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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Apr 01. 2021

남편이 같은 병을 얻었다

동병상련의 부부




둘째 아이가 생후 5개월되었을 무렵, 남편은 아기를 안거나 집안일을 할 때마다 팔꿈치가 아프다고 했다. 근처 병원에 다녀온 남편은 자신의 병명이 '골프 엘보'라며 당황스러워했다. 손목을 많이 쓰면 생기는 통증인데 바깥쪽이 아프면 '테니스 엘보', 남편처럼 안쪽이 아프면 '골프 엘보'라고 한다는 것이다.



상과염이 생기는 부위 (출처 : 네이버지식백과)




태어나 지금까지 골프장 근처도 가본 적 없는 남편에게 '골프 엘보'보다는 '육아 엘보'라는 병명이 더 정확할 것 같다. 40년 가까이 살면서 한 번도 아프지 않던 부위가 육아 5개월 만에 아프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목도 같이 아프기 시작한 남편은 다시금 나에게 미안해했다. 사실, '육아 엘보'에 먼저 걸린 건 나였으니까.




첫째 아이를 키우며 손목이 안 아픈 날이 없었다. 병원에 가도 '아기가 걸으면 나아져요'라는 답변만 받았다. 아기를 안고 씻기고 하면서 아프게 된 것이니 아기가 더 크면 덜 아프기야 하겠지만, '엄마는 아플 수밖에 없다'는 듯 말하는 의사에게 불쾌했던 기억도 있다.


결국은 '근육을 쉬게 해 주어야 좋아진다'고하는데 누군들 쉬고 싶지 않을까. 밀려있는 집안일과 우는 아기를 두고 내 손목과 어깨를 쉬게 해 주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랬던 통증들이 5년이 지난 지금도 좀 무리했다 싶으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남편 역시 의사에게 근육을 쓰지 말고 쉬라는 말을 듣고 왔다며 하는 말. "그 의사 육아 안 해봤나 봐."

우리는 내친김에 전업주부에게 흔히 쏟아지는 부정적인 시선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놀면서 애 보는 게 뭐가 어렵다고'
'하루 종일 놀면서 그것도 못해?'


우리는 가사와 육아를 병행해도 '논다'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전업 주부들의 마음이 상상되어 덩달아 속이 상했다. 그 억울함은 전업 주부를 해본 사만이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아직까지 남편들의 육아휴직이 흔치 않은 사회 분위기에서 부부간의 온전한 이해가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남편도 예전에 내가 손목이나 어깨가 아프다고 하면 퇴근 후 가사를 '도와주고', "또 아파?" 하며 걱정해주는 정도였다. 내가 그렇게 아프게 되기까지 어떻게 집에서 지냈는지는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집안일과 육아의 소소함까지 말하는 것이 생색내는 것 같아 말하지 않았고, 사실 그 세세한 일들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도 싶었다.


그러나 이제 남편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하루 동안 집안에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매일 해야 하는 일,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씩 해야 하는 일들이 따로 있고, 하루 종일 시간을 들여도 티 안나는 게 집안일이란 것을 몸소 체험하며 알게 된 것이다.




남편은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체감하던 차에 병까지 얻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 많아진 남편이 좋았다. 나의 마음을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 남편이 좋았다.

물론, 남편이 아픈 것은 좋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꼈고, 조금 더 행복해졌다.


의사가 악력기를 조금씩 하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길래 나냉큼 남편에게 력기를 '선물' 었다. 악력기 숫자가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남편의 근력도 우리 부부의 공감력도 올라가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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