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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리스 Nov 10. 2023

첫 번째 무지개

아빠가 어릴 적에 살던 집은 내가 다니던 영어학원 근처에 있었다. 그 동네 ‘모닝글로리’란 이름의 대형문구점에 들를 때면 주인아주머니는 내게 “네가 그 댁 손녀구나”라며 반겨줄 정도로 아빠네 집은 꽤 유명했다. 우리 가족은 그곳을 '4939'라고 불렀다. 우리 집 전화번호의 뒷번호가 '4000'이어서 우리 집을 '사천번'이라고 불렀듯이, 그곳은 우리에게  '사구삼구'였다. 어느 집에나 집전화가 놓여있던 시절, 우리 가족만의 암호 같은 거였다.


명절에 4939에 갈 때면 나는 약간 긴장이 되곤 했다. 나는 활발하거나 사교성이 매우 뛰어난 아이는 아니었다. 그러니 오랜만에 친척어른들을 만나고, 일정 시간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버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을 예쁘장하게 꾸며 그곳에 데려갔다.

그리 넓지 않은 거실에는 고풍스러워 보이는 가구들과 작은 텔레비전이 있었다. 벽면에는 정원에 우거진 나무들이 보이는 넓은 창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거실은 어두침침했다. 할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1인용 소파에 앉아있었다. 마치 목각으로 된 장승이 앉아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생김에서도 장승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갈색 피부의 네모진 얼굴에 키가 크셨다. 그리고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이 할아버지를 나무로 된 생명체처럼 느껴지게 했다. 엄마는 늘 나와 동생에게 부엌 대신 할아버지 곁에 있으라고 얘기하곤 했다. 그러면 우리는 우두커니 앉아있는 장승 밑을 멋모르고 뛰노는 작은 짐승들처럼 할아버지 주위를 맴돌며 그 적막함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아마도 어떤 때는 용기를 내어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었을 것이다. “할아버지, 아빠는 지금 회사에 있어요.” “할아버지 뭐 필요한 거 없으세요?” 대답이 돌아왔을까. 나에게 그 거실은 무언의 외딴 섬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시절 다정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은 뭐 했니? 급식에는 뭐가 나왔니?”라며 세세한 것까지 살갑게 묻는 분이었다. 같이 누워 '가요무대'를 보고, 매일 둘러앉아 도란도란 식사를 함께 했다. 그런 외할아버지와 살던 내게 친할아버지는 무뚝뚝한 장승같아 보이는 게 당연했다. 그래도 나는 4939가 싫지는 않았다. 다만 어색했을 뿐이다. 그 장소도, 사람 간의 관계도.


엄마는 아빠네 집안사람들 중에 좋은 사람은 딱 둘 뿐이라고 말한다. 그건 할아버지와 할머니다. 할머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하늘나라로 가셨다. 할머니는 정이 아주 많아서 만나는 사람마다 무엇이든 몇 보따리씩을 쥐어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었다고 한다. 4939에서의 몇 안 되는 추억 속에는 내 인생 첫 무지개가 있다. 안방의 작은 창문 너머 하늘에 떠있던 아름다운 띠가 ‘무지개’라는 걸 알려준 사람이 할머니였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였는지 확실치 않지만, 나는 그게 꼭 할머니였던 것 같다.


나는 어제도 산책길에 엄마에게 “할아버지는 정말 무뚝뚝하셨어”라고 말했다. 그러는 내게 엄마는 “할아버지는 정직한 분이셨어. 그래서 내가 좋아해”라고 대답했다. 그건 처음 듣는 말이었다. 어린 나에게 장승같던 할아버지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이었을까. 4939의 그 외딴 거실에서 할아버지는 홀로 앉아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그리워했을까. 나는 문득 그런 것들이 궁금해지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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