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떠수니 Jul 21. 2018

출산 여행이라 쓰고 눈물이라 읽는다

감사한 눈물 반, 미안한 눈물 반

둘째 출산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복잡한 심경이었다. 아기를 만날 생각에 설레기도 했지만 빠듯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부부가 두 아이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잘 키울 수 있을지 마음이 무거웠다. 가장 큰 걱정거린 첫째 태린. 말이 제대로 안 트인 태린이가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만 다치진 않을까 걱정됐다. 떼쓰기 한창인 딸아이라 더욱 조심스러웠다. 두서없이 육아서적을 뒤져보고 언어치료라도 시작해볼까 조바심도 났다. 한편으로는 출산이라는 명분으로 조리원에 가서 있으면 육아와 가사 노동에서 잠시 해방될 수 있다는 철없는 기다림도 있었다. 여자 마음은 참 알 수 없다지만 정작 내 마음조차 읽을 수 없는 복잡한 무엇들이 나를 단단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가장 듣고 싶었던 소리 "응애~응애~"


엄마 없는 대학병원 집중치료실에 며칠 입원했던 태린.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우렁차게 울어야 한다. 태린이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힘을 쓰지 못하고 정신을 잃는 동안 지쳐서 울 힘이 없었기 때문. 엄마의 마지막 힘을 오래 기다리면서 양수도 많이 마신 터라 엄마한테 안겨 보지도 못하고 대학병원 집중치료실로 바로 옮겨졌다. 모든 검사 결과 정상 소견을 받았지만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힘을 몇 번이나 더 줘야 아기가 나올지 감이 없었던 초산부였지만 엄마인 내가 아파도 더 참고 견뎌야 했다. 그 점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서 '둘째도 자연분만'이라는 목표는 애당초 없었다. 별문제 없이 엄마 품에 바로 안길 수 있기를 분만실에 있는 내내 기도 했다. 진통이 느껴져도 태린이 사진을 보며 묵주기도를 드렸다. 태린이가 환한 모습으로 뛰어노는 사진은 큰 힘이 됐다. 드디어 분만 임박. 첫째 때 실수를 다시 하지 않도록 힘을 아꼈다. 쓸데없이 앓는 소리를 내는 대신 정성껏 숨을 내쉬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요한 14,1-2)


세상에 태어나 외할머니와 처음 만나던 순간.

"응애~ 응애~" 첫째 난산의 대가로 주님은 복을 주시나니. 가족분만실에 들어간 지 2시간도 안 돼 둘째를 낳았다. 고속열차를 탄 줄 알았다. 태린이를 낳을 적엔 12시간이나 걸렸다. 아기 머리가 보이기 시작하자 후들후들 참기 힘든 고통이 느껴졌지만 세상에 나올 아기가 훨씬 힘들 거라는 생각만 하면서 버텼다. 진통 간격에 맞춰 "히-히-후" 호흡을 열심히 하며 아래로 힘을 주는 순간 머리가 나왔고, 몸통에 이어 다리까지 쭉 나왔다. 뜨거운 몸 덩어리가 가슴 위에 올려지자 바보같이 울음이 터졌다. 태린이한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은 기분이었다. 태린이 때도 고생하셨던 주치의 원장님도 가슴 벅찬 표정을 지으셨다. 이렇게, 우리 왕자님 태윤이를 만났다. 지독했던 골반통도 없어서 무통 효과도 누릴 수 있었다. 같은 몸인데 고통 정도는 왜 다를까? 부실한 내가 힘을 딱 네 번 주고 아이를 낳았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출산을 무사히 마치고 분만실 앞에서 발동동 구르던 친정엄마와 눈을 맞추던 순간, 감사함이 더해졌다. 엄마도 나도 둘 다 말없이 훌쩍거리며 고개만 계속 끄덕거렸다. 그런 몸짓만으로 마음이 서로 충분히 전달됐다. 진통이 시작됐다는 소식에 새벽 2시에 포항에서 서울로 달려와 병원 가기 전까지 밥상 차려주던 엄마. 우리 엄마 기운 없이는 불가능했을 기적이다.





엄마의 부재를 이해하는


둘째 출산 후 입원 중일 때 태린이와 첫 만남.



