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꺼풀만 있으면 딱 예쁜데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 - 이유진(2)

by 김우진



나는 내가 만난 청소년들이 왜 외모 콤플렉스를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강사 교육을 받기 전 인근 지역 여학생들에게 설문을 받아 보니 외모에 대해 지적하거나 평가한 사람들 대부분이 부모나 가장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이었다. 수능 잘 보면 쌍꺼풀 수술시켜줄게, 너 키만 컸으면 모델됐겠다, 코만 좀 높으면 예쁠 텐데, 너는 외모가 안 되니까 공부 열심히 해, 이런 말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오가고 있었다.(p.129)


잠시 책장을 덮었다. 귓가에 자꾸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쌍꺼풀만 있으면 딱 예쁜데."


엄마가 언제부터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중학교 때부터이다. 어느 날 같이 밥을 먹던 엄마는 손을 뻗어 내 눈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눈은 크니까 여기에 쌍꺼풀만 있으면 딱 예쁜데."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감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수도. 그런데 '알고 나면 보인다'는 말이 있듯 그날 이후 학교에서 딱풀을 실핀에 묻혀 쌍꺼풀을 만드는 아이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유심히 보지 않던 엄마, 아빠, 오빠의 쌍꺼풀도 자꾸만 도드라져 보였다. 가족 중에 나만 쌍꺼풀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결국 나도 딱풀로 쌍꺼풀 만들기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눈두덩이에 살이 통통한 편이어서 딱풀 쌍꺼풀은 쉽게 없어졌고 붉은 상처만 남기곤 했다.


시간이 흘러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이란 것을 처음 품게 되었다. 말도 못 하고 혼자 짝사랑을 하던 고1 겨울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H는 당시 유행하던 스티커 사진 속의 내 친구 K가 예쁘다고 마음에 든다며 소개를 시켜달라고 했다.


사진 속 K는 아주 진한 쌍꺼풀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라도 H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그러겠노라 했다. 그 둘의 관계는 연인으로 발전되지 못했지만, 나에게는 H와 단 둘이 K를 만나러 가던 길의 설렘이 남았다.


그 후로도 2년의 시간 동안 좋아한다고 말 한마디 못해본 것은 H가 나를, 나 같은 얼굴을, 쌍꺼풀이 없는 얼굴을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대학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엄마는 축하한다는 말 뒤로 병원을 예약해 두었다고 했다. 영문을 모르던 나는 그게 성형외과라는 것을, 쌍꺼풀 수술이 예약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모에 자신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오히려 쌍꺼풀 없는 외모가 불만이었지만 나는 엄마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니 거부했다.(이제와 생각이지만 내 몸에 대한 권리가 엄마한테 있는 것도 아닌데 내 동의도 없이 수술 예약이라니!)


엄마는 다른 집 '딸'들은 해달라고 난리인데 너는 왜 그러냐면서 당신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 나를 유별나게 여겼고 아쉬워했다(그때도 나는 엄마가 나를 생각해서, 사랑해서 제안한 것이라 생각했다). 학창 시절에 늘 들어왔던 그 말처럼. "쌍꺼풀만 있으면 딱 예쁜데."


그러나 왠지 모르게 인위적으로 얼굴이 예뻐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설사 수술 후 예뻐진다고 해도 누군가 나를 보고 예쁘다고 말해도 그건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했을 때에도 엄마는 나에게 쌍꺼풀 수술을 권했다(이쯤 되면 정말 집요한 것이다). 그때도 내 대답은 NO였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반감이나 성형수술을 한 사람을 비하할 의도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거절할 때와 똑같은 이유였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스물여덟이 되던 겨울,


나는 쌍꺼풀 수술을 했다.


사회생활 시작 후 4년 만이었다.


사회생활은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이나 대학시절과는 달랐다. 일을 하며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각양각색이었지만 하나같이 모두 나를 '결혼' 시키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 같았다. 그래서 내가 '참하고 예쁜 신붓감'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기대와 달리 연애 능력치가 낮아 번번이 짧고 허무한 연애를 반복했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성형외과에 상담하러 가는 친구를 따라갔는데 상담실장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언젠가는 쌍꺼풀을 해야 될 눈이니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해야 한다."며 적극 수술을 권했다.


