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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수니 Aug 04. 2018

도서관과 절친되기 프로젝트

마주 앉아 책 읽는 날을 꿈 꾸며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나는 책을 꼭 사서 읽는 타입이었고 밑줄도 그으며 차근차근 여러 번 읽어야 내용이 내 것이 됐지만 녀석들은 도서관 책을 술렁술렁 읽는데도 흡수가 빨랐다. 잘 알려지지 않은 책도 얼마나 많이 읽던지 그런 친구들은 정말 상상력도 풍부했다. 어릴 적부터 책 내공이 쌓인 친구들이었다. 친구들 덕분에 자극받으며 보낸 대학시절 동안 책 욕심이 많아졌다. 부지런히 책을 사댔다. 하지만 무엇이든 느린 사람이기에 사둔 책을 제대로 읽지도 못한 채 또 쌓아만 갔다. 어설프게 책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나는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몇 년 동안 논술이나 작문에 도움될 부분만 훑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아직도 독서에 불완전한 사람이다. 여러모로 내가 부닥친 한계 때문에 자식들 만큼은 일찍부터 책과 가까운 사이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돌 지나선 대형 서점 어린이 코너에서 한 두 시간 자유롭게 책을 고를 수 있게 도왔다. 태린 14개월 때. @광화문교보문고



가장 먼저, 책이 많은 환경에 노출했다. 태린이가 걷기 전엔 문화센터 수업이 마치면 서점에서 놀다 갔다. 아이가 눈길을 준 책을 재빠르게 들어 책장을 넘겨줬다. 걷기 시작하고부터는 대형 서점에 갔다. 언니 오빠들이 책을 읽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직접 돌아다니며 책을 고르는 일이 많아졌다. 큰 서점일수록 유아동 코너가 커서 어른들이 보는 '엉뚱한 책'을 고르지 않았다. 선 채로 그림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친구 마농이 네 살짜리 딸과 도서관과 북카페, 심지어 이동도서관까지 야무지게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 책을 정말 좋아하는 엄마와 그 모습을 배우고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딸. 우리 모녀도 도서관에서 그렇게 지내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크라센의 읽기 혁명』을 읽은 지난여름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 가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저자 스티븐 크라센 박사는 책이 가까이 있으면 책 읽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방법으로 가정 독서환경, 학급 문고 상황을 언급하면서도 도서관이 주는 역할을 특히 강조한다. 또 다른 사람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더 많이 읽는다고 한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의무적으로 책을 읽어줄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태린이가 혼자 노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며 집안일에 빠지다 보면, 하원한 이후 잠들기까지 책을 한 권도 같이 못 읽어주는 날도 많았다. 책육아가 생각만큼 실천되지 않자 도서관을 정기적으로 찾아 도서관을 친구처럼 만들어주자고 다짐했던 거다.



처음에는 사방팔방 뛰어다니기만 하는 태린이가 도서관에서도 그러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됐다. 마음대로는 되지 않을 거라고 각오했다. 우려와 달리 두 번째 방문부터는 먼저 달려가 알아서 신발을 벗고 자리를 잡고 한 권 골라 읽기 시작했다. 석 달이 지난 뒤부턴 직접 책도 빌려보았다. 아이랑 처음 찾은 양천구 영어특성화 도서관은 아이가 살짝 뛰어다니고 책을 흥분해서 읽어대도 눈치 볼 부담이 없는 장소다. 요즘 구에서 운영하는 큰 공공도서관들은 '어린이 자료실'을 한 층에 통째로 만들어 두고 한 편에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영유아 방을 마련해둔다. 수유실이 있는 곳도 있다. 영유아 방이 아니라도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소리내어 읽어줄 수 있는 방이 있는 도서관이 많아졌다. 심지어 주민센터에 딸린 작은 도서관에도 어린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있다. 그러한 분위기가 자녀가 어린 나 같은 엄마들에게도 도서관을 다닐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둘째 태윤이가 백일이 지나 도서관 데이를 재개했다. 고맙게도 태윤이는 어딜 가든 우는 아이가 아니다. 어부바한 채 태린이에게 책을 읽어줬다. 운 좋게 잠들면 옆에 눕혀두고 태린이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기어 다니는 태윤이를 수시로 잡으러 다녀야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유아방 출입구 바닥에 깔린 알파벳 매트를 보고 '알파벳 송'을 노래를 하는 태린이를 본 사서 분은 "(귀여운 모습에) 사람들이 못 지나가겠네?"라고 말씀하시더니 노래가 끝날 때까지 같이 미소 지으며 지켜보셨다. 대출 창구에서 "나도 나도요. 여기 여기 (대출카드에) 찍찍해주세요."라고 말하는 태린을 사랑스럽게 봐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런 발걸음을 계속할 수 없었을 거다.



시키지 않아도 책을 골라 펼치는 습관이 금방 생겼다.



태린이는 도서관에서 책을 계속 읽을 때가 있고 놀기 바쁠 때도 있다. 중학생 언니들도 읽을까 말까 한 책을 가져와 30분 내내 읽어달라고 보채기도 한다. 어떤 책을 집중해서 보다가도 금방 자리를 뜨고 공간을 돌아다닐 때도 많다. 처음 가 본 도서관에 가면 책보다 그 공간을 즐기기 바쁘다. 보통 어린이 도서관은 재미있게 인테리어 돼있기 때문이다.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은 애라 빨리 뛰어다녀도 쿵쿵 소리가 나지 않는다. 불행 중 다행이다. 뛰어다니다가도 꽂히는 책이 있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도 있지만 본인이 들고 온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드러냈다. 처음엔 엄마가 들려주고 싶은 책을 들이댔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도서관데이의 기획 의도를 흐리지 않기 위해 마음껏 고르고 읽도록 해준다. 어떤 날은 아이가 너무 흥분해서 소리를 낼 때가 있다.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집에 가자고 하는데 가기 싫다고 울고 불고 하기도 한다. 도서관이 정말 친숙한 공간이 됐구나 싶다.



