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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Apr 19. 2021

내 배꼽이 왜 거기서 나와

배꼽 탈장 수술을 하다(1)




작년 12월, 친구가 '남편이 탈장 수술을 한다'며 걱정하기에 그게 무언가 하고 검색하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탈장 수술 전후 사진을 보다가 '내 배꼽이 거기서 나와'(그 와중에 그 멜로디는 왜 생각이 났는지)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탈장은 치료가 없고 수술만 가능하며 방치하면 탈장된 부분이 괴사 할 수 있다고 쓰인 설명도 읽었다. '괴사'라니! 


둘째 아이 만삭 때부터 배꼽이 나왔던 거 같은데, 아닌가? 출산 후 던가? 언제부터 나와있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다만, 출산 후 배꼽이 나와있는 것을 보고 '살이 너무 많이 쪘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살이 빠지면 배꼽도 들어가는 줄 알았다.


오히려 나와있는 배꼽을 누르면 쏙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꼬르륵'소리 나는 게 신기하다며 남편과 '재다' 여러 번 눌러보며 웃었는데. 그게 장이 나오는 소리였다니.


성인의 배꼽탈장은 출산을 하는 여성에게 주로 나타나는데 임신 중 배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복직근막이 얇아지고 그 벌어진 사이로 장기가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임신과 출산 과정만으로도 남편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적이 많았는데, 이젠 배꼽까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탈출하다니. 나야말로 어디로든 탈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바로 다음날 집 근처 외과에 갔더니 아주 작은 구멍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자 크지 않으니 기다리자며 그런 것보다 배꼽 성형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이효리 배꼽'처럼 될 수 있다나? 순간 '이 인간이 뭐래'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의사인지 장사꾼인지 모를 인간을 두고 집에 오며 다른 병원을 예약했다.


다음날 지역 종합병원으로 다시 진찰을 가니 탈장이 맞다 수술밖에 방법이 없으니 날짜를 결정하고 연락 주라고 했다. 덤덤히 말하는 의사와 달리, 내 머릿속에는 수술대에 누워있는 내 모습과 집에서 우는 두 딸아이의 모습 번갈아 떠올라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진료실을 나와 잠시 의자에 앉아 내가 그동안 왜 이렇게 내 몸에 무심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이 둘을 임신하고 출산하며 '아픈 것이 당연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어디가 아프든 만성이라 병원 갈 생각도 안 하고 파스나 좀 붙이면 된다고 여겼다. 아이들이 아프면 안절부절 병원을 찾으면서 정작 내 몸에 관한 건 그러려니 하고 살다 보니 이리된 것일까. 


안 그래도 출산 후 아프게 된 어깨 때문에 딸아이에게 철봉 매달리기 한 번을 보여줄 수 없는 몸이 되어 서글프다 여겼었는데, 이제는 탈장 수술까지 해야 된다니. 그런데 그 순간에도 내 걱정이 아닌, 애들 걱정, 남편 걱정을 먼저 하는 나를 발견했다. 슬프다. 나는 정말 나를 아끼고 있는 걸까? 왜 내 몸을 내가 돌보지 않았을까?






착잡한 마음으로 집으로 와 남편에게 탈장이 맞고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남편이 슬쩍 쳐다보며  마디를 하고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여보가 마음이 안 좋겠네.




나는 자꾸 저 말을 혼자 곱씹었다. 내가 마음이 안 좋겠다고? 그럼 당신 마음은? 자기 배꼽 아니라고 지금 저러나? 내가 왜 이런 수술을 하게 됐는데? 지금 동네 사람이 아프단 소식을 전해 들은 것 마냥 말하고 있네? 


내가 병원에서부터 심란한 마음으로 돌아와 남편 말을 고깝게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애 낳느 그런 병까지 생기고, 어떻게 해." 정도까지의 공감 못하더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는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곱씹던 생각을 아이 앞이라 참고 참았지만, 결국 입 밖으로 배출해버리고 말았다. 내 소양이 그 정도밖에 안된다. 남편은 말실수라자기도 걱정 많이 한다고 했지만 내 귀엔 변명처럼만 들렸다.


말로는 걱정한다면서 수술 관련해서 관심 있게 찾아보거나 다른 병원을 알아보는 일 같은 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안한 내가 탈장 전문 병원이 있다며 몇 개 링크를 보내고서야, 그러면서 또 나의 질타를 듣고 나서야, 링크를 들여다보며 같이 고민해주었다. 


고민은 크게 두 가지였다. 수술 방법과 마취 방법. 절개와 복강경 중에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병원도, 마취 방법도 달라질 상황이었다. 나는 절개이든 복강경이든 마취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전신 마취를 했다가 못 깨어나는 의료 사고 같은 것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말 내 고민했는데 정작 월요일에 문의해보니 부분 마취 가능하다는 병원은 서혜부 탈장 전문 병원이어서 하는 수 없이 다른 병원을 예약해야 했다. 절개 여부와 인공막을 덧대는 여부는 초음파 후 알 수 있다고 해서 당일 진료 후 수술로 예약을 잡았다.


당장의 문제는 전신마취를 해야 해서 수술 당일 운전이 불가한데  코로나 19로 보호자 동반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병원 밖에서 보호자가 대기하라는남편이 아이 둘을 데리고 기다리는 것도, 왕복 4시간을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 때문에 아이들까지 추운 겨울에 차에서 고생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병원에서 혼자 하룻밤을 자고 퇴원하기로 하였고 그렇게 12월 23일 새벽 6시, 나 홀로 수술을 위해 집을 나섰다. 아직도 깜깜한 새벽길을 운전하며 다음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혹시나, 정말 만에 하나라도 뭔가 잘못된다면, 딸아이에게 크리스마스이브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어둠 속에서 오만가지 비극적인 상상을 하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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