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세수를 하러 거울을 보다 귀 옆머리에서 흰머리 수개를 발견했다. 가끔 뒤통수에서 새치를 뽑은 적은 있었지만 귀 옆 흰머리라니!
이제 둘째 아이가 겨우 4개월인데, 야속한 흰머리에게 화가나는 아침이었다.(사실 흰머리는 잘못이 없다.)심지어 옆지기에게 말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 힘든 삶도 쉬운 삶도 아니었지만언제 지나가버렸는지모를 내 하루하루가 서글퍼서. 그 와중에 수전 손택처럼 될 수도 있다며 위로(?)를 던지는옆지기가 얄미우면서도 그렇게만(정신적으로) 늙을 수있다면 그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얼핏 본 달력에서 오늘이 6월 25 일이란 걸 알았다.새벽에 북한군이 어쩌고 하는 국민학교 시절 교과서가떠오르며 아직도 요원한 통일을 생각하니머리가 세고 있는 내가 과연 통일이 되는 걸 볼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들었다.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갑자기 거울을 보며 고민한다.
뽑을까 말까
더 세게 되면 그때는 염색을 할까 말까.
세상에 고민할 수많은 일들을 생각하면 고민이라고도 할 수없는 것을, 거울 속 나는 너무 진지해서 우습기까지 하다.
그런 내 얼굴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기억. 국민학교 때 가끔 엄마 흰머리를 한 개당 10원을 매겨 용돈받을 요량으로 뽑아드리곤 했다. 그러다중학생이 된 후꽤 오랜만에 흰머리를 뽑기 위해누워 계신 엄마 등에 올라탔다.(효도랍시고 무료라며!)
엄마의 흰머리를 뽑으려 머리를 뒤적이기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나는 그대로 엄마 등에 얼굴을 묻고 울고 말았다.
눈 앞에 보이는 흰머리가 너무 많아어느 것도 뽑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그렇게 엎드려있던 엄마의 등도 함께 들썩이던 어느 저녁이 있었다.
그때 엄마 나이가 마흔 초반이었을 텐데 엄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흰머리가 많아졌을 때.
중학생 딸이 등에서 울음을 터뜨렸을 때.
거울 속의 나는 엄마의 흰머리로 용돈을 받던 철부지 꼬마로 돌아가 다시 울고 있다.
흰머리가 난 채로.
내가 엄마 나이 즈음이 되어도 내 아이들은 미취학아동일테니 내 흰머리에 나처럼 울 일은 없겠지만, 흰머리를 보며 엄마가 보고 싶어 내가 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