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둘의 이야기들은 서로를 비췄다
글쓰기는 물론이고 말하기에서도 옳다고 믿는 일을 비난받고 싶지 않거나, 긴 논쟁을 하기 싫어서 두루뭉술하게 의견 없는 의견을 말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황정은의 『일기』에서 읽었던 부분을 떠올리면 목소리를 내는 일에 조금 더 용기가 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정치적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데 나는 누가 어떤 이야기를 굳이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하면 그저 그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그건 너무 정치적, 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대개 이런 고백으로 듣는다.
나는 그 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일기』p.133~134
나를 기억하는 사람과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일치한다는 것은 꽤나 큰 행운이자 행복이다.
질비아는 나의 정체성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이년 전의 나와 이십 년 전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는 몇 사람 중 하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계속 변해왔다. 원치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한때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계속 잊어버린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정확히 그런 망각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홀로』p.26~27
쓰지도 않고 읽기만 하는 내가 방구석에서 분노하며 나는 어떤 이들과는 다르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걸 늘 부끄럽게 생각한다.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한 부채감을 덜어내기 위해 행동하지 않으면서 소액으로 이곳저곳 기부만하는 것 또한 부끄러움의 하나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누구에게든 나쁜 영향을 덜 주고 의미 있는 말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서운함에 대해 적확하게 들어맞는 표현.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에 담긴 폭력성이라니.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소설. 여러 가면을 골라 쓰고 살아야 하는 삶에서 온전한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주는 위안은 그 존재가 사라져 곁에 없다 해도 영원히 마음의 창문처럼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