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작은 손가방 하나씩을 든 할머니들이 뒤뚱뒤뚱 걸어 들어온다. 나는 집이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그날이면 우리 집은 마치 지진의 진원지가 된 것 같았다. 그날은 할머니의 고교 동창모임이 열리는 날이었다.
나는 '병금'이란 이름을 가진 할머니를 제일 좋아했다. 마르고 큰 키에 얼굴이 희었던 할머니는 나를 많이 아껴주었다. 병금이 할머니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도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로 내게 이것저것 묻곤 했다. 그 질문들은 그저 이제 몇 학년이냐, 부모님은 잘 있냐 같은 평범한 물음이었지만, 나는 할머니가 나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병금이 할머니와는 정반대로 쿨하디 쿨한 할머니도 있었다. 덩치가 크고 목소리도 아주 큰 유자 할머니는 나를 보면 반갑게 인사를 하며 안아주고는 할머니들의 무리 속으로 돌아가버리곤 했다. 그러다 물 가져와라, 반찬 더 가져와라 하며 심부름을 시키는 건 늘 유자 할머니였다. 이따금 할아버지가 일찍 들어오셔서 할머니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면 유자 할머니는 제일 먼저 나가서 반가워하며 우스갯소리를 날렸다. 유자 할머니의 한 마디에 그 많은 할머니들이 집이 떠나갈 듯이 웃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웃었다. 눈이 아주 크고 예쁘장하게 생긴 '작은 할머니'도 있었다. 키가 작아서 작은 할머니라 했는지, 아니면 이름이 같은 할머니가 있어 두 분을 구분하기 위해 그렇게 불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 할머니의 얼굴만큼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카리스마 있는 큰 눈을 지녔던 할머니. 살갑진 않아도 늘 빙긋 웃어주었던 할머니였다.
모임이 끝나갈 무렵이면 할머니들은 크리넥스 같은 작은 사은품과, 들고 온 손가방을 양손에 쥐고 뒤뚱뒤뚱 집을 떠났다. 할머니들의 파티는 술 한 잔 없이 그렇게 대낮에 시작되고 끝이 났다. 나는 매년 돌아오는 그날이 좋았다. 나는 한 분 한 분의 인생 서사에 대해 몰랐지만, 그들 모두가 나이 지긋한 천사들 같이 느껴졌다. 그 할머니 천사들은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란을 몇 시간이고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고, 그 힘 안에는 따뜻함과 정겨움이 가득했다. 나는 그때 인생의 부침을 전혀 겪어보지 않았던 어린 나이였지만, 할머니들이 만들어내는 그 분위기가 선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했던 것 같다. 그 많던 할머니 천사들은 다 어디에 계실까. 그 시절 우리 집을 들썩였던 그 거대한 진동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갔을까. 할머니들은 그들 곁에서 행복해하던 조그만 아이를 기억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