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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리스 Aug 31. 2021

평화탕

우리 동네에는 목욕탕이 하나 있었는데, 우뚝 솟은 굴뚝의 꼭대기에는 '평화탕'이라는 글자가 세로로 적혀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작은 신발장 위로 목욕탕 아줌마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줌마에게 인사를 하고서 축축한 커튼을 걷어 들어가면, 자그마한 사물함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는 널따란 로비가 나왔다. 기다란 창문으로부터 들어오는 기다란 햇살이 나무 평상들을 비추는 따듯한 공간이었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해 보면 목욕탕 특유의 냄새와 바닥의 끈적끈적한 촉감이 느껴진다. 나는 어딘가 설레는 마음을 안고 훌렁 벗은 몸으로 목욕탕 문을 열어 뜨거운 열기에 와락 안기듯 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열기가 가득했던 목욕탕의 중앙에는 뜨거운 물이 있는 큼지막한 탕이, 안쪽 구석에는 그보다 훨씬 작은 냉탕이 있었다. 이따금 나와 내 동생과 동행했던 고모는 차가운 탕과 뜨거운 탕을 왔다 갔다 하기를 좋아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했다. 손만 넣어도 온몸에 냉기의 전율이 전해져 오는 냉탕에 풍덩 들어가는 고모가 대단한 어른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몸을 사르르 녹여주는 뜨끈뜨끈한 열탕이 좋았다. 미끌미끌하던 돌의 감촉과 아줌마들의 희멀건 등, 한쪽 구석에 겹겹이 쌓여있던 색색이 플라스틱 의자와 대야들이 기억난다. 목욕탕 안에도 로비처럼 큰 창문이 있어 낮에는 대체로 밝았다.


나는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근 채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관찰하곤 했다. 나이가 비교적 젊어 보이는 날씬한 이모들부터 뽀글 머리가 더 뽀글뽀글해지는 아줌마들까지. 생면부지인 진짜 어른들과 나란히 앉아 뜨끈뜨끈함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여서였을까. 그곳에 그들과 같이 앉아 있으면 갑자기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른들은 종일 짊어졌던 바쁜 삶의 짐을 잠시 내려놓으려 목욕탕을 찾았을 것이다. 그들 속에서 나는 어른의 고된 삶도, 세상의 쓴맛도 모르는 벌거숭이 백치였다.


가끔은 목욕탕이 끝나갈 무렵, 아무도 없이 혼자 탕 속에서 노을을 바라보았던 기억도 있다. 노을빛이 물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시간이란...


평화탕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마지막 치트키는 목욕탕을 나오면서 손에 꼭 들고 있던 요구르트다. 뜨거운 열기로부터 나와 세상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맛보았던 작디작은 요구르트. 한 블록 너머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조금씩 아껴마셨던 다디단 모금 모금.


이제는 평화탕의 굴뚝도, 평화탕도 모두 사라졌다. 그저 그 골목을 지나가게 되면 한 번은 고개를 들어 평화탕 굴뚝이 우뚝 서있던 자리를 보곤 한다.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그때의 행복을 어렴풋이 떠올려본다. 벌거숭이 백치의 뜨끈뜨끈했던 놀이터, 평화탕을 잠시나마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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