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진 Mar 02. 2021

유리문 사이로 느끼는 사랑

코로나 시대의 사랑




6살 딸아이는 자기 전에 책 한 권을 꼭 읽어달라고 한다.

오늘 고른 책은 다비드 칼리의 '사랑이 뭐예요?'라는 책이었다.



엠마라는 소녀가 사랑이 무엇인지 가족들에게 물으며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사실 가족들이 설명하는 사랑의 내용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엄마는 꽃, 아빠는 축구, 할머니는 요리, 할아버지는 자동차에 비유해 사랑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꽃을 좋아하고 요리를 즐겨하며 남자는 축구와 자동차를 좋아한다는 고정관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야기였다. 조금씩 각색해서 읽느라 매끄럽게 읽어주질 못했다.


다만, 사랑에 빠지면 친절해지고, 상대와 함께 하길 원하고, 서로 나누며, 함께 여행을 가고 싶어 한다는 내용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가서 아이와 그런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었다.


이야기는 엠마의 친구가 놀러 왔을 때, 친구에게 자신 있게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하며 끝이 난다.


"사랑이 뭔지 아니?
사랑은 말이야.
그냥 느껴지는 거야."

엠마가 애타게 찾고 기다리던 사랑은 아픈 엠마를 보살펴주는 가족들의 마음을 통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심 기대하며 딸아이에게 물었다.


나 : 우리 딸은 언제 엄마의 사랑이 느껴져?
딸 : 음... TV광고에 나오는 장난감을 사줄 때.
나 : (이렇게 허망할 수가)......
        그럼 아빠의 사랑은?
딸 : 아빠랑 둘이 데이트할 때.
       엄마, 병원 할머니도 물어봐.
나 : 그래, 언제 병원 할머니의 사랑을 느껴?
딸 : 못 만나서 창문으로라도 볼 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난 추석 연휴와 10월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5년째 병원에 계신 시어머니는 딸아이가 생후 5개월이 됐을 무렵 병환을 얻어 아이는 줄곧 병원에서 할머니를 만나왔다. 그러다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금지되어 지난 추석에 장장 8개월 만에야 할머니를 만났는데 그것도 병원 건물 밖에서 2층 창문으로 올려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다행히 잠시 코로나가 완화되어 안심 면회 가능하게 된 10월에는 병원의 방역 수칙따라 유리을 가운데 두고 비접촉 면회를 실시했었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와 손을 맞대는 딸아이를 보며 나도 남편도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연신 유리문을 쓰다듬으셨지만 손녀들의 온기를 직접 느껴보실 수는 없었다. 평소 수다스러운 딸아이는 아무 말 없이 유리문에 손을 대고 있었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어 표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생전 처음 경험한 만남의 방법이 어린 딸아이에게도 잊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코로나로 인해 유래 없는 상황이 1년 넘게 지속되면서 만날 수 없는 가족들이 많이 늘어났을 것 같다. 특히나 기저 질환이 있 사람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다 보니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자꾸 길어져만 간다.


매일 영상통화를 통해 얼굴을 보고 안부를 묻지만,

서로 손 한 번 잡지 못하고, 품에 한 번 안아보지 못하는 시간은 두고두고 가슴 먹먹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훗날 딸아이가 할머니의 얼굴만 기억하지 않도록,

유리문의 서늘함만 기억하지 않도록,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그래서 할머니의 손이 따뜻했다고,

할머니의 품이 포근했다고 기억할 수 있도록.




잠들기 전에 딸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사랑은 함께 있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껴지는 거니까

아마 병원 할머니가 매일 너의 마음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그리고 마음속으로 덧붙여 말했다.


사랑이 무엇인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해 미안해.
살면서 네가 저절로 사랑을 느끼도록  
더 힘껏 사랑할게
매거진의 이전글 흰머리 한 개에 10원을 받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