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리스 Aug 31. 2022

제주집 1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큰 고무대야를 머리에 이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생선을 파는 아줌마가 있었다.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무뚝뚝해 보였지만, 인사를 하면 빙그레 웃어주었던 그 아줌마를, 우리 가족들은 '칠성이 엄마'라고 불렀다. 아줌마는 그 흔한 제주도 사투리를 쓰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전라도가 고향이라고 했다. "갈~치~고등~어"하면서 동네를 돌던 칠성이 엄마는 늘 열려있던 우리 집 대문을 지나 부엌 쪽문에 걸터앉아 고모와 잡담을 나누었고, 나와 내 동생은 별 관심은 없었지만 계단 위로 들려오는 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학교가 끝난 후 대부분의 시간을 계단에서 보냈다. 높은 천장에는 큰 샹들리에가 걸려 있었는데도 저녁이 되면 어두침침했던 기억이 난다. 해질 녘이 다되어 그 샹들리에가 켜지기 전까지가 우리에게 허락된 자유시간이었다. 계단이라는 공간은 우리들에게 참 실용적인 장소였다. 계단은 장난감들이 사는 높다란 아파트가 될 수도 있었고, 산이나 언덕, 절벽 같은 인공 자연이 될 수도 있었다. 층층이 레고나 작은 장난감들을 배치해놓는 일은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일처럼 진지하게 행하는 일과 중 하나였다. 계단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며 오늘은 이곳에 어떤 기지를 만들어 놀지 상의하는 일도 우리에겐 어지간히 중요한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그 시간마다 느꼈던 계단의 미끌미끌했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무척이나 진지했고, 동시에 행복했다.

1층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생활했고, 손님들이 거의 매일 드나들었던 거실과 부엌이 있었다. 반면 2층에는 부모님이나 이모, 삼촌이 있었고, 가족 내에서도 젊은 세대가 지내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계단은 이 두 부류에 속하지 않는 우리들의 고립된 장소였다. 가족들 중에 누구든 언제든지 지나갈 수는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따로 문이 나있는 독립된 장소도 아니었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우리만의 장소, 우리의 아지트였다. 그곳에서는 매일매일 웅장한 전쟁 이야기가 펼쳐지고, 용감한 영웅이 나타나 뭇 사람들을 구하고, 칼싸움을 하고, 절벽을 오르내리고, 시련을 겪고, 문제를 해결했다. 아무도 듣지 않고, 기록도 남지 않은, 그러나 우리의 상상력과 도덕관, 짧디 짧은 지식이 만들어낸 서사시들이 그곳, 우리의 계단 아지트에서 탄생했고 사라졌다.

며칠 전, 문득 동생과 그 계단에서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서사시의 사소한 내용들은 안타깝게도 세세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우리만의 계단 아지트에서 하루의 가장 재미난 시간을 보내던 서로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라 한참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아버지의 전화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