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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Dec 01. 2022

“나한테 가나는 마음의 원수 국가야.”

스치는 바람에도 생각나는 사람

*사진출처_SPOTVnews, 2022.11.29. 이성필 기자



카타르 월드컵 시즌이다. 평소 축구 경기에 큰 흥미를 느끼지는 않지만, 남편이 술 한 잔 하자기에 그게 좋아 나란히 앉아 경기를 시청하게 되었다. 남편이 성심껏 조리한 문어 볶음 안주에 하이볼 한 잔과 함께.


평소 스포츠 경기를 즐겨보지 않던 남편이 유난히 열심히 경기를 시청하며 안타까워하거나 응원하는 모습이 약간 낯설기도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하이볼을 한 잔, 두 잔 마시며 무심히 경기를 시청했다. 우리나라가 지면서 경기가 끝났을 때에도 나는 큰 아쉬움 없이 주변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이 다시 축구 이야기를 꺼냈다


“이기길 바랐는데.”
“나는 요새 승패에는 큰 관심이 안 생기던데.”
“그래도 가나는 꼭 이겼으면 했는데.”
“가나도 우리를 꼭 이겼으면 했을걸?”


쓸데없이 가나 입장까지 역지사지해주던 내 말 끝에 남편이 나지막이 말했다.



“나한테 가나는 마음의 원수 국가야.”


몇 초간 잠시 멍했던 나는 그제야 남편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그래, 아버님...' 아버님이 가나에서 원양어선을 타다가 의문사로 돌아가셨는데. 나는 까맣게 잊고 생각도 못했다.


남편은 가나도 부패가 심한 국가라서 아마 아버지의 죽음이 단순히 원양어선 사업자의 잘못만은 아닐 거라고 덧붙였다. 그러고서는 태연히 출근 준비를 하러 돌아서는 남편의 뒷모습에 슬픔이 여기저기 묻어있었다. 나는 그 슬픔을 털어주지도 못한 채 멍하니 앉아있어야 했다.





'세월이 가면 슬픔은 사그라든다고?' 아니었다. 슬픔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슬픔은 사라지는 단어가 아니다. 슬픔은 오겠다는 기별도 없이 제멋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수시로 온다. 눈을 감아도 온다. 슬픔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눈꺼풀은 없다. 슬픔은 거친 밤을 기진맥진 통과하게 만든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p.100


남편은 어젯밤 축구경기가 진행되는 두 시간 동안, 아니 어쩌면 경기가 끝나고 잠에 들기 전까지도 아버지를 생각했겠지. 나는 그 시간 어느 순간에도 함께 생각해주거나 슬퍼해주지 못했다. 아니, 과연 어제 뿐이었을까.


남편은 얼마나 자주, 얼마큼 아버님을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일상처럼 떠올리고 생각을 스쳐 보낸다해도 그때마다 남편의 마음은 흔들리고 멈추기를 반복했을 텐데.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지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나의 일이 아니라서  떠올리지 못하고 지냈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일지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 품고 산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감히 나는 상상도 못 할 마음이겠지. 떠나간 사람을 생각하며 “목소리 한 번 듣고 싶고, 한 번 만이라도 만져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사무치는 그리움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큼 공감할 수 있을까.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과연 '공감'한다는 것이 가능이나 할까.





겨울에 실내에 들여놓은 화분의 나무가 방 안에서 얼어 죽었어요. 같이 있던 다른 나무들은 괜찮은데…. 그것이 슬퍼서 하루 종일 울었어요. 그 나무가 동준이 같아서…. 감성이 충만하다 못해 지나쳐서 오버하는 거지요. 그렇더라고요. 동준이 또래 남자 청년들을 보면, 덩치라도 비슷한 아이들을 보면,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알바하는 아이들을 보면,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도 군대가 있는 아이도 옆집에 사는 대학생 남자아이도 온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연관이 되어 있더라고요. 억측인가요.(2018년 3월 16일) -김동준 군 어머님(강석경)의 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p.78


‘바람이 와서 볼을 스치면 그 바람에 동준이가 온 것 같'다던, ‘나비가 날아다니면', ‘풀에도 있고, 하늘을 보면 생각난다던 김동준 군, 이민호 군 어머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은 불현듯 찾아오고, 그렇기에 항상 찾아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일은 어떠한 것일까.


그런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이 나와 함께 생활하는데, 같이 살면서도 그 마음 한 번 제대로 상상해보지 못하고 가끔 먼저 말 한 번 건네지 못했던 게 후회가 된다. 떠난 사람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추억하며 지금, 여기에 함께하듯 느끼게 해줬어야 하는데.





두 달 후면 아버님 기일이다. 매 번 간소하게 아버님 사진 앞에서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이나 새로운 음식을 가족끼리 나누어 먹는데,  이번 기일에남편과 마신 하이볼을 한 잔 정성껏 타서 올려봐야겠다. 약주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다던 아버님과 하이볼 한 잔 건배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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