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여름, 남편과 나는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었다. 선선한 여름밤이었고 도시의 한 광장에서 음악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저마다 흥에 겨워 춤을 추었다.나와 남편은 우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왠지 쑥스러워 맥주만 홀짝이고 있었다.
춤추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갑자기 눈에 확 띄는 커플을 발견했다. 백발 노년의 남자와 여자가 두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어찌나 자연스럽고, 경쾌하고, 리드미컬한지, 남편과 나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 든 분들의 춤이 '바람'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어릴 때 드라마를 보면 꼭 춤을 추다 바람이 나거나, 바람을 목적으로 춤을 추러 가더라) 두 분의 산뜻한 춤사위도, 여유롭고 즐거워 보이는표정도 나에겐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심히 부럽기까지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한동안 그 노년 커플을 자주 생각했고,춤과는 거리가 아주 먼 나에게지금도꽤나 인상 깊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발이 멍이 들잖아 난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 이 춤을 멈추고 싶지 않아 그럴수록 마음이 바빠 급한 나의 발걸음은 자꾸 박자를 놓치는 걸
내가 좋아하는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춤'이라는 노래이다. 사랑도 춤과 비슷한 것 같다. 서로의 생각이나 마음을 읽을 수도 있어야 하고, 때로는 상대에게 맞추기도 해야 하며, 상처 주지 않게 조심해야 하니까.
춤을 추는 마음으로 남편과살아야겠다고 생각해본다.
남편과 나는 올해 39살. 내년이면 마흔이다. 인생을 계절로 생각해봤을 때 여름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는 31살에 만났으니 여름의 시작을 같이 한 셈이다.앞으로 20년 후가 여름의 끝이라고 한다면, 그 시간 동안예전에 보았던 그라나다의 노년 커플처럼 남편과 여름밤의 춤을 추며 살고 싶다.
우리는 환갑 기념으로 아주 길게세계여행을 떠나자고 약속했는데 그때는 가을밤이라고 봐야 하려나.
여름밤이든 가을밤이든, 그때 떠난 어느 나라에서는 남편과 두 손을 마주 잡고 진짜 춤도 한 번 춰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