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이 Brief를 바꾼다
기획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광고주의 말을 그대로 정리해 브리프로 전달하는 것이다. 광고주의 방대한 생각과 배경을 듣고 이해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지만, 단순히 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기획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방식은 제작 및 브리프 회의에서 혼선을 초래하고, 최종 결과물의 퀄리티를 저하시킬 가능성이 크다. 나도 과거에 수없이 들었던 말이 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게 뭐야? 그건 광고주 생각이고, 기획이 하고 싶은 건 뭐냐고?"
처음엔 억울하고 섭섭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기획자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Brief는 기획자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Brief는 기획자의 크리에이티브가 담긴 작품이다
기획자는 광고주의 요청을 이행하고, 좋은 제작물을 위한 서포트 역할을 하며, 매체/프로모션 협의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과정에서 기획자의 의견보다는 광고주나 제작팀의 의견을 조율하고 수렴하는 일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Brief 작성만큼은 기획의 크리에이티브가 집약되는 시간이며, 단순한 전달 문서가 아니라 기획의 비전과 전략이 담긴 작품이어야 한다. 광고주의 의견과 시장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지만, 그것을 단순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더해 브리프를 완성해야 한다.
브리프를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뉴스의 원리를 생각해 보자. 뉴스는 모르는 사실을 빠르게 전달할 때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진다. 야구팬들은 실시간 문자 중계를 보면서 결과를 궁금해하고, 그 과정까지 즐긴다. 하지만 만약 인터넷이 끊겨서 다음 날 아침에 어제 경기의 결과를 알게 된다면? 이미 시의성을 잃어버려 뉴스 가치가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브리프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단순 나열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전체 핸드폰 중 갤럭시가 아이폰보다 많다."는 사실을 브리프에 썼다고 가정하자. 이런 정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어떤 임팩트도 없는 말이다. 하지만 만약 "갤럭시가 아이폰의 두 배 이상 점유하고 있지만, 20~25세 연령층에서는 점유율이 비슷하다." "갤럭시를 쓰는 고등학생 70%가 다음 핸드폰으로 아이폰을 구매하고 싶어 한다."와 같은 새로운 뉴스를 제공한다면? 이는 모두가 몰랐던 사실이기 때문에 브리프의 가치는 급격히 올라간다. 미처 몰랐던 사실로 브리프를 시작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기획의 크리에이티브라고 생각하는데, 담당 기획은 바쁘기도 하고 가끔은 무심하기도 해서 이런 브리프를 정교화할 수 있는 상황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솔루션을 찾는 것에만 매몰되어서 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 말을 거는 단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가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첫 소절만 듣고 합격 버튼을 누르는 경우들이 많다. '어떻게 판단하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희한하게 그 노래를 끝까지 들으면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오곤 한다. 시작을 듣고 판단할 수 있다는 단적인 증거다.
브리프의 첫 부분에서 참석자들의 시선을 잡고, 관심을 잡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 새로울 것 같다는 기대감을 주고 완성도에 대한 환상도 심어줄 수 있는 단계이다. 그러니 굳이 이 부분을 간과해서 그냥 그렇고 그런 fact로 폄하당한 상태로 브리핑을 시작하지 말기 바란다.
과거 M그룹에서 진행했던 브리프를 다시 돌아보면, 대부분 시장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위’라는 fact는 브리핑에선 전혀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제작사나 외부 파트너들은 ‘또 1위냐’며 예의상 놀라는 척, 형식적인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리엔테이션에서 브리프의 첫 문장을 이렇게 바꿨다.
"우리는 더 이상 1위가 아니다."
순간 분위기가 달라졌다. ‘항상 1등이라고 했는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사실 이는 정확한 자료가 부족했던 탓이기도 했다. 잠재고객인 대학생 대상 광고였는데, 데이터가 부족했던 상황에서, ‘1위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는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이번 광고의 경쟁사는 S그룹 계열사로 대학생에게 브랜드 친숙도가 높다.
M증권은 대학생 대상 프로모션을 진행한 적이 없다.
광고의 아이덴티티가 '전문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젊은 소비자들에게 친숙하지 않다.
이렇게 브리프를 전개하자 제작팀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각과 문제의식이 담긴 브리프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단순한 한 줄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광고란 무엇인가? 만약 당신이 한 문장으로 광고를 정의해야 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예전 회사의 입사 시험에서 ‘광고의 의미를 A4 한 장으로 정리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단순한 개념 정리로는 차별화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나는 고민 끝에 A4 용지에 단 한 줄만 적었다.
"광고는 연애편지다."
면접관들은 당황했고, 나는 설명할 기회를 얻었다. "광고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게 만들고, 심지어 사랑하게까지 만들어야 하는 과정입니다. 감성을 건드리고, 진심을 전달하며,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연애편지와 다를 바 없습니다. 편지를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는 투박하지만 정성을 들여 쓴 손 편지에 감동을 받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생각보다 나를 잘 이해하고 있는 편지에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타겟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은 사랑을 고백하는 노력보다 덜하지 않기 때문에 광고는 정성이 가득한 연애편지를 닮았습니다." 이런 정도로 설명을 했던 것 같다.
브리프는 좋은 광고를 위해 제작에게 보내는 기획의 편지이다. 그들이 내가 보낸 편지를 보면서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글자 몇 줄이 아니라, 읽는 순간 머릿속에서 그림이 떠오르고 아이디어가 샘솟게 해야 한다. 많은 기획자들이 이를 위해 대부분 레퍼런스를 제시하지만, 이는 분명 장단점이 있다. 레퍼런스를 보여주면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지만, 동시에 상상력을 제한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브리프 단계에서는 레퍼런스를 최소화하고, PPM(Pre-Production Meeting) 단계에서 구체적인 조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브리프는 기획자의 생각과 전략을 집약해 전달하는 유일한 기회다. 단순히 광고주의 말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통찰을 담아야 한다.
광고주의 말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
모두가 아는 정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몰랐던 사실을 전달하는 것.
기획자의 목소리를 담아, 제작자가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세 가지 원칙을 지킨다면,
당신의 브리프는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최고의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상상할 수 있게 해 주자
"Creativity without strategy is called ‘art.’ Creativity with strategy is called ‘advertising.'"
"전략 없는 창의성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부른다. 전략과 결합된 창의성이 바로 '광고'이다"
- Jef I. Richa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