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어린이 기분 나쁘겠다야(1)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by 김우진


얼마 전, 친구들과의 단톡 방에서 누군가가 "집도 차도 비싸서 주린이가 될 거야"라는 내용의 운을 띄었다. 나는 친구가 절약하느라 굶주린이가 되겠다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친구들의 대화를 보니 요리 초보 요린이, 수영 초보 수린이 같은 주식 초보 주린이라는 뜻이었다.

요새 유행하는 'O린이'라는 표현이 어린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않는 사회의 인식을 보여준다어느 이야기에 맞장구까지 쳐놓고, 난 왜 주린이를 얼른 알아듣지 못했을까.(주식을 안 해서?)


하여튼 친구들이 계속 농담처럼 주고받는 'O린이' 시리즈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꿀렁꿀렁 불편하여 전에 봤던 국제아동인권센터의 게시물을 찾아 링크를 걸으려다가 혼자 또 진지하게 반응해서 친구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망설였다.

https://www.facebook.com/238039816256568/posts/3446898162037368/?sfnsn=mo


결국 "듣는 어린이들 속상하겠어" 정도로 돌려 말했고 친구들은 농담으로 듣고 넘기는 듯했다. 사실 이마저도 "듣는 어린이 기분 나쁘겠다야"라고 썼다 수정한 말이었다.

나는 이런 소심함에 종종 괴감이 든다. 페미니즘과 인권에 관심이 높아진 후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과의 대화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늘었는데 막상 내가 깨우친 내용을 속시원히 말도 못 할뿐더러 점점 대화에 소극적이게 되어 속앓이도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달 후쯤 김소영 선생님의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것으로 한 달 만에 나의 할 말을 갈음했다. 나의 의도를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김소영 저 / 사계절 / 2020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어린이라는 세계 p.197)

어린이는 체구가 작을 뿐 온전한 하나의 인간이다. 저마다의 관점과 취향이 있으며 호불호도 명확하다. 제목처럼 아이마다 자기만의 세계도 존재한다. 그런데 어른의 미숙함을 왜 어린이라는 표현으로 포장하는 것일까. 그것이 재미있다는 이유라면 과연 듣는 어린이도 재미있을까? 어린이는 미숙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완전한 하나의 존재이다. 단지 연령에 따라 그 시기의 성숙도가 다를 뿐이다.


그런 한 개인을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이의 생각을 얕잡아보거나 어려서 모른다는 식으로 무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 같다.

부끄럽지만 바로 나 같은 어른들이다.



딸아이가 5살부터 자기주장이 확고해지고 좋고 싫음의 표현이 강해졌다. 시작은 어린이집 등원할 때 입을 옷을 고르는 것부터였다. 바지 거부, 색깔(파랑, 검정 계열) 거부, 계절 거부. 처음엔 타이르기도 하고 회유도 했지만 아침 실랑이는 매일 길어지고 아이에게 화를 낸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고집'을 피우며 목놓아 우는 아이를 보며 '고집 좀 그만 부려'라고 화를 냈다. 그러자 아이는 더 크게 울면서 말했다.

"엄마는 맨날 엄마 마음대로만 해"


그제야 나는 아이 입장에서는 단지 자신의 의견일 뿐인데 내가 '고집'이라는 이름을 붙였구나,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가 고집을 부린다고 느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딸아이의 관심사나 의견보다 효율성이나 편의성을 중시하여 아이의 의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인데 사실 그 효율성이나 편의성이라는 것도 어른의 기준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 후로는 겨울에 반팔 원피스를 입겠다고 해도 안에 긴 팔티를 입힐지언정 원하는 것을 입게 둔다. 그리고 아이는 원하는 것을 입었다는 자체로 만족한다.


비단 옷 입는 문제뿐만 아니라 먹는 것, 노는 것. 자는 것, 모든 일에 아이와 갈등이 있다. 그 갈등을 줄이고 타협하는 과정이 어른인 나에게도 힘들고 스트레스인데 아이라고 힘들지 않을 리 없다. 내가 최대한 배려한다고 해도 아이는 자주 "엄마는 맨날 엄마 마음대로만 해"라고 말한다. 아마 아이는 그동안 여러 번의 좌절된 경험이 쌓여 말하는 것일 텐데 나는 또 억울한 마음에 성숙하지 못하게 "네가 더 네 마음대로 하잖아"라고 내뱉고 후회한다. 나는 정말 아직 멀었다.



내가 과연 아이를 한 인간으 존중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단지 머리로만 하는 이해가 아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의 이해. 세상 어린이 중에서 그나마 내가 조금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내 딸도 이해 못하면서?

딸을 재우고 부질없는 반성을 하며 김소영 선생님 책에 소개된 유엔 아동권리협약 12조를 오늘도 되뇌어본다.

https://m.blog.naver.com/childrights/221647089409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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