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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Jul 06. 2021

아이가 화장실 귀신을 그려왔다

네 살 터울 자매를 키운다는 것(5)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아.


은희경 소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의 한 문장이 떠오른 건 딸아이의 바뀐 식사시간에서였다. 아이는 더 이상 밥을 먹으며 시계를 보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시계를 보며 울상 짓거나 울지 않았다. 비록 30분을 넘겨 한 시간 가까이 먹을 때도 종종 있었지만 시간제한이 없으니 즐겁게 식사하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는 밥 먹을 때 베어 물은 김치 조각이나, 미역국의 미역 모양과 비슷한 사물을 우리에게 설명하느라, 떨어진 멸치 한 마리와 대화를 나누느라, 어린이 집에 있던 이야기를 하느라 나름 바쁘다. 늦게 먹는 데는 그런 이유들이 있는 것이다.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게 된 아이는 더 자유로이 말하고 더 많이 웃는다. 나 역시 시간에 맞추려 하지 않으니 아이에게 으름장 놓을 일도, 그러다 실랑이 벌이는 일도 줄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아이가 밥을 쉬이 남기거나 대충 먹지도 않았다. 할아버지가 힘들게 만드신 쌀, 할머니가 정성껏 만드신 반찬이라고 말해왔던 것이 이미 아이에게 각인되어 있었고, 음식을 남기면 지구가 아프다는 어린이집 교육 때문에도 아이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시간제한을 두지 않았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을 오히려 내가 문제를 만들고 있던 셈이다.





그러나 화장실 문제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는 때마다 동행을 요구했고 우리는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지만 여전히 '귀찮다'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렇게 화장실 문 앞에 마지못해 서 있다 보면 아이가 비누로 물로 장난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쉬이 짜증이 나서 또 혼내게 되었다. 


아이는 손 씻다가 거품으로 매니큐어를 칠하고 물살의 세기를 다르게 하며 물 가족을 소개한다. 거울을 보며 여러 웃긴 표정을 짓기도 하고 화장지로 장난을 치기도 한다. 나는 물 낭비, 비누 낭비, 화장지 낭비 등 자원 낭비를 핑계로 아이를 다그치지만, 사실 화장실 동행에 대한 불만이 아이의 작은 장난도 수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앞치마 만들기 활동을 했다며 가져왔다. 여느 때처럼 약간은 과한 감탄 리액션을 하고 있는데 뒤에도 집을 그렸다며 아이가 앞치마를 뒤집었다.


1층 부엌에 싱크대와 냉장고가 있고 2층 각 침실에는 침대와 베개, 이불을 그렸다. 옷장이 있는 방도 있다. 집 옆에는 화난 표정의 '화장실 귀신'이 서있다.


앞치마 뒤에 그린 집보다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화난 표정의 사람이었다. 순간 나는 그게 '엄마'를 표현한 건가 싶어서 마음 졸이며 "이건 누구야?"라고 물었다. 아이는 태연하게 "그거 귀신. 화장실 귀신이야."라고 답했다. 순간 '엄마'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고 넘어가려는데 갑자기 돈오(頓悟)라도 한 듯 "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이는 화장실에 귀신이 있다고 정말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같이 가달라고 했던 거구나. 그것도 모르고 같이 가 달라는 아이를 못마땅하게만 생각했다니.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이가 무섭다고 해도 뭐가 무섭냐고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고 존중해주지 않았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혹시나 아이가 엄마를 그려놓고 차마 말을 못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어린이집 선생님께 확인까지 해봤지만 그건 귀신이었다. 그 후 나와 남편은 그동안 못마땅해하던 마음을 싹 버리고 아이가 불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동행해주었다.





그로부터 한 달 반이 지났다. 그 기간 사이에 동행은 안 해도 멀리서 봐달라거나, 멀리서 계속 말을 걸어 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그러다 동생에게 "언니 좀 봐줘."라고 하기도 했고, 동생이 평소 언니를 졸졸 따라다녀 화장실도 곧잘 따라가니 그럴 때는 아예 우리를 찾지 않기도 했다. 아이는 그렇게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씩 변해갔다. 그리고 이제는 동행을 요구하는 일이 거의 없다.


남편과 내가 처음부터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고 이해해줬다면 아이는 더 일찍 혼자 화장실을 다녔을 것이다. 지레짐작 어른의 생각으로 "동생 생겼다고 괜히 저러네."라는 전제를 두고 아이를 대한 결과는 갈등과 상처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식탁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모든 순간 모든 곳에서 아이는 상상하고 재잘거리며 '놀았다'. 아이의 모든 행위의 전제는 재미있는 '놀이'이기에 엄마의 말은 놀이를 방해하는 잔소리였을 것이다. 나는 정해진 시간 안에 해치워야 할 수많은 집안일을 생각하느라 아이가 늦장 부리는 모습을 보면 조바심이 났던 것이고.


아이가 재미로 하는 가벼운 장난도 수용해주지 않는다면 아이의 상상력은 물론 즐거움도 빼앗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기다려주면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게 된다. 아이는 매일 자라고 있으니까.


아이는 매일매일 자라고 있는데, 조금씩 할 수 있는 만큼 성장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과정을 기다리지 못하고 완성된 결과만을 아이에게 다그쳐 왔다는 것이 마음 깊이 미안하다.





딸아이는 요새 그릇에 밥풀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먹는 것을 좋아한다. 의자를 놓고 물로 헹궈놓는 것까지 하는 날도 있다. 스스로 그런 일에 만족감을 느끼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규칙으로 강제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 귀가 빨개질 지경이다.


우리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우리를 키우는 것 같다. 조금 더 나은 엄마 아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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