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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리스 Oct 29. 2022

엄마의 취미

나의 어릴 적 꿈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다. 사람들이 어린 나에게 꿈이 무어냐 물을 때면, 나는 약간은 우쭐해하며 내 꿈을 말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이나 과학자, 화가 같은 흔한 꿈이 아닌, 어딘가 독특하고 유니크한 직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직업을 꿈으로 삼게 된 동기는 아마도 엄마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예전부터 엄마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서 우리 집에는 늘 인테리어 잡지가 수두룩했다. 그 안에는 언제나 화목해 보이는 이들과 그들의 아름다운 집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런 집을 꾸미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일까 하고 상상하곤 했다.

엄마에게는 인테리어와 관련된 특이한 취미가 있었다. 엄마는 가족들 모두가 자고 있는 한 밤 중에 가구의 배치를 완전히 바꿔놓곤 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꿈결에 그 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다음 날 확 달라질 집을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이 들곤 했다. 우리 집의 이층에는 나와 내 동생의 책상과 책장, 피아노 등이 있는 길쭉하고 꽤 큰 방이 있었는데, 그 방은 아침이면 아예 처음 발을 들인 장소처럼 바뀌어있었다. 두 책상이 마주 보기도 했다가, 서로 저 멀리 떨어지기도 했다가, 독서실처럼 어두운 각자의 공간으로 나뉘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엄마의 마술이 행해진 날이면 새 방을 얻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늘 회피하던 공부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재밌는 건, 어른이 된 어느 날부터인가 나도 엄마를 따라 가구를 재배치하는 취미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스무 살(더 정확히 말하면 열아홉 겨울)에 처음 상경해 혼자 살게 되었을 때 문득문득 가구를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혼자 그렇게 가구를 옮기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리고 새롭게 놓인 소파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 달라진 공간을 음미하는 시간이 오면 괜스레 웃음이 나오곤 했다. 나보다 훨씬 큰 가구들과의 몸싸움에서 끝내 이긴 것 같은 환희의 감정, 영원히 굳어버렸을지 모를 공간을 해체시킨 해방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살아있음. 아마도 살아있음을 인지하는 데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왜 굳이 한밤 중에 그런 일을 벌였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그건 적어도 희망과 같은 결을 가진 감정이었을 것 같다고 확신한다.)

엄마의 사생활은 여전히 미스터리 한 구석이 많다. 엄마는 어떤 이유로 한밤 중에 가구를 옮기기 시작했을까. 어떻게 그 무거운 책장과 책상을 혼자 다 옮겼을까. 우리를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당신 자신을 위해서였을까. 엄마는 나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얼마만큼 자리 잡고 있는 걸까. 한밤의 열정적인 드르르륵. 그렇게 엄마의 사생활은 나의 취미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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