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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수니 Aug 18. 2018

너와 나의 세계 여행을 꿈꾼다

아이 스스로 삶의 정답을 찾길 바라며

대학시절 미국 어학연수 덕분에 외국인 기피증을 크게 떨쳐버릴 수 있었지만 진작에 영어를 잘했더라면 또 다른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문화에 흠뻑 젖어 미국 현지에 흡수되고 다른 나라 친구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았을 것이다. 산티아고 가는 순례길을 다녀온 뒤에도 마음 한 편이 비어있는 기분이었다. 외국인 친구를 만나려고 떠난 여정은 아니었지만, 복잡한 머릿속과 바닥나던 체력과 싸우느라 다른 나라 순례자들이나 현지인들과 어느 정도까지 선을 그어 사귀었던 내 모습이 한국에 돌아와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두고두고 아쉬웠다. 사회생활하며 나약해진 상태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힘든 상태기도 했지만 앞으로는 나만의 여행을 자제하기로 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여행은 충분히 했다.


산티아고로 가는 프랑스길에서 순례를 시작하던 날. 같은 방에 묵던 사람들.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드



이제는 내 품에 새끼가 둘이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같이 떠나야 한다. 되도록이면 배낭을 메고 해외로 가서 넓은 세상과 관계를 맺어가는 여행을 할 예정이다. 좋은 리조트에 앉아 물놀이하기 바쁜 시간보다, 유명 관광지에서 예쁘게 사진찍어주기보다 한국에서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장소를 찾아주고 싶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그냥 흘려버리기보다 더 뜨겁고 값지게 보내고 싶다.



그렇다면 아이들과 어디로 가면 좋을까. 프랑스 남부 작은 시골마을에서 실컷 뛰어놀게 할까. 한국과 육아 환경이 다른 북유럽 국가로 가서 아이들과 어울리게 해볼까. 동남아시아를 순회하며 나라 별로 몇 달간 살다올까. 차라리 미국 서부로 이민을 가서 그곳을 본거지로 두고 이곳저곳 여행하며 살까. 여행지를 고민하던 차에 오소희 여행작가가 떠올랐다. 아들이 세 돌이 갓 지났을 때 한 달 넘게 터키 여행을 떠난 이후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 아랍을 누비고 다녔던 엄마 오소희. 그 아들은 어떤 여행이 좋았을까 궁금해 그가 쓴 『열일곱, 내가 할 수 있는 것은』을 읽어 보았다. 그 모자가 정한 여행 원칙은 되도록 많은 현지인 만나기였다. 되도록 세계 최빈국들을 방문해 가장 저렴한 숙소에 묵고, 길거리 음식을 사 먹었으며,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그 원칙 속에서 현지의 삶에 발을 담가 마음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가치를 깨닫고 직접 실천하고 있다.



열세 살이던 오중빈 군이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발걸음한 페르마타 하티 고아원. 이곳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음악을 가르쳐준 일을 계기로 이곳 친구들과 오랫동안 아름다운 우정을 만들어 나간다. 처음엔 영어도 못했고 음계도 몰랐던 아이들이 밴드를 만들어 실력을 키워나갔다. 이제는 발리 전역에서 순회공연을 할 정도란다. 중빈 군은 해마다 연극과 밴드 공연 등을 기획하고, 대학 장학금을 마련하며 진정한 봉사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중빈 군 여행에는 나눔의 가치가 담겨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여행을 통해 동기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지난 2016년 말부터 운영해온 발런트래블링(voluntraveling, volunteering while traveling) 프로젝트는 인상적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재능기부를 할 수도 있단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중학교 1학년생 단이의 리뷰가 눈에 들어왔다. 단이는 1차 발런트래블링에서 중국어 수업을 두 차례 진행했던 아이.


가족들과 관광지만 휙 둘러보는 여행과 아유와 하티 친구들이 있었던 이번 여행은 정말 많은 차이가 있었어요. 파르마타 하티는, 열다섯 살의 저에게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과 소중한 친구들을 선물해줬어요. 공부에 시달리는 학교 친구들과는 확실히 다른 순수한 감정의 주고받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 많은 것을 느끼게 했지요. 제가 하티의 친구들로부터 느낀 수많은 감정들은 제가 주려고 준비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큽니다.



여행은 정말 건강한 도구이다. 스스로 삶의 동기를 만들고, 그 동기로 열정과 책임감은 물론 꿈을 키워가니 말이다. 자녀교육 열풍이 사그라지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다른 엄마나 수능 위주 교육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행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살아가는 힘을 키워주기엔 여행이 최고다. 삶을 밝게 바라보는 태도도 만들어준다.



