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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수니 Jul 28. 2018

단골 아지트는 선물이다.

의미 없는 시간은 없는 법

집은 구속하는 존재다. 쉬겠다고 소파에 앉아 있으면 집안일 거리가 자꾸 눈에 밟힌다. 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눈에 찰 정도로 치우지도 못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간이 끔찍하게 싫다. 그래서 나가고 본다. 어디로 이사 가든, 마음이 편한 장소를 찾는다. 잠깐이라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려면 지하철로 1시간 넘게 걸려도 기꺼이 간다. 단 30분을 있더라도 나랑 코드가 맞아야 책도 읽히고 글도 써진다. 답답한 마음을 풀 때도 마찬가지다. 공간이 좁은 곳을 좋아하지 않지만 마음이 그냥 가는 곳이면 그 자체로 또 좋다. 내가 점찍어둔 자리에 누가 먼저 앉아 있으면 방황하기도 한다.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도 시끌벅적 사람이 넘쳐나는 장소를 좋아할 때가 있다. 한 곳을 자주 드나들다가도 어느 순간 질려서 집중 하나 못하고 커피 값만 날리기도 한다. 예민한 나에게 장소는 정말 중요하다.



결혼 전엔 나에게 맞는 곳을 찾기 위해 홍대•성수동 일대를 거의 다 둘러보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홍대 카페로 사람들이 몰려들자 강남역에 있는 A북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밀리면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 불광동에서 강남역까지 다녔던 이유는 회사 일로 신경이 곤두서 있던 당시 성인 독서실 같은 분위기가 나에게 최고였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구로동으로 이사 와서는 한참 방황했다. 낯선 동네라 뭐가 있는지도 잘 몰랐지만 어린아이들이 워낙 많은 지역이라 어딜 가든 유모차 무리가 자리를 차지했다. 글을 끄적이고 사색할 곳이 없으니 답답했다. 결국 익숙한 성수동 북카페로 매일같이 드나들었다. 만삭 임산부가 멀리 다니니 신랑은 도통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난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가는 과정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카페가 아무리 좋아도 교통수단이 고달프면 그 장소와 관계를 끊었다. 냄새나고 잔고장도 많은 1호선 라인은 왜 그렇게 정이 안 가는지. 지하철 라인이나 버스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마음에 쏙 들 필요는 없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사색의 시간을 거슬리게 만들면 그게 또 싫었다.



지금 사는 신정동 집에서는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 힘들다. 버스를 타고 꽤 나가야 지하철이라도 탄다. 그러나 지리적 단점은 나에게 운전할 능력을 주었다. 6년 만에 장롱면허를 탈출한 나는 원하는 곳을 어디든 갈 수 있게 됐다. 차 안에 있으면 무중력 상태로 나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다. 엄마라는 임무를 던져두고 멀리 가기는 쉽지 않기에 차선책으로 주로 카페를 찾는다. 적당히 조용한 공간에서 책을 읽고 멍하게 라도 시간을 보내면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일상을 벗어날 생각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월급날만 기다리며 꾹~참다가 바로 떠났으니깐.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면서, 죽도록 도망치고 싶은 날에도 모르는 동네로 한 바퀴 휘~ 돌다 오면 그걸로 다 풀린다. 예전에 즐겨 듣던 노래를 꺼내 들은 데다 마침 옆에서 잠을 푹 자고 있는 아이 덕택일지도 모른다. 기대치가 낮아졌다기보다 일상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된 거다. 운전은 분명 나에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자유를 주었다. 태린이랑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사방팔방 다닌 시절을 떠올리면 어찌 그러할 수 있었는지, 얼마나 간절하면 그럴 수 있었는지, 나에게 박수 쳐주고 싶다. 유모차를 버스에 싣고 다니는 일도 일상이 됐던 지난 날들. 다행히 지금은 멀리 갈 필요는 없어졌다. 주변에 좋은 아지트가 있어서다. 모두 운전을 해서 가야 하지만 부담 없이 오다닐 수 있는 거리다. 참 감사할 일이다.



글을 쓸 때는 바로 건너편 동네에 있는 '커피나무 아래 쉼' 카페로 간다. 독실한 천주교인이시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사장님이 그냥 좋았다. 책도 사진도 좋아하시는 분이다. 가끔 동네 엄마들로 찰 때가 많지만 여기서 있으면 희한하게 퇴고가 잘 된다. 마감 날이면 둘째 태윤이를 아기띠로 어부바를 하고서 글을 고쳤다. 잠들면 바구니형 카시트 위에 올려 집중력을 십분 발휘했다. 밤샘 작업할 때는 목동 중심부에 있는 24시간 카페로 간다. 바로 앞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면 늦은 시각이라 주차비를 낼 필요도 없다. 밤을 새우며 공부하거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작업 환경이 좋다. 아이들이 곁에 없어 집중도 잘 되고 집으로 금방 돌아갈 수 있으니 이 정도면 내게 최상의 밤 동무다.



