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과 '계획'

계획과 기획의 차이를 설명하시오

by plannista

ㅣ계획? 기획?


'계획과 기획의 차이를 예를 통해 설명하시오.' '광고기획의 이해’란 수업의 시험문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바로 대답할 수 있을까? 영어로 계획은 'Plan'이고, 기획은 'Planning'이다. 이제 차이를 알겠는가?


계획은 바로 오늘도 당신이 다이어리에 적은 그 일정일 수 있다.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아침마다 몇 시부터 조깅을 하고, 근육운동은 어떻게 하고 일주일에 몇 번 하는 것까지. 이 모든 것은 다이어트를 위한 나의 계획들이다. 계획대로 다이어트가 진행될 때 묘한 쾌감이 있다. 하지만 가끔은 빠지지 않는 몸무게를 보곤 계획을 수정하곤 한다.


그렇다면 기획은 무엇일까?


여기 계획대로 살을 빼고 싶지만 도저히 시작할 엄두를 못 내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우리는 이 사람이 계획을 실천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한번 운동을 할 때마다 현금 리워드를 제공할 수도 있고,

일주일 동안 성실히 이행 했을 때 영화티켓을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할 수도 있다. 운동을 할 때 지루해서 중간에 포기할 수 있으니 함께 운동하는 메이트를 구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고, 매일매일 기록을 함께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도 있다. 조깅을 할 때 '다이어트 조깅 맵’을 만들어 줄 수도 있고 중간중간에 스탬프 렐리를 통해 '인생네컷' 쿠폰을 줄 수도 있다.


여기의 핵심은 무엇인가? '다이어트를 필요하다 생각하지만 운동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게 '기획(Planning)'이다. 위의 방법을 모두 다 사용할 수도 있지만, 효과적으로 체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다양한 방법 중에 가장 최적의 것을 만들어 내는게 기획이다.


그럼 어떤 부분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획해야 하는가?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 중 내가 설득하려는 타겟을 정해야 하고, 그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거다.

난 이걸 쉽게 'ING의 힘'이라고 기억하게 만드는데, 결국 정해진 목표를 이루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기획이다.




일본 여행을 가는 사람이 있다. MBTI의 J성향들은 공감하겠지만 세상의 수많은 J들은 계획 없이 움직이는 걸 두려워한다. 반대로, 그 계획이 이루어졌을 때 무한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나도 J이기 때문에 여행을 갈 때는 항상 엑셀에 날짜별로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은 여행 전날까지 분단위로 정리되기도 하고, 새롭게 맛집을 발견하거나, 쇼핑할 스폿을 새로 찾으면 수정되기도 한다.


여기의 핵심은 무엇인가? 정확하게 짜인 스케줄이 있는 것이다. 이건 '계획(Plan)'이다.

계획은 이미 함께 갈 동반인이 정해져 있고, 스케쥴이 성향에 따라서 짜여 있다. 그래서 모든 것에 맞춰 그 스케쥴을 따라 움직이면 된다.


그럼 일본 여행을 기획한다는 건 어떤 것인가? 네이버에서 가장 큰 일본여행 카페를 셀 수도 없는 '여행 기획자'들이 나온다. ‘퇴사한 친구와 함께 하는 오사카 퇴사 여행’, ‘사춘기 아들과 함께 하는 긴장 가득 후쿠오카 여행’, ‘결혼 3년 만에 처음으로 친구들과 떠나는 도쿄 찐친여행’, ‘오타쿠의 일본 애니 성지순례 여행’까지.


기획이 무엇인지 이제 정확히 느낄 것이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본인의 여행과 비슷한 상황을 찾아보고 참고하게 된다. 내가 만약 사춘기 아들과 함께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면 퇴사여행보다는 사춘기 아들과의 여행 이야기를 클릭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획은 이미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다. 우리 모두가 알게 모르게 이미 기획을 했고, 그 안에서 다양하게 즐기며 살고 있는 것이다.




계획은 정해진 미래를 실천하는 것, 기획은 없던 길을 만드는 것. 둘 다 맞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본다.


기획은 ‘목표 달성을 위한 최적화’,
계획은 ‘기획의 실현’


‘최적화’와 ‘실현’이 각각의 키워드이다. 기획은 최적화해 내는 것이다. 다만, 기획을 하기 위해선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그 목표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을 떠올리고 가장 최적의 길을 찾아야 한다. 기획을 하는 이유는, 기획자인 내가 만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주어진 목표, 또는 새롭게 설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가장 최적의 방법을 창조하는 것이다.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치면 ‘최단거리’, ‘무료’, ‘추천’ 등이 나온다. 그 중에 ‘추천’이 기획이다. '추천'하기 위해 이미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것이다. 운전자의 성향까지 분석해서 거리가 짧은 걸 선호하는지, 무료 길을 선호하는지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현재의 교통상황까지 고려해서 만들어낸 결과가 ‘추천’이다.


기획은 가장 최적화된 길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하지만 꼭 명심할 부분은 나를 위한 기획이 아니라는 점이다. 브랜드를 위해, 브랜드가 해결하고 싶어 하는 목표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그걸 해결하는 기획을 해야 한다.

우리가 브랜드에게 할일은 ‘최적화된 추천’이다.




ㅣ계획자? 기획자?


