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엄마가 동생 방에 갈까 봐 수시로 내가 있나 더듬고 자주 울며 깼다. 오히려 생후 2주일 만에통잠을 자기 시작한 둘째와 자는 남편이 나보다 숙면을 취할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둘째가 18개월이 되었다. 첫째 아이는 1년 반이 지나서야 동생이 태어났어도 엄마 아빠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이다! 아이와 방을 분리하자!
첫째가 태어난 뒤로 언제나 첫째와 같은 공간에서 잤다. 아이는 세 살이 되어서야 통잠을 잤기에 출산 후 늘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통잠을 자기는 하지만 침대를 종횡무진하고 잠꼬대도 크게 하는 아이와 함께 자는 일은 곤욕스럽기 마찬가지였다. 맞기도 많이 맞았다. 잠결에 아이 발에 코를 맞았을 때는 화가 나 씩씩 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다 5살이 되어 동생이 태어난 뒤로는 불안함에 자주 깨는 아이를 다시 재우느라 사실상 6년의 시간 동안 나의 의지대로, 내가 눈 뜨고 싶은 순간에 눈떠본 적이 없었다.
근래에 아이는 잠꼬대만 할 뿐 깨지는 않는다. 동생과도 사이가 퍽 좋다. 이 때다 싶어 아이에게 물었다. 일곱 살부터 혼자 자기로 했는데 여섯살 가을이니 슬슬 연습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무섭다고 망설이는 아이에게 동생이랑 같이 자는 거라고 혼자가 아니라고 하자 아이는 뜻밖에그러겠노라 하였다. 요새 동생 돌보기에 재미가 들린 첫째는 자신이 동생을 재워야 하니 씩씩하게 행동해야 되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의지를 다졌다.
남편과 나는 안방을 두 아이의 방으로 꾸며주기로 했다. 나중에 첫째가 혼자 쓰고 싶다고 할 때까지. 큰 침대를 작은 방에 욱여넣으려고 침대 헤드까지 분리했다. 내친김에 옷장까지 빼내고 안방의 공간을 충분히 비웠다. 그리고 아이 책상과 수납장을 옮겨주었고 내 화장대도 아이 장난감 수납용으로 내어주었다.
이렇게 몇 줄로 요약되지만, 사실 가구 옮기고 정리하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다리 여기저기 멍도 들고 손목 허리에 파스도 붙여야 했다. 그래도 왠지 신이 났다. '드디어 나도 독립하는 구나'하는 생각에 몸은 힘든데 기운이 솟았다. 마침 방 바꾼날이 광복절이어서 나는 마음속으로 '엄마 독립 만세!'를 몇 번이나 외쳤다. 딸이 알면 서운할지도 모르지만.
딸은 딸대로 자신만의 (물론 동생도 같이 쓰지만) 방이 생겼다고 신나했다. 장난감부터 책상까지 모두 한 곳에 있으니 자신만의 방이라는 느낌이 들어 무서움도 사라진듯 했다. 부디 오래오래 방에 애착을 가져주길.
덩달아 남편도 둘째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었다. 바닥 생활을 하던 남편은 침대에서 잘 수 있다고 좋아했고 나는 기쁜 독립 와중에 남편의 코골이에 잠을 설칠까 염려는 되었지만, 새벽에 아이 재우는 일보단 낫다고 생각하며 넘겼다.
그날 밤, 방이 바뀌어 들뜬 둘째와 둘째의 목소리가 시끄럽다고 투정하는 첫째를 얼르고 달래며 간신히 재웠다. 아이들을 재우고 남은 짐 정리를 하고 나니 자정이 넘어버렸다.
남편과 나는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첫째도 없이 한 침대에서 자는 건 6년 만이었다. 어찌나 어색하던지 "손만 잡고 잘게." 분위기 저리 가라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남편도 나도 손목에 파스를 하나씩 붙인 채 '손만 잡고' 잠이 들었다. 육아는 부부애를 전우애로 바꿔놓는 것이 틀림없다.
새벽에 예상과 달리 둘째가 울어댔다. 잠자리가 바뀐 탓인 듯하다. 남편은 후다닥 가서 둘째를 재우다 같이 잠들어 한 시간이 지나서야 침대로 돌아왔다. 이제첫째가 날 부르겠지 하며 깊은 잠을 못 잤는데 아침이 되도록 첫째는 깨지 않았다.
다음 날 첫째는 신난 목소리로 "엄마 나 혼자 잘 잤지?"하고 뿌듯해했고 오후에는 놀이터에서 친구들에게 엄마 없이 잤다는 자랑을 실컷 늘어놓았다.
동생을 받아들이느라 성장통을 겪었던 딸은 여름을 떠나보내며 엄마도 함께 떠나보내 주었다. 마냥 신났던 나는 잠시 서운한 마음이 스쳤다. '벌써 품을 떠나는구나.'
하지만 밤에 침대에 혼자 책을 읽으며 누워있다 보면 내 마음속에 서운함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으니 그냥 엄마는 여전히 신나는 걸로 결론지어야 겠다.
방 분리 후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새벽에 아이방에 후다닥 가기 위해 길목에 장난감을 치워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깜깜할 때 무심코 장난감을 차거나 밟으면 정말 눈물이 핑도니까.
얼떨결에 방 분리에 성공한 우리 부부는 길목의 장난감을 잘 정리하고 구석방으로 들어간다. 손만 잡고 자도 좋은 우리만의 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