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장소였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할아버지는 공항에서 장사를 했다. 엄마를 비롯해 우리 집 어른들은 다 같이 그 일을 도왔다. 공항은 휴일이나 주말에 더욱 분주한 곳이다. 그래서 우리 집 어른들은 언제나 설날이나 추석 같은 연휴일 때 더욱 바빴다. 일주일 중에 일요일은 손님이 제일 많은 날이었고, 장사는 일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곤 했다.
나는 공항에 자주 놀러 갔다. 아주 어렸을 때 공항에서 난생 처음으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은 적이 있다. 슈퍼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랑은 판이하게 다른, 부드럽고 달콤하면서도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나는 그 이후로 공항을 갈 때마다 먹었다. 마지막 비행기 편이 끝나고, 어른들이 가게문을 닫는 걸 보며 하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가득 차 있던 드넓었던 공항 로비가 가뭇없이 텅 비는 모습도 나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가게 안에는 엄마가 남대문에 직접 가서 골라온 물건들이 유리로 된 진열장에 가지런히 나열되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물건들을 비추는 조명의 따뜻한 온도가 느껴졌다. 나는 작은 가게를 비집고 돌아다녔다. 아르바이트생 이모들과 언니들은 그런 나를 늘 반갑게 대해주었다. 특히 깡마른 몸에 키가 크고, 보름달 같이 둥근 얼굴을 가진, 코맹맹이 목소리가 두드러졌던 ‘큰 언니’가 있었다. 큰언니를 보면 뽀빠이의 여자 친구인 올리브가 떠올랐다. 큰언니는 특유의 밝고 인자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곤 했다. 모두가 큰언니를 큰언니라 불렀던 이유는 역시나 나이 때문이었다. 그때 이미 큰언니는 쉰 살쯤 되었을 것이다. 내가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즈음 30년 넘게 공항을 직장으로 두었던 큰언니는 은퇴식을 가지며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는 40년 넘게 공항에서 장사일을 하셨다. 가게의 위치가 바뀌거나 상품 품목이 바뀌는 일은 더러 있었지만, 가게 한가운데 앉아 계산을 하고, 물건을 판 가격들을 손수 노트에 적는 할아버지의 일은 매일 반복되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걸어 다니고, 학교에 가고, 어른이 될 때까지 할아버지는 매일 공항으로 출근하셨다. 나라면 한 직장에서 40년 이상을, 그것도 같은 장소에서 일할 수 있을까. 나에게 공항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있는 놀이터였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인생의 반을 바친 평생의 일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