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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1

by 알리스

'서울에 간다'는 말은 우리에게 '남대문 시장에 간다'는 말로 통했다. 엄마는 장사할 물건을 떼러 남대문 시장에 갈 때면, 꼭 나와 동생을 데리고 갔다. 시장에 들어서면 엄마는 그 큰 시장을 훤히 들여다보듯 거침없는 걸음을 걸었고, 우리는 엄마를 놓칠세라 짧은 다리를 분주히 움직이며 엄마를 따라다녔다. 엄마는 짧은 머리에 키가 크고 날씬한 편이었다. 오른팔에는 늘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녔는데, 엄마를 돕는답시고 그 가방을 멜 때면 나는 무슨 돌덩이가 그 안에 들어있는 것 같아 슬쩍 가방을 열어보곤 했다.

머리핀들이 사방에 줄줄이 달려있던 가게, 인형들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수북이 쌓여있던 가게, 상자 냄새가 바깥까지 풍겼던 완구점까지, 어린 내게 남대문 시장은 반짝반짝 빛나는 물건들로 둘러싸인 지상의 거대한 우주 같았다. 꼬불꼬불한 시장 길을 따라가다 엄마와 거래를 하던 어느 가게에 이르면, 주인아주머니가 복숭아 주스를 주문해 주기도 했다. 그러면 어디선가 종이컵에 담긴 복숭아 주스 세 컵이 배달되어 왔다. 진짜 복숭아를 얼음과 함께 갈아 만든 그 복숭아 주스가 얼마나 달고 시원하던지! 나는 그걸 만드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서 배달 아주머니가 사라질 때까지 그 길목을 오래오래 바라보곤 했다. 남대문 시장에는 옷더미 위에 서서 박수를 치며 “골라~골라~”를 외치던 아저씨부터 끝없는 인파 속에서도 바닥에 엎드려 엉금엄금 기어 다니던 거지 아저씨, 머리 위에 커다란 은빛 쟁반을 몇 개나 얹고 지나가던 뽀글 머리 아줌마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모여있었다. 그 북적임 속에서 내 기억에 선연히 남아있는 건 그 모든 것을 헤쳐나가던 엄마의 뒷모습이었다.

엄마는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는 여동생 둘을 데리고 남대문 시장을 다녔다고 한다. 다섯 형제 중에 첫째였던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의 엄마이기 이전에 이모들과 삼촌들의 엄마 역할을 했단다. 이모들도 우리처럼 키득키득 대며 엄마의 뒤를 따라다녔다. 엄마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이모들과 삼촌을 보러 갈 때면, 할머니 대신 이모들에게 예쁜 옷을 사주었다고 한다. 엄마는 그때도 그 돌덩이 같은 가방을 메고 다녔을까. 나는 문득 그 시작이 궁금해졌다. 내게는 다디단 복숭아 주스의 추억이 있는 남대문 시장이 엄마에게는 과연 어떤 장소였을까. 고단한 일터였을까. 아니면 해방의 출구였을까. 이모들은 대학생 때 둘이서 해외 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마치 지금의 나와 내 동생처럼. 엄마는 그때 무얼 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일했지. 돌아오는 엄마의 대답에 내가 괜히 머쓱해진다. 반면에 엄마는 담담하다. 엄마는 외로움을 타는 사람일까. 나는 또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그래서 엄마는 그 긴 세월 내내 이모들을,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데리고 남대문 시장을 다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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