점점 배불러 지쳐가는 엄마한테 서운했던 녀석인데 병원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고 떼 한 번 부리지 않았다. 특별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엄마가 동생을 낳아 병원에 있는 거야!"라고 말해줘도 알아들을까 반신반의하며 지냈거늘 그 상황 자체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대견했다. 놀아달라고 보채던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곁에 오지도 않고 눈도 안 마주쳤다. 차라리 엄마한테 달려와 집에 안 가겠다고 울먹거리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내 마음이 덜 쓰렸을지도 모른다. 병원에 온 아이를 집에 돌려보내기 전에 마음껏 안아주고 싶었는데 가족들은 팔목 나간다고 말렸다. 몰래라도 안아 보았다. 내 몸보다 내 아이가 더 소중했다. 엄마가 두 손 크게 벌리니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결국 꼭 안겼다. 우리는 가슴 깊이 서로를 끌어당겼다. 딸아이의 가슴 진동을 느끼고선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이후 나의 조리원 생활이 시작됐다. 많은 우려와 다르게 우리 딸은 정말 기특하게 생활했다. 초반엔 친정엄마와 동생이 태린이를 돌봐줬다. 힘줄이 끊어져 수술 일정을 잡아 놓은 엄마는 수시로 안아주시고 목욕도 물놀이도 시켜주시고 한우와 생선 등 고단백 재료로 매끼 쫓아다니며 먹여주셨다. 약과 간식도 부지런히 챙겼다. 외할머니 정성에 태린이는 내가 없는 사이 체중이 2킬로나 늘어 오동통해졌다. 동생은 이모 껌딱지가 된 태린이를 하루 종일 놀아주고 안고 다녔다. 아기한테 거부감이 없도록 태린이에게 태윤이 영상을 수시로 보여줬다. 일이 없는 날엔 집에 와서 태린이랑 조금이라도 더 놀아주고 형부한테 밥도 차려주었다. 참 속 깊은 녀석이다. 내가 할 일들을 도맡아 해주는 친정 식구들 덕분에 내 몸 쉬겠다고 욕심을 부리고 자리를 비울 수 있었다.



친정엄마와 동생이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울 땐 조리원을 몇 번이나 뛰쳐나올 뻔했다. 맛깔나게 나오는 조리원 음식을 먹으며 혼자 실컷 책을 읽을 시간을 꿈꿔온 나는 어디 갔던가. 눈 딱 감고 내 몸 하나 챙기고 싶었던 욕심이 싹 달아나버렸다. 신랑이 실시간으로 보내주는 사진을 보며 하루 종일 눈물바람이었다. '신은 우리 가족에게 애절함을 알려주시는 걸까.' 둘이서 나 없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함께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신랑도 모처럼 든든했다. 어린이집에서도 씩씩하게 놀고 있다는 소식에 오히려 슬펐다. 엄마가 곁에 곧 돌아온다는 사실을 모를까봐 마음이 아팠다.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정성으로 돌봐주고 있지만 내 눈엔 왜 '엄마 없는 아이' 같아 보일까.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없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니 더 애잔했다. 좋아하는 이모까지 없는 날엔 엄마의 부재가 마구 느껴지는지 가라앉아 보였다. 나와 영상 통화하는데도 모른 척했다. 통화를 끊기 전 뽀뽀해달라고 요구하면 그제야 미소 지으며 뽀뽀해주던 딸.



조리원에 있는 동안 아이가 면회를 왔다. 낯선 환경에 보채던 태린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달려 안겼다. 우린 N극과 S극이 붙는 필연성을 증명이라도 한 듯 강하게 끌어안았다. 엄마랑 다시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지 내 목덜미를 한참 휘감고 있었다. 양쪽 눈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던 나도 겨우 정신을 차리고서 말을 꺼냈다. "태린아, 엄마는 태린이 얼굴이 정말 정말 보고 싶은데 좀 볼까?" 아이는 그래도 내 목만 붙잡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감정을 조절했던 녀석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드러낸 거다. 조리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와 약을 먹이는데 아이 얼굴을 보니 뭉클해졌다. 고작 2주 반인데 얼굴도 커지고 키도 훌쩍 컸다. 밥도 스스로 잘 먹고 양치질도 좋아하고 뭐든지 척척 알아서 잘하는 아이가 됐다.





내 삶을 다시 걸어가다.


다들 겪는 경험이지만 첫째를 정말 힘들게 만났던 우리 부부에겐 둘째 출산이 참으로 기적이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무통주사를 맞았고, 그 덕분에 힘든 진통을 느끼지 못한 채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분만실에서도 가족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촉진제가 투입됐는데도 예전과 달리 지옥을 경험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바라던 일들이 바로 되던 적이 없었다. 간절하고 안간힘을 쓰는데도 행운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오랜 시간 이를 악물고 애쓰고 노력하고 인내해야 조금이라도 인정받고 살아남았던 나인데 뱃속에서 나온 두 아이 모두 건강하게 태어나 큰 탈 없이 자라고 있다니. 그건 분명 뜻깊은 신의 메시지였다. 신랑과도 잘 살아보라는 운명론도 믿어보기로 했다. 출산하러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조금 더 어른이 됐다. 임신과 출산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과정이다. 또 삶에 영혼을 주는 일이다. 감사한 마음과 값진 눈물에 힘입어 앞으로도 지혜롭고 밝게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주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셨으니 그 불러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에페 4,1-3)
이전 09화 수국 활짝 피던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