고래상어를 보고 몸짓으로 표현하는 태린. 28개월 때 (왼)  메뚜기를 흉내내는 모습. 40개월 때 (오)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한 얼마 뒤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골라 혼자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때그때 한창 관심 가진 분야 책만 골라 있는다는 것이다. 세 돌 전후로는 동물 그림만 보면 무조건 들고 와서 읽어댔다. "우아우아~" 감탄사도 유별난데 흉내내기도 바빴다. 그다음엔 바다생물들 이미지만 보고 레벨에 맞지 않은 책도 열심히 찾아왔다. 읽었던 책도 많이 꺼내 온다. 올해 초부터 책육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책을 많이 빌려봤는데 이전에 봤던 책을 많이 찾아왔다. 지난 봄부터 네이버 키즈북토리에서 꿈책맘이 진행하는 한글그림책 프로젝트와 령돌맘이 진행하는 영어동화 프로젝트를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프로젝트 관련 도서는 거의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보고 있는데 짧게는 1주일 길게는 2주 동안 빌려 우리 책처럼 읽힌다. 프로젝트 자료로 독후활동까지 해서 그런지 몰입도가 크다.


지금은 도서관을 내집처럼 편하게 여기고 있다. 아이들 방에선 이렇게 누워서 책을 보는 아이도 많다.


아이가 이전에 읽었던 책을 가져오면 효과는 배가 된다. 엄마가 그 책 내용을 다 알고 있어서다. 처음 그 책을 접할 때 초등학생들이 읽는 그림책인데도 네 살짜리에게 어떻게 익히게 해줄지 머리를 굴린 노력이 있다 보니 다시 볼 때 더 재밌게 읽어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시 읽게 되는 책은 아이도 더 즐겁게 받아들인다. 최근엔 곤충 책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다. 최근 시작한 과학냥이님 프로젝트가 아이 관심을 한껏 끌어올렸다. 교재와 워크시트로 본 곤충들을 또 다른 그림과 사진으로 접하니 아이는 도서관을 좋아하게 됐다. 어린이집 방학 기간 열심히 도서관을 드나들며 곤충 책을 실컷 보고 나니 매일 아침 아이는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태린이랑 도서관에 곤충 책 보러 가요."



앞서 언급한 책에서 크라센 박사가 중요시하는 '가볍게 읽기(light reading)'는 좋고 싫음이 분명한 태린이에게 잘 먹히고 있다. 원하는 책을 마음대로 골라 쉽고 재미나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집에 있는 책으로 아이에게 추천해줄 때는 까다로운 태린에게 실패할 때가 많았다. 집에 둔 책도 결과적으로는 엄마가 골라 책장에 둔 책이 아닌가. 책을 읽고 나선 엄마가 이렇게 저렇게 입력(input) 과정을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 스스로 자기 관심사를 찾아 집중하면 엄마는 그 관심사가 확장될 수 있게 지렛대 역할만 잘 해주면 된다고 본다.



도서관에 다니다 보면 엄마가 굳이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 집에 있는 책을 다른 모녀가 읽고 있으면 태린이가 다가가 아주머니처럼 상관한다. 책을 꺼내 오다가 어떤 언니가 영어 챕터북을 읽는 모습을 보고 듣고 있기도 하다. 다른 엄마가 읽어주는 책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옆에서 태린이가 말을 할 때 어떤 엄마나 아이는 중얼거리는 태린이 말을 받아준다. 내가 자주 다니는 도서관엔 이런 아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같이 책을 읽어주는 엄마들이 많다. 감사할 일이다. 아파트 도서관엔 몇 번 갔다가 가지 않게 됐다. 기증받은 좋은 책들이 많고 아이 친화적인 공간인데 몰상식한 엄마들 때문이었다. 하원한 아이들을 우르르 데려와서 마음껏 뛰게 했는데 아이들이 노는 것까진 괜찮다 쳐도 엄마들이 책을 읽어줄 마음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태린이가 보던 책을 뺏어가도 못 본 척하고 엄마들끼리 수다 떨기 바빴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2킬로 정도 운전해서라도 공공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다.



책을 다 사주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또 빌리게 될 때면 굳이 책을 다 살 필요는 없겠구나 싶었다. 자주 찾는 영어도서관에는 한글 그림책도 많다. 신착도서를 빌리면 좀 전에 직접 책을 산 기분이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지만 도서관에선 어떤 책을 골라도 다 좋은 책이다. 우리가 모를 뿐이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도서관에서 꺼낸 어떤 책도 별 볼 일 없는 책이 없다. 유아동•어린이 도서는 더 그렇다.



도서관까지 가서 한 권이라도 더 읽히면 좋겠지만 책이라는 보물과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모두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만 이어나간다면 도서관 육아는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하원 후에 키즈카페를 찾는 사람보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이 많도록 아이 친화적인 도서관이 많아지길 바란다. 변화무쌍한 육아 트렌드 속에서 공부시키기보다는 책을 더 많이 읽도록 도와주는 엄마가 되겠다고 매일 다짐한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나 역시 무시무시한 경쟁적인 교육 방식에 휩쓸리게 될지도 모르지만 책 육아는 흔들림 없이 빛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가장 큰 목표는 나도 아이들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각자 책을 읽는 날을 기분 좋게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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