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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Nov 30. 2021

"왈가닥 여자아이들"

"왈가닥 남자아이들도 있나?"




이번엔 혼잣말이 아니어서 속이 시원했던 일.


남편이 무슨 말을 하며 "왈가닥 여자아이들"이란 표현을 썼다.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대화에서도 남편은 저 표현을 썼고 그때도 '왈가닥'이란 말에 언뜻 불편함이 스쳤지만 대화에 집중하느라 지나쳤었다.


그런데 다시 남편이 '왈가닥 여자'라는 표현을 쓰자 나는 미안하지만 대화의 맥을 끊고 되물었다.


"왈가닥 남자아이들도 있나?"


남편도 나도 몰라서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곧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여러 번 읽어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 해석이었다. 덜렁거리며 수선스럽다는 것은 어쨌든 부정의 뜻이 담긴 말이니까.


그런데 한 편 이 말은 남자를 덜렁거리며 수선스러운 존재로 일반화한 이니 사실은 남자가 더 언짢아야 하는 표현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왈가닥 남자아이가 있다면 '남자아이라 그렇지 뭐.' 정도로 끝날 일이 여자아이들에겐 '여자아이가 왜 그래?' 될 것이고 덧붙여 다른 행동 양식을 요구받을 것이 뻔하다.


내친김에 찾아본 '말괄량이'의 뜻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말이나 행동이 얌전하지 못하고 덜렁거리는 여자'였다.


여자는 얌전해야 하고 차분해야 한다는 인식은 언어 속에도 뿌리 깊게 남아있다. 그리고 그 언어를 학습하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같이 습득하게 될 것이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고 비트겐슈타인은  '나의 언어의 한계들은 나의 세계의 한계들을 의미한다.'라고 했다.


두 철학자의 심오한 뜻까지는 미천한 내가 알 수 없지만, '언어'가 개인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다뜻이 내포되어 있지 않을까.


작년에 '내가 이제 쓰지 않는 말들' 프로젝트를 지지하고 꼼꼼히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가 차별의  말을 바꿀 수 없다면 쓰지 않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프로젝트였다.






나의 첫째 딸아이도 '왈가닥'에 가까운 성격을 지녔다. 하지만 그건 남녀의 차이가 아니라 이 아이의 성격이 그런 것일 뿐이다. 때로는 너무나 차분하고 신중한 면모를 보이기도 하는 아이를 보며 사람을 어느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도 느낀다.


'남자처럼, 여자처럼, 남자니까, 여자니까' 이런 수식어가 혹은 이런 뜻을 담고 있는 많은 단어들이 쓰이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란다.


한 인간으로서 개인으로서의 특성이 돋보이고 존중받는 사회가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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