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선택한 기준 속에는 흔히 ‘정치는 남자가, 큰일은 남자가, 반장은 남자가’ 하는 식의 고정관념도 없고 ‘연륜이 있어야, 인생 경험이 많아야’ 같은 연령주의도 없었다. 오히려 반대로 자기와 성별이 같고 제일 젊어 보이는 사람을 택한 듯했다.
선거 당일, 아빠 손을 잡고 투표장을 찾은 딸이 아빠를 따라 기표소에 들어가는 바람에 아빠의 비밀투표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 탓에 집에 돌아온 딸은 입을 삐죽거리며 아빠가 김재연 이모를 안 찍었다고 내내 속상해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이는 결국아빠에게 투표용지를 만들어 달라고 했고 아빠는 성심껏 투표용지를 만들어 딸에게 건넸다. 한 껏 신이 나 혼자 방에서 투표를 마친 아이는 말로는 비밀이라고 하면서도 슬며시 나에게 투표용지를 보여주었다. 거기엔 삐뚤삐뚤한 투표 도장 모양의 그림이 김재연 후보의 칸에 고이 그려져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아빠는 딸에게 기호 2번 아저씨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전해주었다. 본인이 찍은(?) 후보가 당선되지 않아 적잖이 실망한 딸은 김재연 이모는 몇 표를 받았는지 확인까지 했다. 아이는 정말 기대했었나 보다.
그날 오후 딸아이가 방에서 무언가를 골몰하여하고 있길래 가보았다. 세상에. 기호 2번 아저씨가 당선된 것을 축하하는 카드 같은 것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
“김재연 이모가 안돼서 속상하다며, 이건 왜 그리는 거야?”
“그래도 당선됐으니까 축하해야지.”
“아…….”
내 딸이지만 쿨하다. 인정. 결과에 승복하고 축하하는 저 태도, 어른보다 낫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어른도 있는 것이다. 분명 딸아이의 말이 맞는 것 같으면서도 도저히 축하에 동의할 수가 없어 자리를 뜨고 말았다.
마음이 복잡했다. 나는 다시 돌아가 아이에게 물었다.
“대통령이 된 아저씨가 무슨 일을 해주면 좋겠어?”
“음.. 재미있는 일. 웃긴 일을 많이 해서 우리들을 재밌게 해 주면 좋겠어.”
‘웃긴 일을 많이 하긴 하지.’라는 말을 삼키며 말했다.
“그래 네 말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웃으면서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
훗날 아이가 커서 직접 투표를 할 수 있는 때가 온다면, 그때는 아이가 원했던 것처럼 젊은 여성이 대통령을 할 수 도 있을까?
학창 시절 전직 대통령 중에 나쁜 사람이 많은 것을 알고 받았던 충격을 딸아이가 학창 시절을 보내며 똑같이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