아이들이 어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린 태린이를 데리고 남편도 없이 제주를 다녀왔다는 글을 보고 어떤 분이 덧글을 남겼다. "어찌피 아이들은 기억도 못하니 더 키워서 혼자 마음껏 다니시라." 친정엄마만 하더라도 "천지도 모르는 애들 데리고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마라"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딸이 고생할까봐 걱정하는 마음에 말씀은 그렇다. 사실 부모님은 누구보다 우리 자매를 수시로 데리고 다니셨다. 동생과 나는 어릴 적 추억 하나하나가 모두 감사하다. 부모님 눈빛도 다 기억난다. 친정 부모님이 주말마다 휴가마다 산과 바다, 계곡 어디로든 떠나며 텐트 치고 밥 해 먹으며 밤에는 별을 세던 지난 날들을 추억하며 그 영양분으로 지금도 살아간다. 아이가 어려도 지금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데도 난 가고 싶다. 그 경험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믿기 때문이다. 매년 엄마와 세계여행을 다녔던 중빈 군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터키를 여행할 당시 나는 겨우 세 살이었고, 코끼리와 공룡의 차이점은 구분해낼 수 있었지만 한국에서 봤던 일반적인 빌딩과 블루모스크 사이의 다른 점을 구분해낼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것이 평범한 접시든 아니면 인류가 오래전에 만들어 의미가 있는 접시든 나는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터키에서 본 것을 모조리 잊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을 쌓을 수는 있었다. 바로 사람들로부터.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했던 모든 여행들이 내 인생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터키에서 나는 어렸지만, 어렸기에 더욱, 오늘날 바쁘게 사는 한국인들이 잊어버린 가치를 존중하며 사는 사람들, 즉 사랑과 친절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따랐던 것 같다.



해외여행을 꿈꾸는 이유가 있다. 모두가 비슷하게 살아가는 한국에선 아이나 엄마나 어딜 떠나든 얻을 것들이 제한돼 있다. 도전하고 싶은 일도 쉽게 나타날 가능성도 적다. 더 넓은 세상에서 티 없이 맑은 아이들과 어울려 소소한 일이도 행복을 느끼는 아이들로 크길 바란다. 옆집 아이보다 좋은 교구가 없어도 부러울 게 하나 없는 아이로 자랐으면 한다. 아무래도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친구들 속에서, 너무나 뻔하고 익숙한 환경에서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저자 임하영 군도 좋은 롤모델이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도 홈스쿨링 했던 그는 일찍부터 어려운 인문학 책을 소화하며 사회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우리보다 나은 사회는 어디일까'를 고민해 만 열여섯에 88일 동안 혼자 유럽여행을 떠나 자신을 돌아보고 사회가 어떻게 나아질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또 그 역시 "어떤 장소를 많이 둘러보기보다는 직접 현지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체험하는 것"이라고 손미나 작가가 집필한 『여행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 책에서 밝혔다. 이런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아이들이 십 대에 혼자 배낭여행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흔쾌히 보내주겠다.



출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임하영 군 블로그 https://www.huffingtonpost.kr/hayoung-lim/story_b_15576598.html



올해 초부터 엄마표 영어를 시작했다. 누가 물어보면 조기교육은 아니라고 답한다.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시작한 소박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태린이는 영어로 말이 트인 아이다. 잠꼬대도 영어로 하는 아이를 위해 엄마인 나도 일상에서도 영어가 입에 붙도록 노력한다. 홍현주 박사님이 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엄마표 영어』와 『엄마표 생활영어 표현사전』을 매일 꺼내 읽다 보니 아이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영어를 꺼낼 수 있게 됐다. 내가 아이들에게 친근한 영어를 할 수 있다면 세계 여행 중에도 태린이랑 태윤이가 만날 외국 친구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무엇보다 엄마표는 추억이다. 아이들과 즐겁게 노래 부르고 만들며 보낸 시간은 평생 추억거리다. 엄마표는 아이를 더 들여다보고 아이의 관심사를 찾아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한진희  『엄마표 영어 이제 시작합니다』 저자 한 마디가 아이들과 세계 배낭여행을 떠날 나에게 동기를 더욱 불어넣어준다. "'통제'에 길들여진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행하는 아이,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것. 이 세 가지 바람이 엄마표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엄마표는 나와 아이들 삶을 더 바르게 살도록 이끌어줄 거라 강하게 믿기에 매주 스케줄을 짜서 엄마표 홈스쿨을 실천 중이다.



시간은 우리 삶을 지배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냐가 인생을 결정한다. 아이들이 크는 동안 부모가 아이들 시간을 담당하게 된다. 엄마인 내가 주도해 여행을 계획하지만 우리가 떠날 시간은 아이 소유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크고 나면 엄마를 원망할지도 모를 일이니 헛되이 보내면 안 된다. 관광지만 둘러보는 여행과 그 문화 사람들에 젖어 지내는 여행과는 180도 다른 결과물이 생긴다. 결과물이 꼭 좋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여행이든 아이 삶에 평생 자양분 같은 역할이 될 것은 틀림없다. 한국에선 좀처럼 느낄 수 없는 행복을 안겨주고 싶다. 옆 사람이 어떤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리 집이 좋으면 이웃집이 더 커도 상관없다." 우리 태린이랑 태윤이와 삶의 가치를 깨닫는 여행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세계 어느 지점에서 어떤 생각을, 어떤 가치관을 키워갈까. 자존감은 어떻게 키워갈까. 앞으로 우리가 떠날 배낭여행이 기대된다. 부디 우리 아이들이 여행을 통해 성장하고, 자기 삶에 정답을 찾아갔으면 한다. 행복한 사람은 자기 자신만의 기준에 초점을 둔다고 하지 않던가.




엄마가 주어지는 여행보다 스스로 찾아가는 발걸음이 되길 바란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브런치위클리 연재가 마무리됐습니다. 그동안 '엄마가 행복한 여행육아'를 정성스럽게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내년 봄, 여러 분과 공감할 내용을 더하여 책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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