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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Jul 16. 2021

딸아, 그것은 까까가 아니라 탐폰이란다

우리는 생리에 대해 더 많이 말해야 한다



팟캐스트 '책읽아웃'의 애청자가 되어 지난 방송까지 찾아 듣던 중, '김보람 감독, 피를 제대로 보고 싶은 분들에게' 에피소드 소개글에서 「피의 연대기」라는 영화 제목을 보고 포스터가 떠올랐다.


'아, 그 영화가 생리 다큐멘터리였어? 범죄 영화인 줄 알았는데......'


시력이 좋지 않은 나는 멀리서 포스터의 글씨만 보이고 수많은 생리용품들은 식별하지 못했던 탓에 그저  범죄물이라 생각하고 지나쳤던 것이다.



팟캐스트들으며 공감의 공감을 거듭하다 바로 「생리 공감」 - 김보람 / 행성B / 2018  책을 구입해 읽었다.





16개월 둘째는 하루 종일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데 화장실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아이와 둘이 있는 시간에는 나에게 '혼자 용변 볼 권리'가 박탈된다. 작은 일은 내 옆에 서서 잠시 기다려주지만, 큰 일은 시간이 꽤 걸리므로 과자를 쥐어줘야 한다. 화장실에서 과자를 먹는 아이나 그걸 챙기며 일을 보는 나나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은 바로 생리 주간이다. 아이가 보고 있는데 탐폰을 교체하는 일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될 수 있으면 아이 낮잠시간을 이용해 보지만, 어쩔 수 없이 함께 있어야 할 때도 있다.


그날도 함께 화장실에 있었고 나는 양손으로 할 일을 하면서도 최대한 아이와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이가 내 얼굴 쪽만 보도록 하기 위해. 그러나 내가 탐폰을 꺼내자 아이는 금세 호기심 있게 바라보았고, 내가 옆으로 '찌익' 뜯는 순간, 기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까까!

아이가 즐겨먹는 곡물과자와 내가 사용하는 탐폰



그러고 보니 아이가 즐겨먹는 과자가 꼭 이런 모양에 비슷한 색이었다. 아이는 연신 "까까!"를 외쳤지만 순식간에 사라진 까까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나는 웃기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기분으로 화장실을 나왔다. '혹시 엄마가 까까를 다른 곳으로 먹었다고 생각하진 않을까.'라는 과도한 생각까지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육퇴 후 남편에게 이야기했을 때 남편은 박장대소하며 귀여운 둘째를 떠올렸지만, 나는 내내 기분이 묘했다. 나는 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앞에서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감추고 싶어 했을까. 사실 아이는 그 피로 태어난 것이기도 한데. 생리를 부끄럽고 감춰야 하는 것으로 알고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어렸을 때 엄마 심부름으로 생리대를 사러 가면(그땐 그게 정확히 뭔지도 모르고 사 오라니까 사갔다) 계산하시는 분은 작은 검정 봉지에 싸서 주셨다. 나도 덩달아 '이 물건은 남들이 보면 안 되는 것'이라 생각이 들어 가슴에 꼭 품고 엄마께 가져다 드리곤 했다.


학창 시절은 물론 직장인이 되어서도 생리라는 단어는 큰 소리로 말해본 적도 없고 생리대를 맨 손으로 쥐고 화장실에 가본 적도 없다. 늘 파우치 안에 넣어 다니고 그 파우치마저도 몸에 밀착시켜 잰걸음으로 화장실에 들어가고는 했으니까.





그런 나에게 「생리 공감」이란 책은 해방과도 같았다. 책을 읽고 가장 많이 한 생각은 '그래, 우리는 생리에 대해 더 많이 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생리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두 가지 고민이 생겼다. 앞으로 똑같이 생리하는 삶을 살아갈 두 딸에게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내용으로 생리에 대해 이야기할 것인가. 또한 생리는 몸의 작용일 뿐만 아니라, 성생활이나 임신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니 성교육 혹은 몸 교육의 필수인데 엄마의 역할만으로 가능한가.


우선 두 번째 고민에 대해서는 남편과 상의를 했다.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생리를 대하는, 나아가 여성의 몸을 대하는 아빠의 언행도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생리 공감」의 정독과 완독을 부탁했고 남편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선 남편이 책을 읽기 전에 나의 생리 경험을 남편에게 공유했다. 처음이었다. 남자에게 생리 경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마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초경과 학창 시절의 생리 에피소드, 생리대 종류, 처음 탐폰을 쓰게 된 이야기 등 을 남편에게 말해주었다.


남편에게 탐폰을 뜯어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사용법도, 불편함에 대해서도 설명해주며 책에서 읽은 생리 컵에 대한 고민도 나누었다. 남편은 막연하게 생각하던 '생리'가 얼마나 여성의 생활에 아니 삶 전체에 걸쳐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을까?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리 대화 이후 남편은 '생리휴가'를 준다며 생리기간에는 자신이 분담한 가사보다 더 많은 일을 해주었고, 나가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오라고 권하기도 했다. 물론 코로나 시국에 그러진 못했지만.





금기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대나무 숲에서 크게 소리친 것도 아니고 비록 남편 한 명에게 말한 것이지만, 25년간 쉬쉬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스스로 먼저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였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제야 인정하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남편이 내 스트레스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문제에 대해 공감해주고 이해해 준다는 느낌은 실로 많은 위안이 되었다. 두 딸이 생리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며 자랄 수 있는 집안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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