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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수니 Mar 09. 2019

다락방 북스테이

신경원 작가님의 퍼스트 오더 연재!

  본 시리즈는 매주 토요일, 총 5회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동생이 생긴 뒤로는 엄마랑 책을 못 읽는 태린. 좋아하는 책을 하루에도 스무 번 넘게 읽어야 하고, 두꺼운 곤충도감 책 한 권을 꼼꼼하게 다 읽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다. 그런 아이에게 하루에 한 권도 제대로 읽어주지 못했다. 태윤이도 누나 따라 책을 꺼내 엄마한테 읽어달라고 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꼭 누나랑 책 읽는 타이밍에 저도 읽어 달라 한다. 우 태린, 좌 태윤. 양쪽에서 자기가 들고 온 책을 읽어 달라고 보채다 두 아이 모두 울고 말았다. 책은 누구에게도 몇 장 읽어주지 못했다.



  셋 다 마음 상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누나 읽어주는 책을 같이 보면 좋으련만, 태윤이 녀석은 무조건 달려들고 봤다. 책에 덤벼 들어 손바닥으로 책을 크게 구기고 그것도 못해 바닥에 내팽개쳤다. 아들을 제어하다가 시간이 흘러갔다. 태린이의 욕구를 충족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들과 ‘책 읽기 전쟁’을 치를 때마다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책방이 떠올랐다. 괴산 칠성면 미루마을에 위치한 ‘숲속작은책방’. KBS ‘사람과 사람들’ 다큐멘터리를 보고 태린이와 하루 종일 책만 읽을 날을 꿈 꿔왔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이끌어서 데려가면 참 좋겠다 싶은 북스테이 장소였다. 그 방송을 본 며칠 뒤, 2017 서울국제도서전 SIBF ‘서점의 시대’가 열렸을 때 ‘숲속작은책방’ 부스에 제일 먼저 갔다. TV 속 그녀, 백창화 작가님이 먼저 다가오셨다.


“어서 오세요~~ 어떤 책을 찾고 있나요?”

“아이한테 읽을 책을 찾고 있어요.” “몇 살이에요? 딸인가요?”

“네, 동물이랑 자연을 정말 사랑하는 해맑은 여자 아이예요.”



  그러시더니 그림책 《왜냐면》 과 《마음이 퐁퐁퐁》 을 바로 뽑아 어떤 이야기인지 풀어주셨다. 얼마나 예쁘고 맛깔나게 말씀하시는지 추천해주신 책을 나도 모르게 다 샀다. 설명해주신 멘트보다 내 눈에 맞춰 말씀해주셨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다. 예쁜 글씨로 작가님만의 생각을 적어둔 띠지도 매력이었다. 그림책을 읽고 싶어서라도 어린이로 돌아가고 싶어 졌다. 이 분이 가꾼 책방에서 아이가 책을 읽는다면 더욱더 사랑스러워질 거라 믿었다.





책방지기인 김병록 대표님과 백창화 작가님이 괴산 미루마을에 만든 가정식 서점의 전경



  책방지기인 김병록 대표님과 백창화 작가님은 서울 토박이로 살다가 지난 2011년 괴산에 터를 잡았다. 처음부터 책방은 아니었다. 10여 년간 운영해온 도서관을 접고 괴산에서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책마을을 만들고 싶었지만 분양회사 자금난에 마을도서관 건립이 무산됐다. 작은 도서관 하나를 바라보고 시골로 내려온지라 2년 동안 마음을 많이 다치기도 했지만 아쉬운 대로 집 마당에 원두막을 두 채 만들고 현관 쪽에도 앉아 책 읽을 공간을 마련해 가정식 서점을 세웠다. 두 분이 쓴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책 속에는 이 공간이 얼마나 간절하면서도 소중하게 만들어졌는지 나와 있다.



  2시간 정도 걸려 미루마을에 도착했다. 고양이들 출입 때문인지 문이 살짝 열려 있어서 태린이가 쉽게 문을 열었다. 조심스럽게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병록 대표님이 먼저 맞이해주셨다. 태린이는 인사를 참 잘했다.


“안녕하세요.”

90도도 아닌 130도 인사였다. 백창화 작가님께도 뒤이어 같은 각도로 인사했다.


“아이고~ 예뻐라~.”