나를 만족시키는 건 생각보다 쉽다. 왜 그럴까? 내가 나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원하는 게 뭔지, 어떨 때에 즐거워하는지, 뭘 하고 싶은 건지,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누구인지, 대부분 잘 알고 있다.


잘 안다는 건 ‘상대적인 관점’이다. ‘나는 나를 잘 모르는데’, 이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상대적인 관점’이라는 걸 분명히 해둔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아는 것'보단 '내가 나를 아는 게' 훨씬 많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광고는 그렇지 않다. 광고해야 하는 브랜드를 처음에는 잘 알지 못한다. ‘상대적으로’ 광고주 보다 그렇다. 그래서 광고기획이 힘들다.


광고주와 대행사, 둘만 놓고 생각해도 광고주가 대행사보다 브랜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당연하다. 하지만, 이 부분은 광고기획에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기획자'가 되느냐, '계획자'가 되느냐는 여기에서 결정된다.


난, 광고 전문가니까 브랜드를 좀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광고주의 말을 못 알아듣고, 그들에게 인정받기 힘들고, 브랜드가 가진 문제점을 알지 못한 채, 대충 기획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결국은 문제를 정확하게 찾아내기 힘들기 때문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알지 못하고 기획을 시작하게 된다. 이런 기획은 실패로 끝나는 게 아주 일반적이다. 그래서 광고기획은 상대적으로 힘들다. 시작부터 페널티를 받고 시작하는 게임과도 같다. 홈경기를 해보지 못하고, 늘 원정경기만을 하는 그런 신세인 것이다. 늘 이란의 테헤란에서 축구 경기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이미 벌써 주눅 들지 않는가?


광고주보다 브랜드를 많이 알긴 힘들다. 하지만 기획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My Story


2007년 M그룹에 처음 왔을 때는 대학 때 갔던 어학연수 첫날 같았다.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전까지 주식을 해본 적도 없었고, 그래서 내겐 굉장히 생소한 브랜드였다.


광고주 미팅 첫날, 회의실에 앉았다. 광고주가 말했다. ‘PER이 어쩌고, 패시브펀드도 중요하지만 자산배분펀드가 대세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한국어인데 왜 안들리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냥 ‘아, 네!’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관심조차 없었던 브랜드를 정면으로 마주하니까 너무 어려웠다.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을 후회했다. 너무 성급하게 회사를 옮겼단 생각도 들었고, 못할 것같단 의문도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브랜드를 알아가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 그리곤 두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금융용어사전을 샀다. 그리고 처음부터 중요하다 싶은 용어부터 외어나갔다. 그리고, 광고주들 중에 용어를 비롯해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는 분들을 찾았다. 이 두 가지를 매일매일 병행해서 정말 열심히 브랜드를 알아갔다. 회의마다 나오는 새로운 개념과 용어들은 정말 큰 공부가 되었다. 한 달 정도 고3때보다 더 열심히 엄청나게 공부했다. 개념을 알아가고, 상품들을 공부하다 보니 마침내 'M그룹'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첫 출근한 날, ‘0000펀드’라는 새로운 개념의 펀드가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 펀드가 뭔지도 모르는데 광고 브리프를 써야 했다. 자료들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것 뿐이었다. 함께 있던 제작들은 내 브리프만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광고주께 상품 개념이 어렵다고 알려달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친절하게 몇번을 설명해 주셨고, 알겠다곤 했지만, 모르는 상태였다. 한 분을 계속 괴롭히긴 너무 미안해서, 실무자부터 본부장까지 연락하고 만났다. 이 사건이 금융용어 사전을 볼 수밖에 없게 만든 계기였다. 다들 너무 친절한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결국, 신문광고는 광고주가 말해준 핵심 개념을 그대로 제작에게 전달하여 만들었다. ‘자산배분’이란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사실 이해를 못 하고 만든 M그룹의 처음 기획한, 아니 진행한 첫 번째 광고였다. 다행히 광고는 잘 진행되었지만 스스로 너무 창피한 일주일이었다. 브랜드를 이해하는 건 중요하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알아야 할 수 있다.

남들보다 많이 알아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광고주와 대화하고,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데 문제가 없는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들의 대화에 나오는 브랜드의 개념, 브랜드의 상황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광고기획들이 하는 착각 중 하나가 브랜드는 광고주가 알면 되고, 광고기획은 광고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은 틀렸다. 한번 물어보겠다. ‘광고만 잘하면 된다’의 광고는 무엇인가? 크리에이티브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본인의 지금까지의 경력을 말하는 것인가?


우리는 브랜드를 둘러싼 여러 가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갑자기 들어오는 경쟁 PT가 어려운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내게 떨어진 브랜드는 그 브랜드를 들어본 정도로 뭔가를 기획할 순 없다. 우린 브랜드 자체도 알아야 하지만, 그 브랜드가 처한 상황, 문제, 그리고 기획도 파악해야 한다. 마케팅 전략도 알아야 하고, 경쟁상황도 파악해야 한다.


갑자기 광고기획을 하기 싫어지는가? 그럴 필요 없다.

광고는 결국 사람의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다.

기획자는 그 선택의 이유를 만들면 된다.



"A good advertisement should be a clear and compelling answer to the question:
‘Why should I buy this product"
"광고는 '왜 이 제품을 사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이어야 한다."
- Rosser Ree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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