에게 살아있는 이야기로 다가가길 바란다.
"An idea is nothing more nor less than a new combination of old elements"
"아이디어란 기존 요소들의 새로운 조합이다"
- James Webb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