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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Apr 21. 2021

6년 만에 혼자 자는 밤

배꼽 탈장 수술을 하다(2)





병원 도착 20분 전,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어, 울상이 된 얼굴로 접수하시는 분께 사정을 이야기했는데, 아무렇지 않게 "신분증 사진 메시지로 보내주세요."라고 하는 것이다. 세상이 많이 디지털화됐구나. 새삼 나이 듦을 느꼈다.


초조한 마음으로 대기하다 수술 전 안내사항을 읽고 사인한 후 병원복으로 갈아입고 심전도 검사와 초음파 대기를 위해 기다렸다. 속옷을 입을 수 도 없는 상황에서 두꺼운 외투는 거추장스럽고, 얇은 병원복만 입고 있자니 '가디건을 하나 챙겨 올 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음파 검사 후 의사는 구멍이 크지 않아 인공막은 덧대지 않아도 되고 절개법으로 수술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렇게 입원실에서 수술 시간을 기다리다 드디어 수술실에 들어갔다.


책에서 '차가운 수술대 위에' 같은 묘사를 많이 읽었었는데 진짜로 수술대는 차가웠다. 그래서인지 무서워서인지 손이 파르르 떨렸다. 너무 긴장했는지 몸이 뻣뻣해지는 기분이 들고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귓가를 세게 쳤다. 누군가 마취를 시작한다고 했고, 눈을 감고 숫자를 여섯까지 세었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눈을 떴을 땐 다른 곳이었는데 나는 사지 심하게 떨고 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떨리는 경험은 처음이라 너무 무서웠다. 원래 몸이 이렇게 떨리는 거냐고 물으려는데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아 간신히 물어볼 수 있었다.


간호사분께 원래 그렇다는 말을 들은 후에 안심이 되긴 했지만 때 사지가 떨리던 낯선 경험이 지금도 무서운 기억으로 남아있다.(나중에 찾아보니 수술 후에 마취가 풀리면 근육이 움직이며 체온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몸이 떨리게 된다고 하였다.)







입원실로 돌아와 주의사항을 듣고 쉬려는데 시간이 갈수록 목이 너무 마르고 불편했다. 기도삽관 때문에 목에 염증이 생겨서 물을 마셔도 2~3분 후면 금세 마르고 아프기까지 했다. 게다가 물을 마시려면 상체를 세워야 하는데 수술한 배가 당겨서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침대를 아예 세워놓고 지니 그건 그것대로 누워있지 못해 상당히 불편했다.


빨대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병원에서 온 안내 문자 메시지가 생각났다. 온통 주의사항으로 가득한 그 메시지. 민원제기를 차단하고, 만일의 경우 책임을 환자에게 지우기 위한 안내 사항들이 빼곡했다.


거기에 실제적으로 필요한 안내들(가디건, 빨대 등이 있으면 좋다는)을 첨부해주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괜히 씁쓸한 기분이 들어 기분전환을 위해 짐가방을 열었다.


딸이 그려준 행운의 목걸이, 반지 그림과 꼭 가져가라고 챙겨준 시크릿 쥬쥬 목걸이를 만져보았다. 눈물이 핑돌아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후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남편과 두 딸의 얼굴을 보니 병실의 쌀쌀함도 마음의 씁쓸함도 한순간 풀어졌다. 


남편이 말하길, 첫째 딸아이가 베란다 쪽을 향해 "엄마 수술 잘되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면서 하늘에 절을 수 번이나 하고, 그걸 지켜본 둘째는 영문도 모르고 언니를 따서 매트에 엎드렸다고 했다.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통화를 끊고 엄마에게도 전화를 했다. 내가 딸을 보고 울듯이, 엄마도 나를 보고 우셨다. 와보지도 못한다고 우시고, 수술 잘 돼서 다행이라고 우시고, 그새 핼쑥해졌다며 (사실 그렇지 않다. 엄마 눈에만 그렇다.) 우신다. 이유는 달라도 세상의 엄마들은 자식을 보며 우는 일이 많은 것 같다. 






통화가 끝나고 침대에 기대앉아 있는데 그제야 내가 '혼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오랜만에 혼자가 된 것이 이상하고 낯설기까지 했다. 챙겨 온 책과 블루투스를 주섬주섬 꺼냈다. 책을 몇 장 읽는데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너. 무. 좋. 다.


식사로 죽이 나왔을 땐, 그동안 보려고 벼르던 '야구소녀' 영화를 보면서 식사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 역할이라니 안 볼 수 없는 영화였는데 어쩌다 보니 개봉 한참 뒤 보게 되었다. 야구를 참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사회인 야구도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이제 이 어깨로는 영영 실현할 수 없는 꿈으로 남았다.


야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니까 여자건 남자건 그건 장점도 단점도 아니에요.



영화의 명대사를 가슴에 새겼다. 야구 대신, 무엇을 넣어도 괜찮을 것 같다. '육아'나 '요리'같은 것도, '스포츠'나 '운전', '기계 수리'같은 것도.


영화를 다 보니 저녁이 되어 일찍 잠을 청해보았다. 눈을 감고 따져보니 6년여 만에 혼자 자는 밤이었다. 그동안 새벽에도 자주 깨는 딸아이 때문에 방해 안 받고 자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내일 아침까지 실컷 잘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그러나, 목이 계속 찢어질 듯 아파 물을 자주 마셔야 했고 기대 누운 자세도 불편해서 밤새 잠을 못 자고 뒤척였다. 6년 만에 혼자 자는 귀한 밤을 고스란히 새 버렸다. 아픈 것보다도 혼자 자도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수술 날 새벽 집을 떠나올 때, 남편이 내 외투 주머니에 슬쩍  뭔가를 넣었는데 그 사실조차 까먹고 있다가 퇴원할 때 외투를 입고서야 생각나서 펼쳐 읽었다. 노트 한 페이지에 빼곡한 남편의 글씨들이 읽기도 전에 마음으로 들어온다. 구구절절 미안하고 고맙다는 내용이 빼곡했고 결국 마지막 말 때문에 묵힌 서운함날아갔다. 


아이들보다 나를 사랑한다는 말.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나조차 무심한 '나'도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이었을지도 모르니까.


나의 몸과 마음에 더 관심을 갖고,
때로는 나만을 위한 일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나'로 성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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