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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Dec 22. 2021

울어도 돼, 우는 아이에게도 선물 주신대

울고 싶은 마음일 땐 울어도 돼




트리의 계절이 돌아왔다. 12월이 된 첫 주, 아이들과 트리 꾸미기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와 달리 첫째에게는 '트리=선물' 공식이 성립한다.


얼마 전, 어린이집 친구의 '시크릿 쥬쥬 셀카폰'이라는 장난감을 본 뒤로 산타할아버지에게 달라고 하겠노라 벼르고 있던 차였다.


트리를 꾸미던 아이는 마지막으로 커다란 양말을 걸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크리스마스에 자고 나면 이 양말 속에 시크릿 쥬쥬 핸드폰이 있겠지?"


"그럴까? 산타할아버지가 진짜 그 선물을 주시려나~"


시치미 떼고 말하는 나를 보던 딸은 자못 심각해졌다. 자신이 받고 싶은 선물을 산타할아버지가 모를까 봐 걱정하고, 코로나 때문에 산타할아버지가 못 오는 건 아닐까 염려하고, 우리 집은 굴뚝이 없는데 어떻게 들어올 수 있느냐고 의문을 품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제는 내가 초조해졌다. 이제 곧 일곱 살이니 자칫하면 산타할아버지가 엄마 아빠라는 것을 들킬지도 모른다. 나는 재빨리 여러 대안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산타할아버지가 잘 보실 수 있게 베란다 창문에 편지를 써놓을까?"

"코로나 때문에 집안까지는 안 들어오고 현관문에 놓고 가실 수도 있지. 그럼 굴뚝이 없어도 괜찮아."


아이는 곧바로 산타할아버지가 보시게 메모지에 편지를 써서 베란다 창문에 붙여놓았다. 동생의 선물을 말없이 대신 적어주는 것이 내심 기특했다. 






트리를 꾸민 후 아이는 유독 가사에 협조적이고 짜증도 덜 내며 '착한 일'이라고 할 만한 일들을 나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일인가로 울고 있는 아이에게 "그렇게 울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주...."까지 말하다 꿀꺽 삼켰다.


얼마 전 남편이 혼이 나 울고 있는 딸에게 울지 말라고 했을 때 딸아이가 더 크게 울며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울고 싶은 마음이면 울 수도 있지.
왜 울지 말라고 해!"



생각해보니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주신대요.'라는 가사는 울지 말라고, 선물로 으름장을 놓는 모양새가 아닌가.


아직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다 표현할 수 없고 감정 변화의 폭도 큰 아이들에게 '울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기'는 곧 자신의 감정을 꾹 참고 어른이 하라는 대로 잘하는 아이를 뜻하겠지.


어른 위주의 입장에서 아이를 돌보기 쉬운 방편으로 만들어 낸 노래가 아닐까 생각하니 아이가 그런 동요를 듣고 자라는 게 어른으로서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래서 아이에게 다시 말했다. "울어도 돼, 우는 아이에게도 선물 주신대. 산타 할아버지는 자기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는 아이를 좋아하신대." 아이는 다행히 그 말을 믿었고 울음도 멈추었다.


'그래, 울고 싶으면 우는 거지.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울면서 크거라.'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아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이는 선물을 주시는 산타할아버지께 감사카드를 써야겠다며 정성껏 카드를 만들었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넣을 때 잘 보고 갖고 가시라며 양말에 꽂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정도면 마음씨 고운 아이가 조금 울었다고 선물 안 주시는 매정한 산타할아버지 할머니는 없으실 것 같다.





내가 일곱 살 때, 산타할아버지가 머리맡에 두고 갔다던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보면서 산타할아버지는 없다는 걸, 엄마 아빠가 놓아둔 것이라는 걸 대번에 알았다. 당시 문구점을 하고 있던 우리 가게에서 팔고 있는 그 스케치북과 크레파스였기 때문이다.


서운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산타할아버지가 엄마아빠였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저 엄마 아빠가 들켰다는 것을 모른 척해드리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딸에게는 설레는 기억하나쯤 남겨주고 싶어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딸아이가 산타의 존재를 믿는 그날까지 나는 아이의 영원한 산타할머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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