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면 한 칸씩 올라가는 아주 심플한 놀이, 안 해 본 사람이 별로 없을 특별할 것도 없는 놀이이다.
남자아이가 가위바위보를 연신 이겨 열 계단 정도 차이가 났고 딸아이는 계속 지는 걸 안타까워하면서도 재미있는지 웃으며 놀고 있었다.
정작 안달이 난 건, 남자아이의 엄마였다. 본인 아들 말고 내 딸아이를 걱정하느라 말이다. 남자아이가 두 칸이라도 올라가려 하면 한 칸씩이라고 만류하시고, 계속 이겨서 신이 나 딸아이를 놀리면 그러지 말라고 혼내시기도 하고.우리 딸이 속상할까 봐 계속 살펴주시는 모양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참 다정하시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딸아이가 몇 번만에 겨우 가위바위보를 이겼을 때, 그 엄마는 우리 딸아이에게 귀속말로 두 칸을 올라가라고 했다.
'아니 왜 아이에게 반칙을 가르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눈치챈 남자아이는 한 칸씩이라고 소리를 질러댔다.우리 아이가 그러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결국 남자아이가 이겼고 밑에 있던 그 아이 엄마는 계단을 올라오시더니 아들에게 말했다.
"왜 여자를 이기려고 해."
내 귀를 의심하며 행여나 딸아이가 들었을까 살피니 다행히 딸아이는 동생에게 무언가를 말하느라 못 들은 것 같았다.
그분은 그 말을 두어 번 반복하시며 이미 뛰어가고 있는 자신의 아이를 뒤쫓아가셨다. 그 뒷모습을 보며 '저분은 훗날 자신의 아들이 대학 입학이나 취업에 있어서도 여자에게 져주기를 바라실까?'하고 생각해본다.
왜 여자를 이기려고 하냐는 말속에는 남자가 여자를 봐줘야 한다는, 즉슨 남자가 당연히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 딸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심심치 않게 듣는 말 중에 "철수가 영희 지켜줘."라는 것도 있다. 아들 가진 엄마들이 자주 하시는 말이다.
그분들의 선의를 모르는 바 아니나, 여자의 존재에 대해 그렇게 학습하고 자라나는 아들들이 건강한 성평등 의식을 가진 성인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차별인지 모르고 하는 말과 행동은 더 쉽게 흡수되는 법이다.
아이들의 놀이는 그저 재미있게 규칙을 지키며 하면 그만이다. 거기에 왜 성별의 의미를, 그것도 이제는 벗어나야 할 고정관념을 투영하는가.
여자는 봐줘야 할 존재가 아니고, 남자가 여자를 지켜야 할 의무도 없다. 그저 그들은 이 사회의 동등한 시민이고 똑같이 존엄한 존재들일뿐이다.
선의로 하시는 말씀에는 더 대꾸할 수도 없어 웃어넘기지만 그렇게 씁쓸한 기운이 오늘도 마음에 또 한 겹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