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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Jan 21. 2022

5주 동안 용돈을 모으는 마음

5주 모아서 5000원입니다



생일 등의 기념일을 제외하고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 대신 칭찬 스티커를 100장 모으면 아이가 장난감 백화점에 미리 골라 둔 장난감을 사준다.


단, 가끔 다이소를 방문했을 때는 이유 없이도 딱 한 개 갖고 싶은걸 사주는데 보통은 천 원짜리이다. 문제는 아이가 사고 싶은 물건이 적절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그날도 그랬다. 아이는 작은 인형과 화장대가 들어있는 장난감을 사고 싶다고 했다. 그다지 품질이 좋지 않았고 집에 이미 메이크업 놀이 장난감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가격이 무려 5천 원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세상 쓸데없는 것을 산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똑같은 것을 또 사면 안 된다.'는 이유를 겨우 받아들인 아이는 얼마나 아쉬웠는지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 후 며칠 동안 아이는 찍어 온 장난감 사진을 보고 또 보며 애달파했다. 정말이지 '애달프다'의 표현이 적확한 모습이었다.


그제야 아이가 사고 싶은 물건을 적절하지 않다고 내친 건 오로지 나의 독단이었음을 깨달았다. 내 눈에 조잡해도 아이 눈엔 예쁠 수 있고, 똑같은 장난감이 집에 있다고 설득했지만 사실 정말 똑같지는 않았다.


비합리적인 소비라고 판단한 나와 달리 아이는 그 장난감으로 새로운 역할놀이를 하는 즐거운 상상을 했을 것이다. 나는 그 즐거움과 상상력을 내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깨달음의 끝에도 역시 '돈이 아깝다.'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고심 끝에 아이에게 용돈을 줘보면 어떨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이가 용돈을 모아 무언가를 산다면 그것은 아이의 돈이니 내가 왈가왈부할 수 없고, 아이도 소비활동을 하다 보면 시행착오 속에서 어떤 물건을 사는 것이 합리적인지 스스로 터득하게 되지 않을까.





남편과 상의하여 1주일에 천 원으로 용돈을 책정하고 가족회의 시간에 아이에게 용돈에 대해 설명하였다. 사실 아이는 백 단위 수부터는 읽지도 못해서 천 원을 읽지도, 그 가치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유심히 설명을 듣던 아이가 물었다.


"그럼 그 돈으로 다이소에서 본 장난감 살 수 있어?"

"응, 그게 5천 원이니까 용돈을 다섯 번 모으면 돼. 하지만, 그전에 네가 사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돈을 써도 되지."

"아니야, 나는 모아서 그 장난감 살 거야."


나는 확신했다. 아이가 5천 원을 모으기 전에 편의점 앞에서 뽑기를 하거나, 군것질을 사 먹을 거라고.

그러나 아이는 용돈을 잊기라도 한 듯 1주를 흘려보내고 두 번째 용돈을 받는 날이 되었다.


"이제 세 번만 더 받으면 그 장난감 살 수 있어?"

"응, 그런데 엄마가 보니까 새로운 뽑기 장난감 들어왔던데 그거 하러 갈래?"


나는 일부러 아이를 꾀어보았지만, 아이는 완강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 좋아하는 젤리도 안 먹겠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는 매주, 매일 반복되는 나의 여러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정말로 5주 동안 용돈을 모았다.


내 딸이지만 참 독하다. (남편 왈, "당신 닮아 그렇지.")


그리고 다섯 번째 용돈을 받은 주말, 아이는 다이소에 가서 그 장난감을 사고야 말았다. 첫 용돈 지출 기념으로 직접 천 원짜리 다섯 장을 내밀고 계산도 스스로 하였다.





아이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자는 다짐은 너무도 쉽게 망각되고 나의 생각대로만 아이가 행동하길 바라게 된다.


그게 아이의 세계가 확장되는 것을 얼마나 가로막는지 또 한 번 반성하게 되었다. 아이는 스스로 계획하고 목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고 있다.



용돈 기입장의 '나의 목표'라고 적힌 칸에 '시골 할머니♡사랑'이라고 적었길래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돈을 모아 할머니를 데려오고 싶다"라고 말한다. 멀리 사는 할머니를 늘 그리워하는 딸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다 갑자기 추가로 무언가를 열심히 적길래 보니까 '동생이 나한테 짜증 안 내게 하는 장난감'이라고 적어 놓았다. 동생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을 첫째가 안쓰러워 한참을 품에 꼭 안아 주었다.





이제 7살이 된 딸아이가 용돈을 모으고 쓰는 모습을 보는 것이 꽤나 흐뭇하다. 얼마 전엔 다이소에서 동생에게 무려 3천 원짜리 색칠 북도 선물해 주었다.


더 많이 모으면 엄마 아빠에게 치킨도 사주겠다는 딸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매일 매 순간 딸아이의 사랑을 먹으며 조금 더 나은 엄마가 되어가는 감사한 새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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