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 고모는 나의 외할아버지의 사촌동생이다. 엄마와 이모들이 부르는 걸 그대로 따라서 부르다가 나와 내 동생도 고모할머니를 그냥 고모라 불렀다. 고모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옷차림은 남색과 흰색이 교차하는 긴 팔 줄무늬 티셔츠다. 고모는 여는 아줌마들과 달리 줄무늬 티셔츠를 잘 소화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날씬한 스키니 청바지와 짧은 뽀글 머리, 특히 부리부리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이국적인 두 눈과 잘 어울렸다. 고모는 나와 내 동생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어른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는 늘 고모가 있었다. 소고기를 듬뿍 넣은 국물 떡볶이부터 설탕을 소복하게 뿌린 프렌치토스트, 된장을 푼 오이냉국, 멜 튀김 등 고모는 수많은 음식들을 맛깔나고 정성스럽게 만들었고, 매일 고모의 요리를 기대하고 또 맛있게 먹는 우리를 보며 기꺼워했다.
고모는 글을 읽을 줄 몰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고모가 어떻게 버스를 타고, 장을 보고, 길을 찾아 돌아다닐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래도 내가 아는 고모는 본성이 낙천적이고 쾌활한 사람이었다. 고모가 제일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은 '전국 노래자랑'이었는데, 그 시간만 되면 고모는 넓은 거실 바닥에 앉아 빨랫감을 개며 무대에 오르는 이들의 사연에 진심 어린 공감을 보냈다. 안타까운 사연이 나올 때면 고모는 "어머나!"의 제주도 사투리인 "아우게!"를 연발하며 탄식했고, 웃긴 출연자가 등장하면 두 눈과 코를 찡끗하며 웃고 또 웃었다. 내가 아는 옛 노래들은 다 그때 들었던 것들이다.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올라온 나와 내 동생은 어느 날 저녁 고모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고모는 축 쳐진 목소리로 당신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장례식을 우리가 치러달라고 했다. 고모의 남편과 아들이 고모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당연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요즘 고모는 진짜 할머니가 되었다. 며느리가 생겼고, 손자도 생겼다. 고모가 살고 있는 집은 인기가 아주 많다고 들었다. 고모의 친언니와 고모의 말솜씨가 너무 좋아 동네 아줌마들이 모두 그 집에 모여 수다를 떤다고 한다. 동네 인싸가 된 고모를 우리는 할아버지 제사 때나 명절에 가끔 본다. 여전히 그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코를 찡끗하는 고모를 만나면 나는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가까이 다가와서는 우리가 10년도 더 전에 사다준 꽃무늬 내의를 살짝 보여주는 모습도 너무 귀엽다. 도대체 시집은 언제 갈 거냐는 잔소리도 조금도 지겹지가 않다. 고모가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고, 지금처럼 계속 행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