  우리 모녀의 첫 북스테이, 시작부터 좋았다. 책을 파는 서점이기도 하고 북 토크와 크고 작은 문화 행사도 적지 않은 책방이라 어린아이가 와서 신경 쓰는 일이 생길까 봐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입성했는데 어른한테 인사부터 잘하니 부모 입장에선 한시름 놓였다. 태린이는 도도한 성격 때문에 불과 두 달 전까지도 인사를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영유아를 데려 오기 전에 아이 특성을 잘 살피라는 공지 글을 보고 지레 먼저 겁을 먹었다. ‘0~4세 영유아에겐 서로가 불편한 숙박일 수 있어서 4세 이하 어린이 동반은 다시 한번 고려해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숙박 예약 안내 사항을 읽으니 심층 면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책을 파는 서점이기도 하고, 대문에서부터 방방곡곡에 책이 진열돼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책방 가득 깔린 크고 작은 소품을 만지고 싶어 하는 아이와 씨름하다가 시간을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아이 특성을 살피고 숙박을 신청해야 했다. 숙박을 예약할 때 태린이가 책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태린이는 책을 함부로 하지 않는 아이다. 도서관에 매주 한 번 이상은 다니며 낯선 장소에 가더라도 책을 꺼내 읽는 습관이 자리 잡힌 아이라고 말씀드렸다. 주야장천 책만 읽지는 않고 한 바퀴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다 또 책 읽는 모양새지만 스스로 책을 골라 읽을 줄은 알았다. 책과 각별하게 보내고 있는 태린이를 믿고 이곳까지 왔다.






  백 작가님이 먼저 책방 공간을 안내해 주셨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2층 앨리스의 다락방 앞에 섰다. 다락방은 두 개의 공간이 있었다. 하나는 자는 방, 다른 하나는 두 분이 세계 여행하며 수집한 그림책 관련 소품과 해외 그림책이 아기자기하게 가득 찬 방이다. 후자는 태린이에게 꼭 선물하고 싶은 방이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였다. 문 앞에서 작가님이 태린이에게 제안했다. 세상에서 제일 두꺼운 방문일 게다. 에릭 칼 책에서 본 애벌레 책도 있고 크고 작은 인형도 있으니 태린이도 뭔가 기대하는 눈치였다.


“여기에 뭐가 있을지 열어볼까? 열어봐 봐. 두둥~.”



  아이에게 이런 기대감을 주는 배려라니. 태린이는 이런 관여형 대화를 좋아한다. 아이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소중하게 공개해주셔서 감사했다.

 


  태린이는 2층으로 오르내리는 재미가 좋은지 왔다 갔다 하면서 혼자서도 책방 사찰에 나섰다. 그러다가 한 권씩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현관에서부터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가정식이라 왔다 갔다 하기 쉬웠다.


“엄마 엄마 봐봐. 엉엉엉엉~~~ 엉엉엉엉~~~.”



  눈물바다에 나오는 주인공 밤톨이 인형이었다. 꿈책맘님과 한글 그림책 프로젝트를 하면서 읽은 책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1층 판매대에는 《메리》 , 《눈물바다》 , 《감기 걸린 물고기》 . 2층 자는 방에선 《안아줘》 . 아이는 그 방에 젖어 혼자 시간을 보냈다. 애벌레 책상에 놓인 사인펜부터 들고 그림 몇 장을 남기기도 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백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린이는 다행히 책을 조심히 다뤄주었다. 책이 많지만 도서관이 아니라 책을 사는 서점이라고 오는 길 내내 말을 해줬다. 집에서는 책을 함부로 다루면 혼이 난다. 다른 것엔 크게 제어하지 않고 어디든 낙서해도 좋다고 말하는 엄마지만 책을 장난스럽게라도 밝거나 엄마 책에 낙서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눈빛이 얼마나 무섭게 달라지는 엄마인 줄 알아 그런지 거실 한복판을 뛰어 돌아다니다가도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멈춰 서서 두 손으로 살포시 들었다.



  2층 다락방에 올라가선 좀 편하게 책장을 넘겼다. 두 분이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하실 때 소장하신 영어 그림책이 많았다. 기차 모양 박스엔 집에 없는 팝업 북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많이 본 흔적이 있어서 책장을 넘기면서도 마음 편한 눈치다. 아이는 그렇게 자정까지 책과 삼매경이었다.






오늘의 연재는 여기까지.

이후의 이야기는 책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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