'언젠가 쌍꺼풀을 해야 될 눈'이 어딨나? 그 말 자체가 기막힌 말이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 내가 달라지면 내 연애운도 바뀔까 하는 일말의 기대로 수술 날짜를 잡고 병원을 나왔다. 하지만 염두에 두지 않던 수술을 결정하고 나온 뒤부터 마음이 불안하여 주변 지인에게 의견을 묻고 다녔다.


다들 수술을 찬성하는 쪽이었고 딱 한 명, 고등학교 동창 남사친만 "수술을 하든 안 하든 너는 그대로잖아. 상관없어."라고 말해서 잠시 8년의 우정이 흔들리며 사랑으로 넘어갈 뻔했었다. 어쨌든 결국 다수의 뜻대로 나는 수술대에 올랐다.


쌍꺼풀 수술을 두고 흔히 말하듯 수술은 '티 안 나게' 잘 되었다. 원래 옆으로 긴 눈이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주변에서는 '축하'를 해주었지만 나는 '불안'이 시작되었다.


누가 내 눈만 오래 쳐다보아도 "쌍수한 거예요."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불안에 시달렸다. 실제로 상대방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말한 적이 훨씬 많았다.


한동안 계속 우울감에 시달려야 했다. 후회도 하고 자책도 했다. 내게 남은 것은 무너진 자존감과 불안뿐이었다.


연애의 실패를 외모에 두었던 나 자신이, '내 몸'에 대한 일을 타인에게 묻고 다닌 내 자신이 싫었다. 중학교 시절 딱풀로 쌍꺼풀을 만들 때마다 생기던 붉은 상처가 이제 내 몸에 영원히 남았다.






나는 왜 연애의 실패를 내 외모에서 찾았을까?

나는 왜 내가 할 수술의 여부를 남에게 묻고 다녔을까?


다시 이 글의 처음에 인용한 책 구절을 떠올린다. 책을 읽으며 내 외모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내린 첫 번째 사람이 '엄마'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사회가 만든 美의 기준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그걸 제일 먼저 강요한 사람이 엄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물론 엄마 역시 당시 사회적 기준에 맞춰 생각하셨을 테고 딸이 그 기준에 맞게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이셨을게다.


"어떤 '완벽한 몸'을 이상향으로 둔 채 그와 다른 몸을 지닌 사람 모두를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건, 우리가 아는 인권과 평등에도 반(反)할뿐더러 상대를 모욕하고 무시하는 언행이 될 수 있어요. 특히 여성의 몸을 감상의 대상으로 놓고 몸의 부위 하나하나를 평가하는 문화는 성폭력의 근본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저는 예쁘다는 말이 듣고 싶던 게 아니었어요. 저는 '괜찮다'는 말이 듣고 싶었지요. 네가 어떻게 생겨도 너 그대로 괜찮다고요." (p.129~130)


그때 엄마가 '괜찮다'라고, 이대로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면 그렇게 성장했다면 뭔가 조금은 달랐을까? 수술을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어쩌면 똑같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내 선택은 엄마의 영향보다 사회생활의 영향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 젠더 고정관념을 깨뜨리지 못하던 나, 날씬한 몸을 가꾸기 위해 매일 저녁 요가를 배우러 다니던 나였으니까(그랬다, 건강의 목적이 아닌 다이어트의 목적이었다). 나의 몸은 내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이었고 나를 보는 남성의 것이었다.


사실 젠더 고정관념과 성차별주의의 가장 뛰어난(?) 부분은 여성 스스로도 이를 내면화한다는 점이다. '머릿속 남성'의 시선으로 자기를 검열하고 수정하며,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한다. 실제로는 선택지가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 내려진 결정임에도, 사회는 이를 여성의 자유로운 선택인 것처럼 그려내고, 때로는 여성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p.208)


더 많은 여성들이 자기 검열을 멈추고 다양한 선택지를 찾아 나서길 바란다. 나는 그 시절 그렇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적어도 나의 딸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길 바란다.






십 년이 더 지난 지금도 똑같다. '눈'얘기만 나오면 자동 반사로 '고백'하지 않고 못 배긴다. 앞으로 쌍꺼풀 없는 두 딸이 그 존재를 인식하고 나에게 물어볼 날도 머지않았다. 만약 딸들이 "왜 했어?"라고 물어보면 나는 이 긴 이야기를 짧고 쉽게 해줘야 할 텐데. 그래도 한 가지는 꼭 말해줘야겠다.


'네가 어떻게 생겨도 너 그대로 괜찮다'고,

'어떤 얼굴 어떤 생김으로도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고.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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