신랑이 속을 썩여 속타는 날엔 진한 아이스드립, 육아에 지쳐 도망가고 싶을 때는 거품이 가득한 카페라떼를 주문한다. @더치공방휴



마음이 답답하고 집에 있기 거북한 날이면 목동사거리 '더치공방 휴'나 영등포구청 쪽 '카페 쏭투미'로 간다. 모두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다. 부부싸움을 하거나 육아로 지치는 날이 많은데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바텐더처럼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두 주인장을 찾는다. 엄마들이 모여 고민거리도 털어놓고, 시시콜콜 신랑 흉도 보고 시댁 이야기도 꺼내듯, 나 역시 그런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14살 차이 나는 휴 사장님은 그 연식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조언을 해준다. 그리고 내가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해 준다. 밥을 안 먹은 날에는 샌드위치 만들 때 쓰는 철판에 즉석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준다. 커피 집에서 김치 냄새라니. 끼니를 챙겨주고 싶은 사장님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서 되도록 빈 손으로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쫀득쫀득한 우유 거품은 긴장할 때 더욱 간절하게 당기는 맛이다. 태윤이를 낳기 하루 전 친정식구들을 다 끌고 갈 정도로 말이다.



쏭투미로 가면 우린 젊은 고민을 나눈다. 둘 다 하고 싶은 일도 여행할 곳도 참 많다. 카페를 아이 키우듯 돌보는 쏭미 언니는 꿈이 큰 나를 엄마의 입장에서 바라봐주고 어루만져준다. 그날에 맞춰 꺼내 주는 음료는 속상했던 마음을 모두 쓸어내려준다. 밥도 안 먹었을까봐 초콜릿이든 케이크든 뭐라도 자꾸 꺼내 준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더라도 나 대신 안고 밖에 나가 이것저것 구경을 시켜준다. 심지어 재워주기까지. 프랑스 동화책 스터디를 할 때나 미팅을 하는 날엔 일에 집중하라고 더 그렇게 마음을 써준다. 팔려고 준비해둔 생과일 조각들도 아이스크림도 아이들에게 흔쾌히 내놓는 쏭미 사장님. 장사하는 사람이 인심이 너무 후하다고 우리한테 늘 잔소리를 듣지만 그게 매력인 언니다.



이 두 공간을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끼는 사람들과 쉽게 만날 수 있어서다. 두 곳 모두 같은 모임 사람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든다. 약속하지 않은 날, 보고 싶던 사람을 만날 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최근 일이다. 밤에 작업하러 나왔는데 머리는 안갯속처럼 뿌옇고 마음만 조급해진 상태였다.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휴카페 먼저 들렀다. "꺅~~~~"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다들 반가운 얼굴이다. 성심당을 당일치기로 다녀온 이야기를 쓸 때였는데 같이 갔던 멤버들도 있어서 그날을 같이 회상하며 글에 살을 붙일 수 있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카페 곳곳에 우리 흔적과 향기가 남아있다. @키페쏭투미



싹여행연구소 강의를 들으며 알게 된 사람들은 특별한 일 없어도 자꾸 만나게 된다. 여행을 미치도록 좋아하면서도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공통분모 덕분에 더 잘 뭉치고 갈수록 각별해지는 것 같다. 다른 집단에선 특이할 수도 있는 우리들은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궁합이 잘 맞다. 흡수가 서로 잘 된다고나 할까. 연령대도 다양한데 어색하지 않게 언니 누나 오빠라는 호칭을 부르며 하나가 된다. 삶을 멋있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라 더 끈끈해질 수 있다. 만날 때마다 각자 여행 이야기를 꺼내 든다. 여행을 쉽게 가지 못하는 나로서는 대리만족의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함께라면 늘 가슴 벅차서 만날 건수를 자주 만든다. 거창하진 않지만 우리 만의 파티를 열고 이야기 꽃을 피운다. 갑자기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일도 어색하지 않다.



또 하나. 아이들을 나만큼 보고 싶어 한다. 아이들 때문에 시간이 여유치 않은 나를 위해 멀리서 와주는 경우가 많다. 이때 내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데려가지만 다들 안아주고 놀아주고 싶어 한다. 영어를 좋아하는 태린이를 위해 영어로 계속 말 걸어주는 정성도 감동이다. 태린이가 뱃속이 있을 때부터 만나 태윤이를 가슴에 달고 다니는 지금까지, 아이들 크는 모습도 정성스럽게 지켜보며 응원해주는 고마운 사람들. 지난주 하원한 아이 둘을 데리고 휴카페로 갔던 날, 남매 모두 얼마나 잘 놀았는지 모른다. 까칠하고 까다로운 태린이가 기분이 좋은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쿠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모두가 이야기를 멈추고 태린이에게 시선을 모았다. 자신만 바라보고 박수를 쳐주자 아이는 더 신이 났다. 태린이에게 사랑받는 기쁨을 알게 해주어 고마웠다. 아지트는 아이가 둘 딸린 나에게도 삶의 충전소가 되어주었다.



언제든 크고 작은 파티를 열어 각별한 추억을 또 하나 만든다. @더치공방휴


쿠바 음악이 흘러 나오자 춤을 추기 시작한 내 딸 태린.



우리 신랑은 아지트들에게 많이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신랑에게 욕심내고 기대하는 바가 커서 그런지 미울 때가 많은데, 사실 상대를 바꾸려는 마음이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한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 불순했던 내 마음이 순수해진다. 신랑을 미워했던 마음도 다 사그라진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신랑을 더 이해하게 된다. 이 공간에서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이방인도 아니면서 이방인처럼 살고 싶은 나에게, 나를 있는 그대로 읽어주고 이해해주는 공간이 있어 오늘도 힘을 낸다. 나의 사람들과 이렇게 의미 있는 일상 여행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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